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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Oct 13. 2024

여름! 숙성회 안 먹을 수 없지

영등포 <도림항>에서 회 먹기

  나는 생식을 즐겨하진 않았다. 하다못해 생라면도 잘 먹지 않았으니까. 그간 불이라는 진화의 물질을 두고 생식을 안 하고 살거라 믿었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 때 회를 먹기 전까진...


  처음 방문한 횟집은 광한루 북문에 었다. 생일이나 혹은 입대 같은 큼직한 일이 있을 때나 아버지가 사주셨던 고급진 음식. 그 후로 종종 먹었지만,  건강 때문에 식성을 바꾸신 부모님과는 회를 못 먹고 이제는 지인들과 소주를 마실 때만 먹게 되었다.


  참 신기한 건 회 맛을 몰랐던 나는, 이제 회라면 사죽을 못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철엔 고민이 생겼는데, '회를 먹느냐? 마느냐?'였다. 


  노량진에서 친구를 만나면 수산시장을 갔다. 그리고 당연하게 회를 포장해서 초장집을 갔고, 소주를 즐겼다. 그래도 여름은 수산시장도 비수기. 즉 휴가철이었다. 역시 그럴 때는 별 수 없이 민어를 먹긴 했으나, 아쉬움은 남았다. 건강을 위한 걱정을 떠나서 횟집이 문을 닫았던 일 때문에 여름은 그냥 안 먹었던 음식이었다.


  그러다 영등포에 <도림항>에서 숙성회를 먹었다. 영등포에서도 유명한 곳이라 이른 시간부터 대기가 있었고, 순번이 다가오기 전까진 영등포 지하상가를 구경했다.

  두 자리 대기 번호에 영등포역에서 저 외각의 지하상가를 돌고 돌다 회를 먹으러 들어왔다. 조금 시원한 타일 테이블에서 모둠회가 나오길 기다렸다. 물론 함께 하는 것을 소주이다. 테이블 위로 탁 놓인 잔은 누군가와 짠을 외치는 청아한 소리였다. 아마도 혼자라면 홀로 채우는 잔도 기분 좋을 듯한 소리.

  듬성듬성 내가 좋아할 술을 마시며, 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두툼한 회 한 접시로 여름을 즐길 수 있다면 이만한 피서도 없지 않을까?


  역시 여름이라고 회를 못 먹을 건 아니었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면서는 더욱 맛이 좋을 회에 소주. 또 매운탕.

  계절을 탓할 게 아니라, 특별한 날이 없었던 건 아닐지? 회도 먹고 분위기도 마시며 감상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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