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단어를 이래저래 붙어놨다. 다시 떼어 놓기를 즐겨하는 취미를 갖고 있지만 쓰기가 무척 망설여지는 단어이다. 그럴 때는 입버릇처럼 즐겨 쓰는 단어가 금방 튀어나온다.
"굳이?"
아마도 주변에서 보기에 나는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는 출근하고, 앉아서 일을 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사람들의 출근을 하나 둘 인 사하다 보면, 진정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남들보다는 이른 출근은 칼퇴를 목적으로 습관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주말이 완전히 보장되는 내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일이라는 것이 그랬다. 알면 눈에 더 보이고, 손에 익숙해지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 결국은 일이 많아졌다. 신규 때는 맡은 일을 하는 것도 벅차서 힘들었다면, 10년을 일하고 보니, 옆자리 신규가 실수하는 것을 마냥 지나치지 못해서 개입하다가 일이 더 붙어 있었다. 물론 팀장도 과장도 감투에 따라서 무게가 다르겠지.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려고 했던가? 그렇지만, 나는 살려고 보니 이 자리에서 꾸역꾸역 하루를 견디면서 10년이 지났다. 굴곡이 많았던 나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면서, 모처럼 동료들과 특히나 나의 오래된 동기들과 힐링을 주제로 먼 길을다녀왔다. 장소는 '통영'이었고, 어쩐지 꿀빵만 생각나는 그곳에서 뷰맛집이라는 <민수사횟집> 활어회와 랍스터구이를 먹게 되었다.
어쩐지 소주가 떠오르는 통영이다 싶었는데, 다찌를 먹으면서 이것저것 집어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고층에서 느껴지는 바다의 풍경보다는 배고프니 식사만 생각나는 원초적인 욕구가 먼저였다. 이것도 어쩜 힐링 아닐까?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도 행복이기에 사람들이 살던 곳을 잠시 떠나와서 이렇게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 거겠지.
활어회에 각종 곁들이 메뉴가 회전하는 가운데, 회가 메인이 아니라는 것이 신기했던 랍스터 구이를 먹으면서 배가 부르지만 이건 먹겠다는 일념으로 젓가락을 써가면서 살을 발라 먹었다.
좋은 음식 두고는 가끔 그런 사람이 있지 않던가? 꼭 평소에 먹는 것이 더 맛있다면서 튀김을 찾는 사람들. 맞은편에 일행도 그랬기에 회를 내가 더 먹고, 튀김을 양보하는 교환비 안 맞는 거래도 성사가 되는 테이블에서 과거를 회상했다.
신규 시절에는 돈이 없었다. 차도 없었고, 더구나 요령도 없어서 주말에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보는 것 말고는 사무실에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는 점점 결혼하는 지인들이 많아져서 만날 사람도 없었고, 알아가는 업무가 나를 더욱 사무실에 붙들어 놓았다. 그렇게 경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을 잃고는 휴직까지 하면서 10년의 시간을 견뎠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휴직을 해서 '힐링'을 찾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디에도 '힐링'은 잠시 뿐이었다. 찾았다 싶어서 마음에 담아 오면, 돌아오는 길에 분실하고 집에 왔다. 어디에 두고 온 것 마냥 다시 이곳저곳을 돌았지만, 건망증처럼 다시 까먹고는 찾으러 갔다.
쫀득한 횟감에 만족하다가 금방 튀김 한 조각에 마음을 뺏기고, 버터의 향이 묻은 랍스터에 입이 녹는 다면서 감탄했다. 그리고는 역시 느끼한 것보다는 칼칼한 매운탕이 좋다면서 국물을 흡입하는 것을 보면 내가 아는 힐링과 식사도 비슷했다.
나는 통영을 세 번은 온 것 같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번의 통영이 같지 않았기에 처음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갈매기를 보면서 처음도 아닌데, 신기해하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새들의 적은 뇌용량으로도 본능적으로 새우깡은 맛나다는 것을 알고 덤비는 모습이 나 같아서 굳이 힐링을 다시 찾으러 온 나를 납득시켰다. 어차피 어딘가 두고 갈 힐링이라면, 여기서 온전히 먹고 즐기다가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겠노라고.
머리가 나쁜 나는 그 힐링을 잊을까 봐 글을 쓰는 건 아닐지?이렇게 통영에도 두고 온 힐링을 여기에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