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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주스가 여름에 달콤한 이유

노량진에서 회와 주스를 만났다.

by 이춘노

답답한 마음에 사주란 것을 보았다. 나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그런 불안한 호기심으로 나의 생년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를 풀어서 뭔가를 기대하면서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주라는 것은 이미 틀이 있기에 그것을 풀어주는 사람의 경험과 해석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도 심심해서 봤던지. 아니면 작정하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사주에는 공통적으로 내 초년운을 좋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젊은 시절에 고생할 팔자인데?"


사실 나의 20대와 30대는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사도 복잡했지만, 좀처럼 내 인생의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참 어렵게 취업을 하고 고향에 내려왔지만, 극도로 사람을 경계하는 습성은 조심스러운 습관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라도 인연은 왔다가 가는 일이 많았다. 20대에는 취업을 못해서 힘들었다면, 30대는 취업을 하고도 흔들리는 마음을 잡지 못할 상황이 연속된 그 환경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마흔이 되면 다를 것 같았는데, 딱 한마디 더 했다.


"올해 9월이 힘들었을 거 같은데?"


표정 보고 읽혔나? 이미 와버린 고통의 터널에서 그 끝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모습에서 올해는 아직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궁금한 것은 나도 결혼을 할 수 있는 운인가? 사주를 보는 분은 빙그레 웃으면서 2027년과 2028년은 결혼운이 들어와서 여성이 없을 일은 없다면서 장담하듯 안심시킨다. 그러면서 운이 다한 인연에는 미련이랑 갖지 말고, 새로운 인연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슬쩍 장밋빛 인생의 천기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나에게 귀인이 있나? 그러니 청년기에 있긴 했는데, 앞으론 모르겠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귀안이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이 사주를 보고,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오후에 만날 인연 말이다. 내 친구 A였다.


항상 그렇듯이 일정을 마치고, 노량진역 9호선에서 만나기로 했다. 근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를 위해서 일단 최상급 모둠회를 주문하고는 2층 초장집으로 간다. 그 사이에 습관적으로 로또를 구매하고는 소주를 한 병 주문하고는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평소에는 못할 이야기. 어쩌면 혼자서나 주절주절 화가 나서 말했을 것을 이 친구 앞에서는 그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털어놓는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오랜 친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시절을 과거로 돌리면 중학교 1학년이고, 군대도 친구 따라 의경에 갔고, 대학교 시절도 서로의 집을 왕래하고, 취업을 하는 와중에도 서울에서 주말 식사를 함께하던 절친. 그 이후에 2014년 내가 고향에 내려간 후에는 종종 이렇게 서울에서 회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내가 힘든 시절이 있었다. 고향에 내려와서도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거나 힘든 사건이 터지면, 급하게 일정을 잡아서 만났다. 내가 급하게 서울을 간다고 하면, 혹은 친구가 고향에서 소주 한잔 하자고 하면, 그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도 나는 중요한 일에 대한 결심을 하고, 어쩌면 스스로 선언하는 자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사심 없이 들어주는 친구가 있기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는 소주를 두병째 마시고 매운탕을 먹을 쯤에 한마디 했다.

"우리의 20대나 30대가 너무 힘들지 않았나?"


나의 그 한마디에 친구는 소주잔을 비우면서


"그래도 잘 버티고 지났잖아?"


돈도 없는 시골 청년들이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하면서 힘들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겠나. 애초에 무모한 도전으로 서울에 상경애서 각자의 꿈을 찾아서 고군분투했던 시절이었다. 친구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는 딱 18년 전 그 무렵에 아버지가 예수병원 중환자실에 계실 때가 생각난다. 막막하고 두려워서 통화하다가 울음이 터진 것이 생각난다.

내 평생에 성인이 된 이후에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인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달려온 친구는 밥을 사주고, 지갑에 있던 돈을 다 털어서 주고 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적절한 벌이 없이 생활비가 부족한 나에게 봉투를 주고 가던 내 친구가 어쩌면 인생의 귀인이라는 생각은 당연했다.


그렇게 소주 3병을 비웠다. 매운탕에 라면사리까지 야무지게 먹고는 익숙했던 노량진의 변한 모습을 한탄하며 골목길에 있는 카페를 들어가서 요즘 유행하는 수박주스를 주문했다. 그냥 술 마신 후에 시원한 음료를 주문한 것인데, 의외의 청량감으로 기분이 새로워지는 마음이 들었다.

마치 인생은 쓰디쓴 소주지만, 가끔은 그 인생의 틈에서 쉼 같은 존재로 마시는 수박주스. 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해서 이렇게 서울을 올라왔구나 싶으니, 나의 귀인인 친구 앞에서 지금의 고통이 별거 아니라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래 그 힘든 시절도 버텼는데, 지금 이 마음쯤이야. 별 거 아닐 거야."


아마도 긍정이었을까?

친구는 웃으면서 수박주스를 시원하게 마시고 있었다.


참고로 나의 사주는 9월이 고비라고 했다. 고통의 시간이 흐르면 의외로 앞으로는 평범하지만, 본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찌보면 운 같은 사주라지만, 나는 귀인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져도 봤고, 10월도 왔으니 행복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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