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만보 걷는 남자>가 지리산 와운마을을 가다
2018년 여름에 지리산 산내면에 자리를 옮기고,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공기 좋은 곳에 가서 건강해지겠다는 덕담이었다. 마음이 약한 타입인 것은 맞고, 산 좋고 물 좋은 유명한 관광지였던 산내면에 배치받고는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맞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백일장 나가던 추억을 30대 중반에 다시금 펜과 노트를 꺼냈고, 책을 읽고, 그러한 책을 써서 만들어 봤다는 소중한 기회를 얻은 곳이 산내면이었다. 내가 초반에 브런치에 쓴 글도 사실은 산내면에서 6개월에 초고와 3개월의 편집으로 만든 노력의 결과였으니까. 먼 곳에 발령을 받은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내 인생의 교훈 같은 곳이다.
만보를 걷기를 시작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긴 했다. 사찰도 성당도 갔고, 매일 같이 천변을 걸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만 유독 마지막에 가는 곳이 있다면 바로 지리산 와운마을에 천년송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내가 산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천년송 가는 길이 등산을 하는 코스라고 하기엔 노인분들도 산책 코스로 가는 곳이지만, 오르막이 있는 곳은 피하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는 이 조차도 산행에 포함될 만큼 숨이 차고 마음먹고 찾는 곳이다.
남원에서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편한 산내면에서 다시 더 들어가야 나오는 지리산국립공원. 1년 반을 근무하고, 실제로 1년 넘게 살았던 곳이다. 보통은 여름철은 피하고, 봄과 가을에 방문했기에 초가을에 오기에는 사람도 적고 무작정 걷기는 좋다.
최근에 왔을 때도 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숨을 거칠게 내쉬는 것이 문제가 있어도 운동과 산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곳으로 이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곳은 누군가와 올 기회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일과 연관되어서나 혹은 내가 내키지는 않지만 따라나섰던 것뿐이다. 그렇다고 가지 않는 곳은 아니라는 점에서 천년송 가는 길은 나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2020년쯤 나는 휴직을 하면서 이곳에 다시 찾아왔다. 일을 쉬다 보니 평소에는 올 일이 없었던 천년송을 제 발로 찾아서 왔었고, 처음으로 계곡에 발을 담그고, 경치를 구경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관광지가 근무지면 경치를 잘 즐길 것 같지만, 실상은 일하느라 앉아서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전혀 없다. 특히나 나처럼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은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끼고는 천년송을 찾았다. 당시에 고민은 과연 내가 일을 잘 다닐 수 있을지? 불안한 가정 형편과 개인적 건강 문제로 답답함을 풀고자 왔었다.
그러다가 1년에 한 번은 꼭 천년송을 찾았다. 그렇게 오르막이 싫다 하면서도 결국은 마지막에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2018년.
가을에 어느 행사를 위해서 천년송을 올랐다가 무기력한 나에게 무엇이 삶의 활력을 줄지 천년송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마 스스로 물었던 그 질문에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2019년에 복서원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브런치 글도 없었을 것이다. 또 후에 이어진 인연들도 영영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 후로 고비고비마다 마지막은 항상 천년송이었다. 일을 그만두게 되는 시점을 고민할 순간이나, 사람들이 싫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가기 쉬운 곳부터 떠났다. 차로 가기 쉬운 구례 화엄사나 매번 가고 싶었던 서울에 명동성당. 그러다 마지막에 억지로 산내로 갔다.
주차도 저 밑에 공영주차장에 두고는 천천히 올라가다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와운마을을 가기 위해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길 반복하다가 보면 와운마을 천년송에 도착한다. 물론 혼잣말로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사람도 없는 계절과 시간대를 위해서 난 길게 자란 머리도 평일 밤에 후딱 잘라 버렸다. 뭔가 그래야 마음이 정리가 될 것 같은 묘한 심리랄까?
그렇게 오르고 올라서 마주한 천년송은 그대로였다. 2018년에도 그랬지만, 2025년에 천년송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변하지 않은 것은 번뇌 가득한 내 마음일 테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달랐다.
한동안 평상에 앉아서 천년송을 바라봤다. 단풍 축제를 진행하면서 이곳에서 신규 직원과 소원 리본을 나눠주다가 썼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뭐라고 썼는지는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그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건강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도 않았으니까. 아마 너무 소원이 추상적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운명에 더 큰 건강 문제나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작은 행복들을 이미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와서 또 달라는 것인지. 나는 애매한 그 상황에 그만 그자리에서 웃음이 나왔다. 뭐 그렇다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어차피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생겨 버린 것을...
사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마음의 정리가 제법 되었다는 뜻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천년송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툭 던지고 내려가던 곳이니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마음 편하게 천년송을 바라 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난 평소처럼 내 소원을 빌었다. 아주 크게 들리도록 마음을 열어서 말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과감히 잊고,
미련이나 추억도 오래 된 일도 아님에도 무던해지는 것을 보면,
만보의 걸음은 확실히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힘든 9월의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마음이 아파서 걸었던 만보가 내 루틴이 되겠지. 작년부터 어쩐일인지 퇴화되던 내 일상도 점차 회복되어갈 것이고, 건강도 체형도 점점 변할 것이다. 나는 변화를 싫어하는 루틴보이니까. 그조차도 차차 적응해 나갈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9월의 고통을 천년송 아래 평상에 곱게 묻어 두고 자리를 정돈했다.
역시나 오를 때보다는 내려가는 길이 더 마음이 편했다. 땀도 덜나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것이 발걸음이 빨라졌다. 오늘은 아침부터 만보를 걸었으니, 나를 위한 사치로 <남경>이라는 중국집에서 해물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워야겠다. 허전함은 가슴에 남았지만, 그래도 비워진 배를 채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정말 맛있게 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