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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서 기도하다

<매일 만보 걷는 남자>가 명동성당에서 동대문까지 걷기

by 이춘노

종교가 있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무교인 사람도 있다.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어릴 적에 사촌누나와 논한 적이 있지만, 군대 시절 절대자를 찾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경험하고는 지금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감히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분이 나를 지키는지는 모르겠으나, 힘들면 누군가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기하게 뭔가 기댈 곳이 필요한 곳을 찾게 된다. 사찰도 그렇지만, 큼지막한 일이 있을 때는 서울을 올라가 동성당을 찾는다.

보통 출발은 노량진 어느 찜질방이다. 한 여름이라면 물품보관함에 물건을 두고 갈 텐데, 가을이 와서 카메라를 담은 가방 하나로 충분한 짐이라서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어 명동까지는 달리는 버스에서 도로를 따라 구경했다.

사실 명동이라는 곳은 신기한 곳이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세련된 느낌보다는 과거의 건물 속에서 외국인과 관광객들이 뒤섞여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국적인 간판과 사람들이 어딘가로 마구 움직이는 흐름 속 그 어딘가에 명동성당이 보였다.

아마 갈 곳을 잃은 사람이라면 빌딩 숲에서 명동이 아닌 어딘가로 갔을 것 같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지하 성당의 조용한 기도 장소였다. 토요일이라서 결혼식도 있었고, 관광객과 하객들이 성당 주변에 움직여도 그곳은 항상 조용했다.

비가 온 후라서 후덥지근한 초가을 명동성당 지하성당은 각자의 나름에 고해를 위해서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살면서 죄를 안 지은 사람은 없겠지만, 힘든 순간에는 결국 죄를 이실직고한다. 나의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나약한 인간의 간절함. 그건 나도 인간이기에 마찬가지였다.


나의 노트에 빼곡하게 적었을 죄명. 기도의 장소에서 술술 말해봤다. 혹시나 속 마음이 소리로 나올까 입술은 꾹 다물고는 지금의 고통이 앞으로의 행복에 밑거름이 되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취직 전에 그토록 최선을 다하면서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것도 꺼내서 다시금 반성도 했다.


'확실히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구나.'


기도를 하고 후련한 마음보다는 내가 했던 말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이 나를 더 더워지게 했다. 부끄러워 심장이 요동치고, 그 열기에 땀이 났다. 그나마 행복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단체로 사진을 찍는 와중에 나온 소음은 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게 감춰서 다행이랄까?


목이 타는 갈증이 났다. 그리고 성당 앞 카페에서 레모네이드를 한 잔 마시고는 나의 여행 노트에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그리 뭔가를 적다 보니 마음은 정리가 되었지만, 반대로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방향을 잃고, 종로서적을 찾아서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가 신기한 버스를 보기도 했고, 빌딩의 사이 어느 틈에서 보이는 남산타워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북으로 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난생처음 보는 길을 내가 찾아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방향 감각을 잃어 광장시장이 보이고, 청계천이 보였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는지 알면서도 모르고 살았던 시절을 보내다가 이제야 뉴스에서나 보던 곳을 지나쳤다. 그리고 해가 뜨기 시작했고, 난 다시금 시작된 여름을 피하기 위해서 청계천을 따라 걷기를 시도했다.

저마다 이유가 있어 걷는 이 길에서 난 무엇을 위해 걷고 있는건가? 한참을 기도하며 앞으로 미래에 관해서 그리 부탁드렸는데, 당장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게 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동대문이 보이고, 성곽이 보이자. 순간 탄성이 나왔다. 내가 행복하다 느끼던 마지막 장면의 끝자락에 도달했던 것이다.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혜화역에서 걷던 그 길의 마지막 야경을 아름답게 담았는데. 그곳에 내가 무심코 왔던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분은 나에게 오늘 무엇을 보여주기 위에서 이 길을 걷게 했을까? 만보라는 걸음에 집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아무 생각 없이 걷게만 한 것은 아닌 듯한 이번 길은 한없이 걷다가 결국은 동대문에서 마무리를 보여준 것은 뭔가 뜻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이어진다는 그런 의미라면 그 뜻이 너무 절묘해서 당황스럽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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