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만보를 걷는 남자>가 간 구례 화엄사
나는 최근 어쩌다 보니 걷게 되었다. 그리고 무작정 걷다가 만보를 채우기를 9일째 진행 중이다. 이런 고행을 사서 하는 것도 나의 욕망을 끊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걷기 만큼은 정신 수행이라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진행할 예정이다.
아침부터 사무실에 나가서 밀린 일을 하다가 날씨가 좋은데, 기왕 걷는 만보라면 좀 의미 있는 걸음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을 하나 먹고는 바로 구례로 차를 타고 갔다. 나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구례 화엄사를 간다. 남원에서 가까운 사찰이기도 하지만, 사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걷는 길을 좋아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좋지만, 그렇게 땀을 흘리고 도착한 곳에 법구경의 문구가 눈에 보여서 잠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법구경-
지금처럼 마음이 혼탁한 때에 가슴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만보를 채우기 위해서 떠난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쁜 말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고 평소에 다짐한 이유도 이곳 화엄사의 법구경 문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나운 심성이 가슴을 열고 나오기 전에 꽉 눌러줄 근엄한 존재가 필요했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이다. 종교가 없다. 어릴 적에 할머니와 고모를 따라서 교회를 가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군대 입대하고 종교 활동으로 에어컨 바람과 초코파이 유혹에 넘어가서 두어 번 간 것 말고는 교회는 가지 않았다. 오히려 노량진 고시원 옆에 성당과 마음 심난할 때 찾는 이곳 화엄사가 전부였다.
화엄사 경내로 들어서니 화엄사의 고양이 한 마리가 궁둥이 팡팡을 당하고 있었다. 제법 까칠하다는 녀석의 이름은 '삼전'이었다. 덩치가 제법 나가는 노량냥이였는데, 목에 이름표까지 달고 있는 것 보니 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맞는 것 같았다.
삼전이는 나이가 있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절냥이라는 특유의 푸근함과 안정감이 모든 것이 자애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앞선 여성분들도 냥펀치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중생들의 사랑을 감당하기에는 피곤하겠지.
사실 나는 불교 용어를 모르기에 삼전이라는 단어에 옆에 있는 꼬마들이 있다는 것도 잊고
"삼성전자?"
아이들은 몰랐지만,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듯. 피식 웃음이 보였다. 속세의 물이 가득한 나의 머리에 먼저 떠오른 것이 주식 하나 없는 내가 입에 올린 말을 주어 담지 못하고 경내를 돌았다.
나는 부처님 앞에서 서서 기도를 올렸다.
'지금의 고통이 밑거름이 되어 행복할 수 있도록 지켜 봐주세요.
불쑥 떠오른 나쁜 마음이 태도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잡아 주세요.
그리고 제가 노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그 노력만큼 행복할 수 있도록 자애하신 부처님께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합장을 하면서 올린 마음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그래도 오늘의 하늘은 푸르고 선선해서 비가 내리는 와중에 걷는 만보의 걸음보다 더 가벼웠다.
그렇게 이제는 아이들 쓰담쓰담에서 해방된 삼전의 나른한 쉼을 방해하지 않고, 내려가면서
법구경의 문구 하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내가 만보를 걸으면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이 들면서 가슴에 남겼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