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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에 서점을 가다

<매일 만보 걷는 남자> 광주 영풍문고에서 명절을 보내다

by 이춘노

'명절인데 갈 곳이 없나?'


긴 명절 연휴에 사무실만 가기에는 좀 후회가 될 것 같아서 무작정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당장 내차를 타도 될 일이지만, 어쩐지 광주를 가는 길은 버스가 좋다. 아무리 버스비가 비싸졌다지만, 주유비나 톨게이비용을 생각하면 그래도 혼자는 버스가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또 버스에서는 책도 읽을 수 있으니까. 마음 가볍게 다녀오기는 딱 적당한 교통수단이다.


광주까지는 보통 한 시간.

요즘은 만보를 걷다 보니, 겸사겸사 터미널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 5분 후에 떠나는 버스를 급하게 타고는 읽다만 책을 펼쳐 빠져서 보다 보니 광주유스퀘어 터미널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광주에 가는 이유는 사실 서점 때문이다. 전라권에 서점이 큰 곳이 있지도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적당한 서점이 광주유스퀘어 터미널. 남원에서 접근성이 좋아서 성인이 되고부터는 종종 광주로 버스를 타고는 놀던 곳이다.

일단은 내가 돌아갈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처음은 소주잔이 필요해서 2층에 매장을 구경했다. 적당한 크기에 과하지 않은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있던 소주잔이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쓸 수 없게 되어서 같은 것이 있는지 찾았지만 역시나 잠깐 나온 시즌 상품이었나 보다. 아쉬움에 맛있는 라면을 담을 볼이 적당한 면기를 만지작하다가 평소에 먹던 초밥집에서 정식을 주문했다.


나는 딱히 초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1층에 설렁탕이나, 국밥이나 라면 같이 먹기 편한 것을 골랐을 것이다. 그래도 습관이란 게 무섭다. 회를 좋아하는데, 혼자서 회를 시키기는 어려워서 초밥과 다른 것이 섞인 메뉴를 선택하다 보니, 오늘도 역시 초밥 정식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영풍문고에서 문구와 새로 나온 책을 이것저것 둘러본다. 보통 대형 서점에는 신작을 따로 빼 두는 편인데, 그게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요즘 잘 나가는 책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책과 궁금한 책을 찜하고는 보통 카페에서 가방에 있는 책을 읽는 편인데, 아까 버스에서 내가 꽤 집중을 했기에 그 책은 이미 마지막 장을 보고야 말았다.

그래도 서점에 왔으니, 내년에 쓸 다이어리 한 권과 <다크 심리학>이라는 어두운 책을 한 권 골라서는 서점 앞 의자에서 읽기 시작했다. 책이란 것이 그렇다.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유독 손이 가고 눈길이 가서 두꺼워도 순식간에 읽어지고,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소문나서 적은 페이지에 금방 읽을 것 같아도 결국 삼분의 일이나 읽고 먼지가 쌓이는 책도 있다는 건. 개인적인 취향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날도 나의 선택은 어두운 표지에 제목과 내용도 밝은 내용은 하나 없지만, 대뜸 선택한 이유는 요즘의 내 기분을 반영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는 것 보면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라고 하기엔 유명한 것 같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어보니 지금의 내 심리가 이 책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안전한가?'

누군가를 그리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다. 업무를 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들을 신규 직원들에게 말하는 중에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사람을 꽤 의지하고 믿는 편이다. 그렇기에 무엇으로 삶의 동력을 삼아야 하는지를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이 책을 명절에 골라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은 것 보면 확실히 나도 깊은 고민을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아직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답은 사실 잘 모르겠다. 매일 만보를 걷다보니,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를 버티다보니, 주변에 사람에 대한 것도 차츰 무뎌지는 것을 보면. 오히려 망각하고 있기에 내가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은 해야할 것이 사람의 관계지만, 그렇다고 알면서도 당하고 사는 분함도 시간이 지나서 추억이 되는 것은 참 다행이구나.


그래고 아마 한동안은 고민해 볼 생각이다.

앞으로의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더이상 상처 받기는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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