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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보를 걸어도 아픈 남자

마흔이 넘고서 건강검진을 받으며 생각한 것들

by 이춘노

내가 즐겨 마시는 카누를 뜨겁게 종이컵에 타서 마시는 중이었다.


"언제 받으시려고 그래요? 빨리 예약하세요."


1년을 함께 해온 팀원이 나에게 건강검진 예약을 독촉했다. 물론 팀장님도 검진을 받으셨고, 본인이 예약 일정을 정하면서 말한 것이니까. 나는 막판 건강검진 막차를 탄 건 맞다. 그래도 팀원이 나를 유독 콕 찝은 것은 내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걱정을 해준 것이기에 나도 흘려듣진 않았다. 물론 어김없이 세 잔 이상의 카누를 진하게 마시고 있는 중이었만 말이다.

방금의 대화가 9월 초의 이야기였다.

바쁜 일정 때문에 좀 뒤로 미뤄둔 예약이 10월 23일로 다가왔다. 전날부터 심난하긴 했지만,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는 핑계로 그나마 10월 말로 확 미룬 건데, 벌써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검진의 예의라고 한다면, 금식은 기본. 과식이나 매운 것들은 삼가는 게 맞지만, 왜 그렇게 매콤한 것들이 눈길이 가는지. 막판까지 식사를 하고는 금식을 시작했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눈을 감고 알람 소리에 일어났는데, 4시 반이었다.

너무 이른 아침에 예약을 했다. 장소도 전주였고, 위 내시경은 수면으로 할 거라서 차도 두고 간다. 결국엔 첫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출발 시간이 6시였다.

가을 날씨의 쌀쌀함과 상쾌한 새벽 공기와 짙은 안개는 묘하게 기차역의 밝은 불빛과 분위기가 맞았다. 텅 비었을 것 같은 이른 아침의 기차역에는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데, 평일에 아는 직원분이 교육을 간다고 같은 기차를 타고서야 꿈이 아닌 것을 알았다.


'서울이라...'

다음 주에 밀린 일감과 각종 행사를 생각하니, 대체 휴무는 그렇다 해도 주말도 시간이 없는 것을 보니 건강 검진이라는 이벤트 덕분에 쉴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도 건강검진만 아니라면 서울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싶었지만, 난 지금 금식으로 공복 상태였다. 하다못해 물이라도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기차가 30분 정도에 달려 도착한 전주역에서 검진병원까지 택시를 타기도, 버스를 타기도 시간이 애매해서 1시간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나름의 이것도 여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걸으면 적어도 몸무게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열심히 걸었다.


모처럼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전주의 대로를 걸었다. 전주역에서 전북대학교까지 쭉 뻗은 길. 20대에는 돈이 없었다. 부대가 군산이었는데, 휴가를 나오면 전북대학교 구정문에서 약속을 잡고는 술을 마시고 터벅터벅 걸었던 길. 아니면 친구를 만나서 남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걸으면서 서로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걸었던 대로는 여전하지만, 드문드문 변화는 익숙함 속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침이기도 하지만, 점점 빈건물로 번화가의 느낌이 사라져서 그럴까? 이제는 구도심으로 변해가는 과거의 영광이 나와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20대 시절의 전북대학교 구정문과 40대가 바라본 같은 공간은 조금 쓸쓸한 감정이 눈으로 보였다. 그렇게 추억 구경을 하다가 도착한 병원에서 이르게 검진을 시작했다. 높아진 혈압과 위내시경에서 조직검사를 했다는 결과를 듣고, 늘어난 체중. 안 아프긴 하지만, 무서운 피 뽑기. 각종 초음파 검사와 ct를 찍고는 2년 전에는 받지 않은 처방전을 들고는 약국을 갔다. 약사는 위가 안 좋으니, 커피를 일주일간 마시지 말라했다.


'아... 공복에도 커피를 마시는 내가..'


급공복이 밀려왔다.

밥 먹기도 이른 시간이고, 다시금 왔던 길을 걸었다. 아마 검진 결과는 썩 좋지 않을 것을 알기에 기대는 안되지만, 더 나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걷기라도 해서 몸에서 무게를 몇 킬로는 덜어내고 갔으니... 밥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데, 뜨끈한 커피 한 잔이 너무 생각나는 순간. 이동하면서 예매한 기차 시간이 촉박해서 뜀박질을 하는 순간 다시 생각한다.


'헉헉.. 운동을 하긴 해야겠네.'

일단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커피를 마시지는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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