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 어른도 걸리더라
2017년 추석은 개천절과 한글날이 더해져 역대 최고급 최장기 휴일을 보냈다. 쌓인 업무가 제법 있었지만, 이틀은 꼬박 일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평소와 같이 영화도 보고, 늘어지게 잠도 잤다. 노총각의 명절은 그다지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여유는 감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긴 연휴가 지나자 밀린 업무는 한꺼번에 몰아쳤고, 사회복지 관련 행사도 추진해야 하는 우리 과 전체는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토요일 가을 햇볕을 쬐고 좀 땀이 났다.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싶어서 행사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데도 식은땀이 났다. 기침이 없는 오한이 오는 가운데 단순한 몸살이 왔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서 먹고 잤다. 흠뻑 땀을 흘리고,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일요일 저녁에는 얼굴에 발진이 생기고, 열이 심하게 났다. 결국, 다음날 출근을 하지 못하고, 병원을 갔다.
병원에서는 가을철 단골 질병인 쯔쯔가무시병을 의심하며 온몸에 진드기 물린 자국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의료원을 갔다. 어차피 입원할 것 같아서 집에서 옷가지와 입원에 필요한 용품을 챙기고 병원 내과 진료를 받았다. 이미 발열과 두통이 심해서 앉아 있기도 힘들게 되자, 진찰받고 곧장 6인 병실로 입원했다. 다시금 온몸에 물린 자국을 찾다가 갑자기 수두가 의심된다면서 급하게 1인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순간 진드기 물린 자국을 찾던 몸이 전염성이 있는 수두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 와중에 어른이 수두에 걸린다는 것이 아픈 와중에도 헛웃음이 났다. 어릴 적에 친구들이 걸린 적이 있어서 학교도 안 나오고 부러워했던 수두를 30대 중반에 걸린 것이다. 일단 진통제로 고통을 줄이고, 피검사를 진행했다. 당장 병명이 수두로 의심되자, 모든 사람과 격리됐다. 전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병문안도 없었다. 물론 간호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미 온몸은 수포로 가득했다. 손톱으로 시원하게 긁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입안까지 번진 물집에 식사도 어려웠다. 창가로 시내 전경이 보이는 1인실을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좋아하는 책도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컸다.
먹고 자고 눕다가 앉기를 반복한 3주가 지났다. 상태는 호전되어서 물집이 딱지가 되고, 하얀 침대 시트에 떨어지면서 나름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극심한 두통과 발열은 이젠 진통제 없이도 하루를 버티는 때가 오자 아쉽게도 퇴원을 했다.
퇴원하면서 한우협회에서 기부한 물품 전달식과 시청 당직을 병행해야 했다. 그 상황 속에서 다행이라면, 입원한 시즌에는 업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름 비수기인 이웃 돕기 업무로 공백은 크지 않았다. 다만 퇴원과 함께 연말 시즌으로 바쁜 시기가 찾아왔다.
시청에 사회복지 후배들 사이에서는 내가 행려 업무를 보고 있어서 수두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웃자고 하는 소리였을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또 어른들은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극심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다 했다. 그러니 아픈 몸을 챙기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병실에서 혼자 누워 바쁘게 일만 하던 모습과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시간을 되돌아봤다. 몸과 마음이 무너진 상황이 당사자인 내가 봐도 짠했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 입원 소식에 안타까워하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제야 어른이 되려고 아팠던 거 같네요.”
그러면 나이 35살에 수두에 걸렸던 나를 보고 상대도 웃고, 나도 웃었다.
‘정말로 난 어른이 되려고 아팠던 것일까?’ 웃는 나도 그건 잘 모르겠다 싶어 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