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정 눈 내리는 날

나의 과녁은?

by 이춘노

남원 운봉은 고려 시대 변방의 군벌이었던 이성계를 전국구 스타로 이름을 날리게 한 대표적‘황산대첩’의 무대이다. 당시 정규군과 맞먹는 전투력을 가진 왜구의 장수 아지발도를 화살로 투구를 맞춰서 사살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남원 운봉에는 국궁을 쏘는 활터가 있다. 그 국궁장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기부 문의로 말이다.

우리가 11월 중순에 아침 뉴스 후반에 보던 이웃돕기 방송은‘희망 나눔 캠페인’이다. 그맘때면 사랑의 열매를 위해서 많은 사회복지 단체와 기관들이 힘을 모은다. 관공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주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지만 실질적 모금 접수처는 각 시군구 읍면동이다. 그래서 시청에서도 기부에 관해서는 전투적으로 접수를 했다.

출장을 나갔던 날은 눈이 제법 날려서 자동차 전면 유리를 세차게 쳤다. 어렵게 도착한 황산정에서 대표자를 만났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사우(활을 쏘는 회원을 지칭)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을 전달했다. 나는 소중한 돈을 들고 넓은 활터에 쌓인 눈과 저 멀리 보이는 과녁을 봤다. 이런 날씨에 너무나 하얀 세상에 붉은 과녁이 또렷했다. 내가 기부자에게 물었다.


“활을 쏘면 마음이 단련되나요?”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저 과녁에 화살을 날리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아마 내가 활시위를 당겼다면, 저 과녁까지 화살이 닿지 못했을 것이다. 좀처럼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던 당시에도‘이웃돕기를 끝까지 진행하느냐 마느냐?’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청에서 있을 자신도 없었다. ‘희망 2018 나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이제는 실적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사유로 괴롭히던 악성 민원과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직원이라는 낙인은 나를 움츠리게 했다. 전임자의 실적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뉴스에서는 기부에 부정적인 사건들로 인터넷을 도배했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과녁만 보자’ 오히려 간단한 성공 조건에 지금을 전부 걸 수 있다면, 이거라도 해봐야 했다. 기부 불신 뉴스가 쏟아지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의 기부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아닌 ‘기부 상담사’가 되었다. 문의 오는 기부자에게 최대한 친절했고, 기부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설명했다. 나의 기본적인 복지 마인드는‘기브 앤 테이크’였다. 순수한 기부 천사는 분명 존재했다. 기부도 습관이고, 천성이다. 다만 그런 분들이 약간은 순수하지 않은 기부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나는 기부자의 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돈도 들지 않는 보도자료와 감사 인사. 그리고 전달식이라는 시장님의 든든한 지원도 있었다.

희망 계장님의 추진력으로 지역 방송과 기부 방송도 했다. 사랑의 온도는 올랐고,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소소한 기부 영수증 처리를 위해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담당자를 몹시도 귀찮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나는 2018년 1월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인사가 한차례 지났고, 우리 시는 좋은 성과를 이뤘다. 그러한 성과로 우리 시는 공동모금회의 긴급복지 지원 자금과 전반적인 지원도 늘어났다.

나는 황산정에서 활과 화살을 처음 봤다. 시범은 보지 못했지만, 무기로서의 위엄은 대단했다. 밀리터리 덕후였기에 화살에도 관심이 많았다. 활이 매력적인 것은 그 한 번의 행동으로 수많은 곳에 화살이 도달할 수 있지만, 인정되는 것은 과녁에 도달한 화살뿐이라는 점이다. 한번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과녁을 맞히느냐? 아니면 빗나가느냐?’ 운이 좋게 이웃돕기는 과녁에 맞았다. 문제는 화살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인 듯하다. 단순하게 한 시즌에 업무가 맞았다는 것뿐이지 아직도 업무에 불안하면서, 시청을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은 여전했다.


다만 성향이 다른 업무를 함께 하면서 상사는 내가 긴급복지보다는 이웃돕기가 더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은 너무 쉽게 사람의 적응을 속단했다. 우리가 사회복지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면서도 시스템 상만 보아온,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람들은 이중 삼중으로 걱정했다. 그런데 정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무관심하다. 그래서 수많은 화살과 과녁이 존재할 텐데, 무조건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위를 당겼다. 그건 직장인이라면 당연한 숙명임을 알지만, 다음 화살은 쏘기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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