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두품입니다

해운대에 가면

by 이춘노

부산을 가면 꼭 들르는 곳이 해운대(海雲臺)이다. 단순하게 해수욕이나 하던 곳인 줄 알았는데, 그 지명의 유래가 신라 말 학자인 최치원의 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참 흥미로웠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만약에’라는 단어가 금기어처럼 필요 없는 상상이라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역사의 이야기를 보고 듣다 보면 해운대보다는 최치원이 더 기억에 남는다.

여러 불합리한 역사의 피해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신라 시대 6두품 중에서 가장 후세에 이름을 남긴 사람으로 어느 시대나 신분에 따라 자신이 올라갈 관직의 상한선이 정해진 것은 알고 있지만, 무언가 바꾸려고 노력한 최치원의 몸부림은 후대 사람에게도 안타까움과 역사의‘만약에’라는 상상을 덧붙인다….


사실 최치원 같은 천재가 당한 설움에 비할 것은 아니겠지만,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한계를 느꼈다. 그 한계 속에서 입버릇처럼 자신을 스스로 ‘6두품’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직에 대한 한계를 투덜거리면서 인사 시즌에는 공직자 유일한 기쁨인 승진에 관심도 버렸다. 같이 임용된 다른 직렬에 동기는 벌써 7급이지만,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승진이 멀어지다 보니 사람이 욕심이 사라졌다. 공무원에게 돈 욕심이 사라지면 순수해질 것 같지만, 승진과 성과라는 측면에서 보상받을 길이 없어지면, 공무원은 사람들이 말하는 철밥통으로 변했다. 도전도 사라지고, 동료애도 사라졌다. 순수하지 못하다고 그 마음을 비난할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비난으로도 열정은 생기지 않았다.

또 비난하는 사람들은 올라가지 못하는 불합리함에 초점을 맞추지만, 실상 그 사람의 포기로 찾아오는 많은 사회적 손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어쩌면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한 줌의 철밥통 공무원이 생기는 구조는 감수할지도 모른다. 다만 꿈이 없는 공무원들이 당신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의 끝은 본인에게도 비극이다.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어차피 적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고시 출신 영재들이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진 않는다. 나의 부모님이나 형제 같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얼굴을 마주 보고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지금까지 신라 시대에 골품(骨品) 제도가 단순한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능력이 있어도 큰 뜻을 펼치지 못하는 시대의 불운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말이다. 모든 원죄는 최치원을 알아보지 못한 진성여왕 탓이고, 그러니 멸망을 했다고 말이다. 그러다 내가 공무원으로 5년을 일해 보니 이유는 꼭 그게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회를 탓하면서 조직을 탓하면서 꿈을 내버린 다른 최치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래에 살아남을 직업군이라는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도 사람들은 곁을 내주지 않는 사회. 역시나 사회복지는 관심은 주지만, 본인이 하고 싶어 하진 않는 관심. 미래의 긍정적인 직업이라는 것은 그만큼 하기 싫은 일이라는 역설도 존재했다. 그런 대다수의 6두품은 세상을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본인의 발전이 없는 가운데,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텐데. 사지 않은 복권을 바라는 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나는 세상 때문에 6두품이 되었는가?’


그러한 직장인 오춘기 사회복지 공무원은 글을 썼다. 스스로 질문을 던진 상황에서 무언가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글을 적었다. 과연 최치원은 무슨 이유로 해운대를 갔는지는 모르겠다. 일종에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산내면에 들어와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기에는 너무나 상황 탓만 했다. 적어도 좋은 경치에 지리산에서 후세에 남을 이름을 남기진 못해도, 산내면을 탓하는 건 무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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