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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n 20. 2021

후배의 결혼식

나의 결핍은

  봄꽃이 피는 계절에 작년에 입었던 정장을 챙겼다. 입사 때는 70kg대였는데, 스트레스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살이 불어서 90kg을 찍은 상황이었다. 입어보니 바지가 작았다. 한숨을 쉬면서 뱃살을 한번 잡았다. 스트레스로 마신 커피가 있는데, 기존에 정장이 맞을 리가 없었다.

  급하게 정장을 구매하고 안 차던 넥타이를 하고 가는 곳은 순천이다. 바로 후배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서였다. 대학교가 전남 순천에 있어서 후배라고 했지만, 대학교 강의를 같이 들었던 사이는 아니다. 서로 대학교 재학 중 노량진에 학원 수업을 듣다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알고 지낸 동생이었다. 작은 키에 머리를 뒤로 쫙 밀어 하나로 묶은 상태로 동그란 안경을 끼던 여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나는 법원 서기보 시험을 준비했다. 대학교에서 진로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한다면, 법원에 가고 싶었다. 남들이 범접하지 못할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노량진에 올라가서 여름 방학 수강을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듣다 보니 수백 명의 수강생 중에서 같은 학교 출신들을 알게 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꿈을 키웠다. 자신감 하나로 여름 방학도 반납하고 고3 같은 생활을 하는 20대 대학생들은 모두 다 합격을 꿈꾸고 컵밥을 먹어가면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수년을 공부하면서 여러 명의 같은 학교 출신 중에서 도중에 포기한 사람도 있고, 나와 같이 다른 직렬로 갈아탄 사람도 그리고 늦게나마 합격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번에 결혼하는 4월의 신부가 마지막 경우였다.


  모처럼 넥타이를 하니 운전을 하면서도 답답했다. 기차로 통학하던 길을 운전을 하며 내려가는 순천은 감회가 새로웠다. 가는 내내 과거의 회상을 했다. 학점을 위해서 도서관에서 리포트 준비를 하고, 학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며 무거운 수험서를 가방과 손에 들고 다녔던 그 시절이 차 유리 너머로 생각났다. 

  조례동에 있는 성당에서 결혼하는데, 좀 일찍 도착해서 혼자 주변을 걸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서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축하의 말을 전하는데, 같이 공부하던 다른 사람들도 온다는 말에 결혼식을 보지 못하고 뒷걸음치듯 차로 향했다. 후배의 결혼식만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만나서 지금의 나를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확 달라진 외모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이기가 내심 불편했다. 

  국도로 천천히 경치를 보면서 내려왔다가 올라갈 땐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영화도 한 편 보긴 했는데, 내용도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후배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합격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참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고3 생활을 했다면, 대학교가 바뀌었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실력과 환경에 포기하고, 사회복지직으로 목표를 바꾸면서 항상 마음속이 공허했다. 악질적인 민원인이 나를 괴롭힐 때나 말이 통하지 않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들과 상담하다 보면 임용 초에는 다시금 시험을 보고 싶어서 공부도 했다. 그러다가 그마저도 현실에 타협하다 보니 사회복지에 대한 묘한 경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법원직에 합격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수없이 상상하던 것을 잊고 있다가 그날은 부끄러운 모습이 들춰진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자기 개발 서적이나 글에서‘결핍은 나의 힘’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결핍을 생각하면서 묘하게 여기 있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결핍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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