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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인수인계가 되나요?

아이들을 중국에 두고 한국에 간다고?!

by 요다멜리

"아이들을 중국에 두고 한국에 간다고?!"


남편이 주재원으로 중국에 발령을 받고, 우리 가족은 지난 6월 다같이 중국으로 이사를 갔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가족과 집을 돌보는데 내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다행히 아이들은 중국의 국제학교에 그럭저럭 잘 적응을 했다.


다만 11월이 되자 나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부터 육아휴직을 시작했기 때문에 중국생활 5개월만인 11월, 육아휴직이 다 끝나고 복직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해외로 발령받은 배우자가 있을 경우 휴직을 할 수 있는 회사들도 있지만 우리 회사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 돌아가 복직을 하거나, 아니면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복직과 퇴사를 두고 고민을 하던 나는 두 시간 비행시간인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회사생활을 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영어와 중국어를 어린 나이에 습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게, 주재원 생활의 가장 큰 보람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중국에 남아 국제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나와 남편 모두 굳건했다. 따라서 홀홀단신 나만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하다가 주말이나 휴가를 활용하여 중국을 최대한 자주 오기로 했다.


아이들은 "엄마는 우리보다 회사가 더 좋아?", "이럴거면 왜 중국에 온거야?", "우리가 한국에 있는데 엄마가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가는 건 괜찮을 거 같아. 하지만 우리를 중국에 두고 엄마가 한국으로 가는 건 싫어"라며 완강히 나의 복직을 반대했고, 주변 엄마들도 기겁을 했다. 한국도 아니고, 말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중국인데다가 남편은 새벽부터 출근을 하고, 저녁 회식이나 주말 골프 약속 등도 많아 아이들 케어가 쉽지 않다. 그리고 국제학교 특성상 거의 매주, 많을 때에는 하루에 오전, 오후 두 가지 행사가 있을 정도로 학교행사들이 쏟아지는데 초등학생 여자 아이 둘이 엄마 없이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D-30 '엄마' 포지션 맡아줄 사람 구하기


복직을 한 달 앞두고 '주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들을 구했다. 아침에는 집안일을 봐주는 중국인 가정부 이모님(흔히들 '아이阿姨'라고 부른다)이 아이들 머리 묶고, 밥 챙겨주는 일을 맡아주시기로 했고, 오후에는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조선족 중국어 과외 선생님께서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픽업, 간식, 공부, 놀이, 저녁식사까지 챙겨 주시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 분들을 구하기 전까지는 하루에도 수백번 '그냥 퇴사하자'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었다. 그런데 막상 믿을 수 있는 분들을 구하고 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겠는데', '어쩌면 내가 아이들 케어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애들을 떼놓고 갈 생각에 내내 마음에 그늘이 져 있었는데 비로소 따스한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가정부 이모님이 새벽 6시 30분에 와서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시기로 했는데, "孩子们没问题,妈妈有问题“라며, "아이들은 문제 없을 것이다. 엄마가 아이들 보고 싶어하는 게 문제일 뿐"이라고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중국에 있다가 아파서 수술을 받으러 우리보다 더 어린 아이를 떼 놓고 한국에 간 엄마의 이야기를 해주며, 그 아이도 씩씩하게 잘 적응했다고, 애들은 먹고, 씻고, 자는 게 전부라고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 동안 집안일에 있어서도 내가 "이건 어떻게 정리할까요?"라며 물을 정도로 정리정돈을 척척 해내는가 하면 싫을 땐 싫다고 말하는 정직한 이모님이었기에 믿음이 갔다. 그리고 그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등교 준비 시간, 새벽 6시 30분 출근시간을 맞춰 주시기로 했다. 아직도 달이 떠 있는 어두운 새벽, 영하 10도의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스쿠터를 부릉부릉 타고 우리집 아이들 머리를 묶어주기 위해 와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쿨버스에서 오후 4시에 내리면 아이들을 픽업해 주시는 50대 후반 중국어 선생님을 구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을 정말 손녀나 조카처럼 돌봐 주시는 분이시다. 말씀을 하실 때에도 워낙 나긋나긋하시고 상냥하셔서, 오히려 말투가 건조한 나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더 녹여주실 것 같았다. 경험 많은 중국인 입주 도우미를 구해서 아예 집에서 아이들과 붙어있으면서 안정감을 주는 게 좋을까 고민도 했지만 선생님께서 "예쁜 우리 아이들 힘을 합쳐서 잘 키워보아요. 제가 어머님 시름 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라고 진심어린 말씀을 해 주셨고, 이모처럼 생각하라며 오히려 나에게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사 주시면서 힘을 북돋워주셨다. 무엇보다 선생님 본인께서도 교직을 계속 이어가려 아들을 데리고 남편 두고 홀로 고향으로 가서 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경험이 있으셔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다. 하물며 애를 떼어 놓고 가는 엄마 마음은 얼마나 더 힘들겠냐고 말씀하시는데 '선생님은 MBTI 테스트를 굳이 하지 않아도 F다'라고 생각하며 나조차 갈피 잡을 수 없던 마음이 정리되고 이해되었다. 중국에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다니 하나님께 감사한 순간이었다.


직장에서의 인수인계와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엄마노릇 인수인계

linkedin-sales-solutions-46bom4lObsA-unsplash (1).jpg 사진: Unsplash의LinkedIn Sales Solutions


엑셀표로 정리하면 정리가 될까.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은 엄청나지는 않은데 자잘하게 신경 쓸 일들이 참 많았다. 결국 전달을 하려다가 그냥 포기하게 되었다. 100% 엄마가 하던대로 해달라고 일일히 설명해서 전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 엄마의 방식이 무조건 따라해야 하는 절대법칙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미완일지라도 큰 구멍 나지 않고 삶이 유지되고 흘러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두 아이 머리를 묶어줘야 하는데 큰 아이는 머리숱과 잔머리가 많아서 하나로만 묶으면 쉽게 풀리기 때문에 보통 양갈래나 반머리를 해 줘야 하교할 때까지 머리가 유지된다. 아니면 하나로 머리를 묶을 때에는 그냥 링 형태의 고무줄보다는 방울이 달려서 돌려 묶는 짱짱한 머리끈을 사용해야 고정이 잘 된다. 둘째는 반곱슬 단발이어서 그냥 머리핀만 꽂아줘도 잘 유지된다. 다만 화요일 목요일 체육 수업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포니테일을 묶어줘야 한다. 머리핀을 꽂을 때에도 어느 정도 머리를 잡아서 어떤 핀으로 꽂느냐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다르다.


'그깟 머리 묶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이가 엄마가 비록 집에 없어도 학교에서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중국에 같이 살면서 픽업을 갔을 때 머리가 헝클어져 있으면 "버스에서 잤어? 머리가 이게 뭐야?"하며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영상통화를 하는데 아이들 머리가 헝클어져 있으면 나의 부재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 없는 아이의 행색을 하고 살아간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사히 시간 맞춰 준비물 빠뜨린 거 없이 학교 버스를 타는 것이 초기의 목적이었으나 막상 인수인계를 하다보니 '이것도 챙겨야 하는데, 이런 걸 챙길 수 있을까? 이걸 어떻게 설명하고 부탁하지?' 싶은 것들이 계속 생겼다. 옷 골라 입히는 것, 씻기는 것, 먹이는 것, 공부 시키는 것, 대화하는 방식 등등 인수인계를 하면서 업무를 다 전수했다는 후련함이 있기 보다는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엄마가 있어야 이런저런 세세한 걸 같이 챙길 수 있는데' 등등 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회사에서의 인수인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한 페이지, 아니 한 마디로 가능한 인수인계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역할을 인수인계 하면서 엄마로서 갖는 쓸데 없는 걱정이나 불안은 어느 정도 걸러지고, 보다 객관적인 제 3자의 역할로 구분되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기대할 수가 있었다. 이모님께서 맡아주시면 엄마의 잔소리는 걸러지고, '이 닦을 시간이네', '오늘도 피아노 연습 15분씩 해보자' 등 할 일만 산뜻하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엄마가 해야 하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기는 하지만 한 번 아이를 키워본 분들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고 나보다 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일의 복잡성보다도 그 일을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안전과 사랑'만 남았다. 안전과 사랑만 신경 써 주십사 하면 A4 한 페이지 안에 17행짜리 표로 모든 할 일들은 심플하게 정리되었다.


사실 난 아이들 머리 묶는 것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걱정은 많았지만 그저 빗과 머리끈 있는 서랍 위치만 인수인계 한 게 전부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해 주시는 이모님들은 우리 아이들 머리를 이렇게도 해 봤다가, 저렇게도 하면서 내가 있을 때보다 더 깔끔하게 머리를 정돈해 주고 계시다. 한국에서 복직하고 주말을 맞아 중국에 돌아갔을 때 윗집 한국인 언니는 마치 내 걱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아침마다 보면 혜진씨네 애들이 우리 애들보다 머리도 더 깔끔해".


엄마가 신경 쓸 일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결국 엄마의 일이란 할 일 목록들로 정리되거나 인수인계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 중심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심지있게 키우고 그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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