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한 번 겪으면 출근이 행복해집니다
대륙을 건너는 워킹맘에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현재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직장생활과 가족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남편은 중국에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와 있고, 아이들도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나는 한국에 직장이 있기 때문. 내가 '가족생활'이라 표현한 건 내가 중국에 가는 건 특별히 육아나 살림을 한다기 보다 그냥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중국에 가서 가능한 많이 머무르려고 노력중이다.
연휴가 많거나 리모트워크가 가능할 때에는 열흘 이상을 중국에 머물기도 하는데 중국을 출입국 하는 것이 이제 KTX 타고 부산 가는 것보다 더 익숙해졌다. 하지만 중국에 들어갈 때마다 캐리어는 꽉꽉 채워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간식이나 할머니표 반찬들을 최대한 가져온다. 이번에는 둘째의 생일이 있어서 둘째가 좋아하는 족발을 포장해서 가지고 왔는데 짐 찾는 곳에서 마약 탐지견이 내 캐리어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조리된 음식은 가능한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소세지류 같은 가공육류 조차도 반입이 안되는 것이었다. 결국 입국 세관 신고대에서 고기가 있냐는 질문에 '족발이 있다'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모든 족발을 다 반납하였다. 여권을 검사하고 해당음식을 폐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고 증서를 받아왔다. '종류: 족발, 무게: 1.115kg'등이 적힌 노란색 종이였는데 다행히 벌금이나 무서운 문구는 없어 다행이었다. 다만 족발에 생일초를 꽂고 파티를 해 주겠다고 했는데 둘째 아이의 실망이 엄청났다. 둘째는 족발을 보면 "와, 젤리고기다"라며 맛을 음미하는데 중국에서는 한국에서만큼 입맛에 딱 맞는 족발을 찾지 못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입국하여 둘째 생일은 족발 대신 아이스크림 케잌과 딤섬집 외식으로 대체하고, 속절없이 열흘의 시간이 흘러, 일요일 오전 10시 55분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요즘 보통 중국에 들어오면 여권이 있는 핸드백을 그대로 드레스룸에 두었다가 다시 한국에 갈 때 그대로 들고 나간다. 전날 밤 캐리어 짐을 싸고 한국 갈 준비를 마치고 잠을 자는데 무슨 예감이었을까. 새벽에 문득 핸드백에 여권이 있는 지 확인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 4시, 드레스룸 불을 켜고 핸드백을 확인했는데, 없다. 여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집에 있는 모든 캐리어를 다 뒤지고, 서랍, 책장, 파일, 옷장, 옷주머니, 종국에는 휴지통까지 다 뒤져보아도 나오지가 않는 것이다. 158cm의 단신인 내가 캐리어 두 개에 핸드백, 면세점 쇼핑백까지 들고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아파트 정문에 내려 집에 오던 그 날을 머리를 싸매고 다시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보아도 열흘 전 내가 여권을 어디에 잘 둔 건지, 아니면 어디에 흘린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새벽 6시, 출국까지 다섯시간 밖에 남지 않았고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임시 긴급여권을 신청해서 비행기 출발 전까지 받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온 방을 돌아다니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남편과 아이들은 일요일 새벽부터 잠이 깨었고 다 같이 여권 찾기를 시작하였다. 예전에도 인감도장이나 중요한 약을 잃어버려서 온가족이 찾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남편은 놀람과 동시에 '이 여자가 또...'라는 식으로 한숨을 쉬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공항에 데려다주겠다는 남편에게 "다들 늦게까지 늦잠 자, 난 조용히 택시 타고 갈테니까"라고 조신하게 말하던 나였는데, 열시간도 안되어 남편에게 "여보, 영사관에 전화 좀 해봐", "자기 회사에 조선족 차장님한테 전화해서 좀 알아봐 달라고 해봐"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리 뒤져봐도 핸드백에는 입국할 때 족발을 반납하고 받은 증서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문득 그 때 여권을 다시 돌려받지 못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을 받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증서를 꼼꼼히 살피느라 여권은 안 챙기고 못 받은 채 그냥 급히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열흘이 지난 상황이니 이 또한 확신이 없었다. 공항 번호를 검색해서 전화를 해 보고 싶은데 나나 남편이나 중국어를 잘 모르니 공항 번호를 검색하는 기본적인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두새벽부터 아이들 중국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선생님이 공항 유실물 센터에 대신 알아봐 주셨다. 하지만 유실물센터에 분실 여권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내가 타고 온 택시까지 다시 찾아서 알아봐 주셨지만 거기서도 여권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우선 공항으로 직접 가서 그 입국 세관 사무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 있을 거란 100% 확신은 없었지만 여권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은 그곳이 유일했던 것이다. 공항에 8시쯤 도착해서 보안검색대에 족발 증서를 보여주며 "내가 열흘 전에 들어올 때 이 증서만 받고 여권을 받지 못했다"고 파파고 번역기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보안관은 출국 심사관에게, 출국 심사관은 출국 세관에게 그 증서를 넘기며 말을 전했다. 그런데 단발머리의 여자 출국 세관이 그 증서와 나를 이상하게 번갈아 바라보며 못알아듣는 중국어로 막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팅부통(못알아듣는다)"라고 말하며 또 중국어 선생님께 전화하여 그 세관과 연결해 주었다. 그러자 중국어 선생님 왈,
사모님, 지금 그 세관이 사모님이 열흘 전에 빼앗긴 족발을 찾으러 온 줄 알아요. 이 여자가 족발을 이제와서 찾는 게 말이 되냐고, 여긴 족발 없다고 그래요, 지금. 제가 족발이 아니라 여권을 찾는 거라고 다시 말해 줬어요
내가 세수를 좀 안 했기로서니 열흘만에 족발 찾으러 공항에 온 여자로 보였단 말인가. 긴장됐던 마음에 어이없고 황당한 마음까지 더해져서, 여자 세관에게 화를 내고 싶어졌다. "내가 설마 족발 때문에 이 새벽에 여기 왔겠소? 내가 찾는 것은 족발이 아니라 여권이라고! 난 이제 곧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긴 말은 마음 속으로 소리칠 뿐이었다. 실제로 내뱉은 말은 고작 "후자오! 후자오! (여권! 여권!)" 그리고 입국 세관 사무실은 9시에 시작이니 기다리라는 답변만 받았다.
그런데 중국어 선생님께서 나를 족발 가지러 온 여자로 오해했던 여자 세관과 다시 통화를 하여 열흘 전 CCTV를 다시 확인하도록 해 주셨고, 9시도 되기 전에 "사모님, 찾았어요! 찾았어요! 지금 2층으로 그 직원이 전해 주러 간다니 거기서 만나서 받으시면 돼요!"라고 전화를 주셨다. 사실 나도 내가 칠칠맞게 어딘가 여권을 잘못 뒀거나 흘렸거나 쓰레기통에 다른 쓰레기와 버렸을 수도 있다고 단념하며, 한국에 출근 못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열흘동안 공항 세관 책상 위에 덩그러니 있던 내 여권을 찾게 된 것이다. 나에게 족발 폐기 증서를 줬던 그 때 그 사무관이 내 여권을 들고 2층으로 왔다. "이 여권을 열흘동안 있는 줄 몰랐냐. 내 여권 뒤에 연락처도 있는데 왜 전화를 안 했냐. 내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오늘 고생했는 줄 아냐. 저 여자는 나를 족발 가지러 온 줄 오해하기까지 했다" 등등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또 고작 나온 말은 "씨에씨에(감사합니다)" 한마디 뿐. 결국 할 줄 아는 말은 "뚜에부치(미안합니다)" 아니면 "씨에씨에"인 거다. 이 경우, "뚜에부치"는 아니니까 "씨에씨에" 할 수 밖에. 그 사무관이 뭐라고 중국어로 하는데 또 그냥 "팅부통(무슨 말인지 몰라요). 씨에씨에(고마워요)".
공항에 일찍부터 가서 휘젓고 다녀봤자, 파파고를 아무리 돌려봤자 결국 말이 통해야 해결을 할 수 있는 거였다. 전화 몇 통으로 CCTV까지 돌려보게 한 중국어 선생님과 나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여러가지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암튼 그 날 나는 여권이 없어 한국행 비행기표도 날리고, 회사에 출근 못해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남편에게 두고두고 책 잡히는 인생을 살게 될까 두려웠는데 마치 꿈만 같이 여권을 되찾게 되면서 뛸 뜻이 기뻐하며 기꺼이 출근을 위해 출국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가족과 헤어지는 한국행은 마음이 무겁고 슬프기 마련인데 이 날은 무사히 출국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행복하던지. 참으로 인간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은 남편과 아이들의 분위기도 축 가라앉곤 하는데 집에서 여권찾기에 골몰하던 우리 가족들은 여권을 찾았다는 전화에 다같이 기쁨의 탄성을 질렀고, 나의 출국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재미난 해프닝으로 그날을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그 날 스쳤던 공항 직원들에게 "봐라, 그 직원이 안 돌려준 게 맞았다. 난 족발 찾으러 온 게 아니고 이 여권을 찾으러 온거라고! 그리고 이렇게 찾았다, 이것 보세요들!"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행 항공의 체크인을 하러 가던 길, 나는 아까 그 여자 세관에게 들려 여권을 흔들어 보이며 큰 소리쳤다. "후자오! 후자오!(여권! 여권!)
여자 세관이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