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자기야!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해. (종교의 목적은 아니야)
시작한 지 89일 정도 됐어.
처음으로 절을 시작한 날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붙들고 하느라 식겁했어.
그간 나의 정신과 몸이 빳빳하게 굳어있었더라.
며칠 동안은 계단 오르내리기도 버거울 만큼 몸이 말을 안 듣더라고.
한참을 다리에 허벅지에 알 베긴 채로 보냈어.
10일이 지났을 때쯤
절을 하면서 속으로 31...37...42... 숫자를 세는데 도대체 108까지 언제 가나, 속으로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더라.
51,52... 아직도 반밖에 안 했네 싶고.
72... 81... 되니까 슬슬 마음이 급해지는 거야.
100이 되니까 이미 마음에서는 시속 200킬로로 내달리는 광란의 자동차 같더라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절하는 동안 현재에 있지 않았어.
20일, 30일 지날 무렵엔
적응이 좀 됐다 싶었거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숫자가 73에서 85쯤 되는 구간에서 내가 몇 번 했는지 숫자를 까먹는 거야.
78이었나? 85인가? 분명 그 어디쯤인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더니 (꼬꼬무) 머리에서 숫자가 휘발되는 거야.
꼭 그 구간에서. 일주일을 헤맸던 것 같아.
양심은 있어가지고, 작은 숫자부터 그냥 다시 했어!
60일쯤 됐을 때야.
한 번은 아무 생각 없이 절하고 있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나 봐.
108배가 끝인데, 109, 110까지 하고 있더라.
정말 넋을 놓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다 보니 저절로 성찰이 되더라.
비로소 나 자신이 보이더라고.
현재에 머무른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어.
과거 생각, 미래 걱정에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는지 바로 보이더라.
더불어 잘난척했던 모습까지도 말이야.
그 와중에도 내가 잘한 건 뭔지 알아?
매일 절하면서 잡생각의 구덩이에 빠질 때마다
나를 탓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도 오늘 했으니 충분해.'라고 나를 살살 달랬어.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
매사에 뭘 시작하면 20일 정도하고 그만두는 내가, 89일까지 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거든.
절을 하면서 깨달은 건
두 걸음을 한 번에 갈 수 없다는 거야.
세상만사 뭐가 됐든 '한걸음, 한걸음, 스탭바이스탭'이더라!
자기야,
우리 이제 약속하나 하자!
남들 기분 달래주고 비위 맞출 시간에, 나 자신을 먼저 어르고 달래주자는 거야!
난 이제 그렇게 할 거야.
그리고 내가 채워지면 남들에게도 저절로 나의 여유가 전달되지 않을까 싶어.
자기는 오늘 '자신'을 좀 달래줬어? 어떤 식으로 달래줬는지 궁금하다!
<이응노 화가님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