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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Jan 24. 2019

#07. 어떤 무게

 운 좋게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우리는 중학교 2학년 때 모두 같은 반에 배정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그 덕에 학교 내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말썽을 일으켜서 선생님들 사이에 주시해야 할 집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싸움을 하러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는 참 착하고 순했다. 다만, 수업시간에 좀 떠들거나 쉬는 시간마다 말뚝박기(수업이 끝난 뒤에도 집에 가지 않고 놀았다)를 해서 한 두 명쯤 다리를 삐어 병원에 실려 가거나 그런 일이 있었지만 말이다. 놀다 보면 이 정도 사고는 빈번하지 않나.


 친구 무리 중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었다. 비슷한 처지 안에는 가정형편은 물론 가족사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 친구는 부모님이 다 계셨으나 어떤 이유로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친구 집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친구 할머니는 늘 우리에게 늘 맛있는 걸 해주시거나 무언가 먹으라고 권해주셨다. 그 시절에도 할머니는 많이 늙은 모습이셨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이 바로 친구 집이었기에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친구 할머니와 얘기할 기회도 많았다. 간혹 내가 고기나 반찬, 과자 등 먹을 것을 들고 찾아가면 할머니는 뭐하러 이런 것을 가져왔냐고 하시면서 꼭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드셨다.

 어느 날 친구 어머니가 먹으라고 두고 간 고기를 나와 친구, 친구의 할머니 이렇게 셋이 구워 먹었다. 우리는 작고 동그란 나무 밥상에 둘러앉았다. 친구는 옆에 가져다 놓은 휴대용 버너에 고기를 굽고, 할머니는 직접 담근 쌈장이라며 우리에게 권하고, 나는 동네 슈퍼에서 사 온 상추에 벌레 먹은 부분을 떼어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할머니가 수저를 내려놓으시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 손주 놈이랑 친하게 지내니까. 할미가 참 기분이 좋아.”

 나는 쑥스러운 마음에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고 친구도 멋쩍은지 별 말없이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보통은 그런 말씀 뒤 웃으시면서 다시 식사를 하시거나 했는데 그날은 달랐다.

 “할미가 부탁이 있는디. 꼭 들어줘. 응? 이건 꼭 들어줘야혀. 뭐냐 하면. 나중에 할미 죽으면 꼭 우리 손주놈하고 같이 할미 관 들어줘. 꼭. 그렇게 해줄 거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그게 어떤 말인지 잘 몰랐지만, 할머니의 부탁을 꼭 들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 관 이런 단어들이 가져다주는 무거움보다는 ‘부탁’이라는 단어가 더 깊게 들어왔다.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익은 고기를 잘랐고, 나는 알겠으니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나는 친구 집에 자주 방문했고 할머니는 계속 나이를 드셨지만, 언제나 정정한 모습으로 날 맞아주셨다.



 2017년 2월. 친구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진 할머니께서 결국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100세가 넘는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자기가 죽으면 친구와 함께 꼭 자신의 관을 들어달라고 했던 할머니의 부탁이 떠올랐다. 10년이 넘었음에도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니 그 순간이 또렷하게 그려졌다.


 퇴근 후 빈소에 가보니 친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머니와 둘이 살았던 친구에게 할머니는 곧 어머니였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영화 피터팬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아이들이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행복한 생각을 떠올리며 친구에게 다가갔다. 의외로 밝은 모습이었다.


 발인하기 전날. 빈소 옆 다른 빈소가 비어있어 거기서 쪽잠을 잤다. 아침이 되자 친구의 형이 할머니 영정 사진을 들고 맨 앞에서 걸었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화장터까지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친구 할머니는 기독교 신자였는데 버스에 탄 교회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는 새 가죽 냄새가 났고, 교회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화장터에 도착할 때까지 찬송가 부르는 소리만 가득했다. 찬송가 가사에는 천국이 자주 등장했다. 나는 친구를 두고 떠난 할머니가 천국에서 과연 행복할까 생각했다. 천국에는 그리움이 없을까.


 화장터에 도착한 우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팠다. 이어폰을 꽂을까 하다 관두었다.

 할머니 관을 화장할 차례가 되자 나와 친구들은 열을 맞추어 서서 흰 장갑을 꼈다. 죽고 나서도 차례를 지켜야 한다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을 화장할 쇠문이 열리고 우리는 관에 묶여 있는 줄을 잡아 들어 올렸다. 끈의 매듭이 검지와 중지 사이를 파고들었다. '어떤 무게'가 느껴졌다. 100세까지 살았던 할머니 삶의 무게일까. 할머니는 이미 떠나버리고 육체만 남았으니 뼈와 살의 무게일까. 천국에 간 할머니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아야 하기에 두고 간 그리움의 무게일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앞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예전에 친구가 군대에 입대했을 때 손주가 보고 싶다며 내게 전화를 걸어 우셨던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군대에 입대하면 가장 먼저 밖에서 입고 온 옷을 다 벗어 박스에 담아 집으로 보내게 한다. 할머니는 그 소포를 받은 뒤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전화를 끊고 며칠 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먹을 것들을 사서 친구네 집에 방문했었다. 친구가 없는 집. 할머니는 방의 불을 다 끄고 혼자 앉아계셨다. 갑작스러운 우리들의 방문에 할머니는 또 우셨다. 그 당시 21살이었던 우리는 말주변이 없어 그저 할머니의 우는 모습을, 적어도 우리보다 4배 이상의 삶을 보낸 한 사람의 눈물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화장하는 곳 입구에 할머니 관을 내려놓은 뒤 나는 오른손으로 관을 몇 번 토닥였다.


 친구와 그 가족들은 할머니의 함을 들고 납골당으로 떠났고, 나와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검지와 중지 사이를 파고들었던 관을 묶은 매듭의 무게가 손 안에서 계속 느껴졌다. 밖에 비가 조금씩 내렸다. 구름에 수증기가 자꾸 모여들면 그 무게 때문에 구름이 무거워져 비가 내리게 된다고 한다. 뭐든 무거워지면 아래로 내려가는 걸까. 비를 다 보내고 나면 구름은 어디로 갈까.

 나는 엄지로 검지와 중지 사이를 매만지며 창밖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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