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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Jan 31. 2019

#08. 내가 나빠서

 출근길, 앞서 버스에 올라선 사람은 자신의 교통카드가 찍히지 않자 머뭇거렸다. 두 번의 실패.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던 나는 빠르게 내 카드를 찍고 그 사람을 휙 지나쳐 전쟁영화 속 위대한 장군처럼 버스 빈자리를 향해 내달렸다. 그 와중에 카드가 찍히지 않아 서 있던 사람의 신발 앞부분을 밟고 말았다.

 자리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내 뒤에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카드가 찍히지 않는 그를 두고 자신들의 카드를 찍고 있었다. 그는 교무실 앞에 서있는 학생처럼 죄지은 얼굴로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사이에 자신의 카드를 다시 찍어보고 있었다. 삑 삑 몇 번의 실패 후 그는 현금을 꺼내 요금을 지불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후에야 미안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의 카드가 찍히지 않아 내가 먼저 카드를 찍고 들어간 것은 그렇다 해도 발까지 밟으며 지나칠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마치 ‘제대로 찍히는 카드 들고 다녀.’ 하고는 경고의 의미로 발에 도장을 쾅하고 찍어준 것 같지 않은가. 나는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한다. 모두에게 착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이유 없이 다른 이의 하루를 망쳐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매일 아침마다 ‘퇴근 후 딴짓하지 말고 바로 잤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한다. 이 후회는 출근하는 버스에서 최대한 빨리 빈자리에 앉아 30분이라도 자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대학생 때 풍물패에 가입한 적은 없지만, 상모 돌리기를 버스 안에서 꽤나 그럴듯하게 흉내 내며 졸고 있었다. 이렇게 졸다가도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하면 눈이 떠진다. 걸음을 바삐 놀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탄다. 아침 지하철은 뭐랄까 어릴 적 운동회에서 했던 ‘차전놀이’와 같다. 차전놀이란 거대한 통나무 같은 걸 시옷 모양으로 만들어 거기에 한 명의 사람이 타고 나머지 사람들이 밑에서 그 통나무를 받치고 서서 상대방의 통나무를 밀어내는, 그래서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을 떨어뜨려야 하는 민속놀이다(써놓고 보니 마치 내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태어난 사람 같은데 그건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지하철은 떨어뜨려야 하는 상대방 없이 맹목적으로 밀어내는 차전놀이와 같다. 두발을 딛고 자신의 영역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서있기 위해 애쓰는 일이랄까.

 지하철 안에서 밀리고 밀리다 보면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리곤 <누구를 위한 삶인가>라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외쳐 부르게 된다. 겨우겨우 지하철 밖으로 뱉어지고 나면 입영열차 뒤에서 어머니가 그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회사를 향해 느리게 걷는다.

 언젠가부터 출근길 지옥철에서 내린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고 어딘가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다. 나도 저런 표정일까. 어딘가 화 나있는 것 같고, 누군가를 당장에 때릴 듯한 표정으로 걷고 있을까. 매일 아침을 이런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힘주고 있던 미간을 억지로 펴본다.


퇴근길, 회사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후퇴하는 패잔병처럼 집으로 내달린다. 적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다르게 후퇴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니 다시 재정비하여 또 지겨운 전쟁을 시작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다. 삶에 완벽한 승리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후퇴하는 패잔병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안식을 얻고 다시 승리가 없는 곳에서 승리를 향해 내달린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김없이 졸고 있던 중 갑자기 전화가 왔다. 늘 내 얘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절친한 친구였다. 무슨 일이 있는 듯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 않고 일상적인 말만 주고받은 뒤 빠르게 전화를 마쳤다. 그리곤 집까지 계속해서 졸았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나는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아침의 일, 저녁의 일.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한 사람에게도 이기적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나쁘다고 얘기하면서 죄책감을 덜어내고 희석시키려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나쁜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입 밖으로 꺼내놓고 나면 그 무게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없다. 조금은 날아가 버리고 조금은 스며들고 조금은 남은 채 원래의 무게를 잃어버리게 된다.


 종일 찜찜한 마음. 내가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집 현관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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