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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Feb 07. 2019

#09. 이게 우리 잘못이야?

 중학교 2학년. 친구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스실 앞에 서있는 유태인처럼 교무실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으나 우리는 아무 힘이 없었고, 이유 없이 죄의식을 느꼈고, 창피했고, 두려웠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고, 원래 이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지, 지금 이 상황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따질 용기도 없었다. 학교는 그런 우리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하려고 교무실 앞에 세워두고, 그런 교내 방송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들은 교무실 앞에 서있는 친구와 나를 지나치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들의 표정과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연민. 본인은 연민이라 느끼지만 사실은 안도. 자신은 저렇지 않다는 의식. 내 자식들은 저런 일 없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 그중에서 진실로 우리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와 친구는 그걸 가려낼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미 우리는 이 가스실 같은 교무실에 내려올 때 갈기갈기 찢겨 내려왔으니까.


 교무실에 내려오기 십분 전.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학교 내에 방송이 나왔다.

 “이번에 급식비를 지원받는 학생들은 지금 바로 교무실 앞으로 오도록 하세요. 다시 한번 전달드립니다. 이번에 급식비를 지원받는 학생들은 지금 바로 교무실 앞으로 오세요.”

 곧 시작할 5교시 교과서를 책상 위에 꺼내놓고 있던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불러낼지 몰랐다. 이전까지는 제 돈을 주고 먹었으나 아버지가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공짜로 먹는 게 아니라 나라에서 돈을 대신 내주는 것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지불 능력이 없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나라에서 내주는 거니까.

 방송이 끝난 뒤 나는 조용히 교무실 앞으로 내려갔다. 교무실 근처에 가니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주변을 방황하는 아이들을 몇 마주쳤다. 모르는 얼굴과 아는 얼굴이 섞여 있었고, 뭐야 너도?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여기서 뭐하냐?”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같은 반 친구였다. 나는 선뜻 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는 반 별로 둘씩 짝을 지어 교무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친구는 반으로 올라가지 않고 교무실 앞에 섰다. 나도 친구를 따라 옆에 섰다. 우리는 그때서야 서로가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연대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버티게 되었다.


 급식비 지원에 대한 설명과 집에서 도장을 받아오라는 통지서를 받고 교무실을 나왔다. 친구와 나는 이미 수업이 시작된 반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은 거리에 예비군 훈련 방송이 나와도 흘려버리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 당시는 학교 내에서 나오는 방송에 모두가 귀를 쫑긋하고 들었을 시기였다. 한창 수업 중인 지금 친구와 내가 반에 들어가면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야호! 우리는 가난해서 나라에서 급식비를 준대!’ 외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친구와 나는 학교 담을 넘어 근처 놀이터에 갔다. 5교시 수업이 끝난 뒤 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야 반에 있는 친구들과 우리가 서로 모르는 척 넘어가기 편할 테니 말이다. 이미 비어있는 우리 자리를 보고 5교시 담당 과목 선생님이 물었을 것이고, 아이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대답과 달리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선생도 친구들도 다 알고 있을 테지만.

 친구와 신변잡기식 얘기를 나누다 내가 물었다.

 “야, 이게 누구 잘못이냐? 우리 잘못이야? 이거 나라에서 돈 다 주는 거라고 하던데. 누구 말처럼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니잖아?”

 친구는 말이 없었다. 아까 교무실 앞에 서 있을 때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교무실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속삭이며 나누던 대화를.

 “저 둘 왜 저기 있어? 뭐 잘못했나?”

 “그건 아니고 급식비 때문일 걸?"

"급식비? 아까 그 방송?"

"응. 쟤들은 급식비 공짜래.”

 “왜?”

 “나도 모르지.”


 교무실 앞에 서있던 나는 그 애들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와 나는 병신과 머저리처럼 숙인 고개를 더 깊게 숙였을 뿐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빠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한 손에 급식비 무상 지원이 적혀 있는 통지서를 들고 도장을 찾았다. 통지서에 도장을 찍고 아빠 옆에 앉았다. 그리고 취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이게 우리 잘못이야?”


 아빠 잘못이야? 아빠가 술을 좋아해서 이렇게 됐으니 술 잘못이야? 아빠가 술을 마시게 된 게 음악을 해서 그런 거니까 음악 잘못이야? 음악을 했으면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되지 왜 밤무대에 서게 된 거야. 그러니까 다시 아빠 잘못이야? 아니면 엄마 잘못이야?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일하는 엄마 잘못이야? 열 시간 넘게 일해도 제대로 월급 못 받는 엄마 잘못이야? 일해도 돈 못 버는 엄마 잘못이야? 일도 안 하고 맨날 술에 취해 있는 아빠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 내가 태어나서 잘못이야? 급식비 같은 거 신경 안 써도 될 텐데 내가 잘못이야? 내가 학교에 간 게 잘못이야? 아빠가 진 빚 때문에 고생하는 누나 잘못이야?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하는데 학교에 갈 차비가 없어서 울고 있는 누나 잘못이야? 다 우리 잘못이야? 우리 가족 잘못이야? 부모가 가난해서 잘못이야? 가난이 잘못이야? 누구 잘못이야? 응? 아빠, 이게 누구 잘못이야? 이게 우리 잘못이야?


 

 요새도 가끔 중학교 때 그 방송이 나오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고 나면 지금이라도 학교에 찾아가 그 엿같은 급식비(결코 공짜가 아님)를 멋지게 현찰로 계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 나라에서 급식비를 지원받은 1년 내내 나는 급식을 먹으면서 그 많은 음식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씹고 삼켰다. 모두가 기다리는 점심시간이 끔찍했고 괴로웠다. 더 이상 급식비 지원을 받지 않게 되고 나서야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며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어린 나에게 아무 잘못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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