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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Dec 27. 2018

#03. 그렇죠? 손님

 택시 안에는 라벤더 향이 가득했다. 뒷좌석에 앉아 살펴보니 조그만 가습기에서 흰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좌석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평소보다 피곤한 하루였기에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동안 눈과 귀를 모두 닫기로 했다.


 슬슬 잠에 빠져들려고 할 때 택시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끝이 물음표로 끝나는 말이었다. 택시 안에는 기사님과 나뿐이었지만, 통화 중이겠거니 하고 눈을 감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들렸다. ‘그렇죠? 손님.’ 하는 말소리가. 나는 낡은 가게 셔터를 여는 것처럼 힘겹게 눈을 뜨고 앞을 쳐다봤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백미러를 통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택시 기사님의 수많은 질문에 기계적으로 ‘네, 그렇죠. 그렇네요. 그러셨군요. 맞아요.’ 따위의 대답을 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행복했다. 다음부터는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이상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곧 이 택시에서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날 들뜨게 했던 것 같다. 쓸데없는 말을 했다. 혹시 내일 새벽 3시에 콜택시를 부르면 우리 회사까지 갈 차가 있겠냐고 물었다. 40분 내내 맞장구만 치다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지만, 회사에서 진행하는 일 때문에 새벽 4시까지 출근해야 했고 교통편은 택시밖에 없었다. 물론 이 택시를 다시 타고 싶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었다. 잘 알 거라는 생각에 물은 거였다.


 기사님은 새벽 3시면 조금 애매할 수 있겠다며 자신이 마침 그 시간에 우리 회사 근처에서 교대하니까 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마침’이라는 단어가 싫어졌다. 토요일 새벽 3시에 출근하는 것보다 다시 이 택시에 타서 ‘네, 그렇죠. 그렇네요. 그러셨군요. 맞아요.’를 염불마냥 외우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 암담했다.


“제 택시 타면 손님들이 참 좋아해요. 기사님 택시에서는 좋은 냄새도 나고, 깔끔하고, 얘기도 재밌게 해 주셔서 좋다고요. 또 운전을 막 하지도 않고 안전하게 하니까 더 좋다고. 그리고 여성분들이 아저씨는 다른 기사님들하고 다르게 믿음이 간다고 그래요. 이런 건 좋은 거잖아요. 그렇죠? 손님. 그래서 제 택시에는 단골들이 있어요. 서로 번호를 알고 있어서 어디 멀리 가실 때나 새벽에 시간이 맞으면 돈을 더 주시더라도 꼭 제 택시를 타고 가요. 믿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거죠. 그렇죠? 손님. 그런데도 택시 회사에 돈내기가 참 어려워요. 매일 얼마씩 보내야 하는데 그거 채우는 게 참 그래요. 그 몇만 원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고 계속 사람 없는 거리를 빙빙 돌아요. 손님. 어쨌든 우리나라에 택시 기사가 그렇게 많은데 이것도 인연이잖아요. 그렇죠? 손님. 토요일에 회사 나가는 게 얼마나 피곤해요. 제가 안전하게 모셔드릴게요. 손님.”


 새벽에는 부디 조용한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번호를 줄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죠.”

“그렇네요.”

“아 그러셨군요.”

“맞아요.”

 새벽 3시. 나는 어제 탔던 그 택시에서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상황이 시트콤 같아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기사님은 먼 곳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빈 차로 달려왔다는 얘기를 ‘그렇죠? 손님.’ 중간중간 몇 번이고 덧붙였다. 그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안 된다는 걸 억지로 끌고 온 건 아니지만, 새벽 3시에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고 하는데 뭐라 하겠는가. 대신 나도 그 수많은 물음에 꼬박꼬박 답하고 있으니 그도 즐거우리라 생각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군데군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따블!’ 외치는 소리만 들렸다. 텅 빈 도로를 질주해 회사까지 20분 만에 도착했다. 나는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밀면서 가방에 넣어뒀던 연양갱을 꺼내려고 했다. 끊임없는 질문 때문에 괴로웠지만, 새벽에 굳이 여기까지 온 택시 기사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집에서 나오는 길에 연양갱 네 개가 들어있는 ‘양갱 세트’를 챙겨뒀었다.


 “손님. 계산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그래도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빈 차로 달려왔습니다. 손님. 이런 말 직접 하기는 그렇지만, 작게라도 좀 챙겨주십시오. 손님. 하하하.”

 가방 속에서 꺼내던 양갱 세트를 황급히 도로 넣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이냐고, 나도 그러려고 했다고, 너무 당연한 말을 해서 헛웃음이 나온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나온 금액에 추가 요금을 더해 결제해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감사하다며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면서 앞으로는 다리가 부러져도 버스를 타기로 굳게 다짐했다.



 약속 시간보다 40분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가방에 들어있던 양갱 세트를 꺼냈다. 팥양갱 두 개와 밤양갱 두 개가 들어있었다. 한참 동안 책상 위에 놓인 양갱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팥양갱 하나를 뜯어 입에 넣었다. 달달하니 좋았다. 기사님께 전부는 아니더라도 양갱이 두 개쯤 드릴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누구에게 '그렇죠? 손님'하며 도로를 달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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