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랑 Dec 20. 2018

#02. 그런 순간이 있다

 가게 테이블은 전부 나무로 되어 있었고 한쪽 벽에 걸려있는 큰 모니터에서 뉴욕 사진들이 몇 초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매장 안에 사람들이 많아 앉을자리가 애매했다.

 혹시나 서로의 손이 몸에서 떨어질까 노심초사 잡고 있는 커플 옆자리나 목에 사원증을 걸고 누군가를 욕하고 있는 직장인들 옆이 아니라면 화장실 바로 앞이면서 입구 쪽을 보고 앉아야 하는 자리뿐이었다. 커플 옆에 앉았다가는 저 연인의 손을 같이 부여잡고 “손은 괜찮아요?”라고 물을 지도 모르니 제외, 직장인들 옆자리는 음식 삼키기가 힘들 것 같아서 제외. 뒷담화가 그들에게는 어떤 해소와 해방감을 가져다주겠지만, 내게는 단지 불편한 소음?일 테니까. 결국 나는 화장실 앞에 있는 자리를 택했다. 입구 쪽을 바라보고 앉아야 하기에 들어오는 손님마다 눈을 마주치고, 종업원들을 감시하듯 지켜보며 식사해야겠지만, 내 눈을 테이블 위에 고정한다면 무리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은 그저 그랬다. 흔히 먹을 수 있는 맛이랄까. 그러나 답답한 사무실에서 나와 외근 중에 먹는 음식은 뭐든 위로가 된다. 최대한 눈을 테이블 위 음식에 고정한 채 먹으려 했으나, 몇 번이고 자연스레 고개가 올라갔다. 나는 하늘을 볼 수 없는 돼지와 다르게 고개를 들 수 있는 인간이지 않은가.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철렁했다’는 말이 있다. 누가 만든 말인지 찾아가서 이 적확한 문장에 대해 힘껏 박수 쳐주고 싶다. 가슴 위쪽에서 배 아래쪽까지 차가운 무언가가 쓸고 내려가는 느낌. 그녀는 가게 로고가 그려진 검은색 반팔티에 검정 모자를 쓰고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에 복학해서 만났던 '전 여자 친구'였다. 다사다난했던 이전의 일들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우리 사이에는 여타의 연인들처럼 특별함이 있었다. 타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세상 하나뿐인 것 같은 일들을 가졌던 관계였으니까.


 그녀는 내 눈을 피하는 눈치였다.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직장인, 바쁜 업무 중 한 끼를 해결하고 다시 어디론가 서류와 노트북이 든 두툼한 가죽 가방을 들고 구두 소리를 내며 가야 하는 모습이었고, 그녀는 기름때 묻은 옷과 파란색 일회용 장갑을 낀 채 쓰레기들을 봉투 속으로 욱여넣고 있었기에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간이 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동창회를 마치고 내가 야간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에 들어왔을 때, 씻지도 않고 분홍색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검은색 비닐봉지에 아이스크림 몇 개 넣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걸어가는데 중학교 첫사랑과 마주쳤을 때.


 나름대로 시선을 피하려 했으나 5초에 한 번씩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입구 쪽을 향해 황급히 걸어가는데 입구 바로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나는 순간 ‘읍’ 소리를 냈는데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 종업원은 내 전 여자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타인을 내 생각대로 끼워 맞추는 때가 있다. 그 종업원은 굳이 나를 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아르바이트하는 날 보고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중학교 때 첫사랑은 나를 못 알아봤거나 아무 생각 없었을 확률이 높다. 혹은 아이스크림 맛있겠다고 생각했거나.


 그런 순간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일요일과 세탁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