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랑 Jan 03. 2019

#04. 가스가 나오지 않아 큰일이야

 수술을 마친 어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이 얘기를 반복했다. 가스가 빨리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아 큰일이라고. 그때마다 나는 힘들더라도 병원 내부를 걸으며 운동을 해야 가스가 나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화로 어머니 몸 안의 가스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정작 나도 가스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고 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가스가 느껴진다. 나는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모든 걸 때려 부수고 당장에 뛰쳐나갈 듯 나를 괴롭히던 가스가 놀랍게도 주차장에 내려오는 순간 들어가 버린다. 그렇다. 이 녀석은 아무도 없는 지하주차장 같은 곳에서는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주위 사람들을 놀래 키면서, 나를 한껏 조롱하며 나오고 싶은 것이다. 나는 아랫배를 주무르며 지하주차장을 배회할 수밖에 없다. 이 녀석을 살살 달래서 나오게 하지 않는다면, 갑자기 조용한 사무실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가스! 가스! 가스!’ 외칠 수도 있으니까. 간혹 사무실 안에서 조그맣게 방귀소리가 들리면 다들 모르는 척하지만, 순간의 멈춤이 느껴진다. 두드리던 키보드 소리나 무언가 적고 있던 펜이 잠시 멈칫하는 순간 말이다. 소리를 내면 죽는 ‘침묵의 007 빵’ 게임을 하듯 조용한 사무실에서는 '뽀옹' 정도의 방귀 소리도 '콰앙'처럼 들리지만, 또 어디서 난 소리인지도 다 알지만, 서로 모르는 척 아름다운 배려를 해준다.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이 회사가 마음에 드는 몇 안 되는 점 중 하나다. 허나 슬프게도 내 가스는 태생부터 조용히 나올 수 없는 아이다.


 며칠 동안 어머니와 나는 돌림노래처럼 가스 얘기를 되풀이했다. 점심 먹기 전이나 회의를 앞두고도 이어지는 가스. 아무리 노력해도 나오지 않는 그놈의 방귀 때문에 내 머리가 부풀어 오를 것 같았다. 차라리 어머니를 우리 회사 사무실에 잠시 앉혀놓으면 어떨까.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쓸개에 쌓인 담석을 제거하는 건 금방 끝난다고 말이다. 담당 의사부터 주위 사람들까지 다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던 사람들은 내가 쓸개 담석 제거 수술이라고 하면 ‘아, 복강경 수술! 그건 쉬워.’라고 말하며 스스로 차분해졌다. 하도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복강경 수술보다 콧구멍 깊숙이 자리 잡은 코딱지를 빼내는 일이 어렵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말하는 의사 옆. 침대에 누워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영안실에서 봤던 그 얼굴들.

 '죽은 사람의 얼굴은 움푹 꺼져있다. 무언가의 구석이다. 틀니를 빼버린 입이다.'

 나는 몇 개의 죽은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퇴원을 하루 앞두고서야 어머니 배에서 가스가 나왔다. 전화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여전히 지하주차장에서 남몰래 가스를 내보내는 중이었는데,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처럼 연신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신나게 뿡뿡거렸다.


 수술 직후 마주한 어머니 얼굴도, 나오지 않아 걱정하던 가스도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만 있으면 나오고 싶어 안달인 내 가스는 여전히 문제지만 말이다.


 "지나갔지만, 쉽지 않았어요."라고 남겨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그렇죠? 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