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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Apr 25. 2019

#20. 시작하자마자 깨물어 버렸다

 갈빗살 몇 점을 먹었을 때였다. 힘차게 고기를 씹던 내 치아가 볼까지 함께 깨물어버렸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함께 고기를 먹던 회사 동료와 상사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너무 뜨거워서 그랬다고 얼버무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서빙하시는 분께 새 젓가락을 달라고 하고 물을 마셨다. 아니 마시려고 했다. 물을 입안에 머금은 순간 혀에 알보칠을 바른 느낌이 들었다. 알보칠은 구내염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효과가 빠르지만, 약을 환부에 발랐을 때 고통이 너무 심해 몇 번의 심호흡과 수차례의 다짐을 한 이후에 발라야 한다고 알려진 약이다. 바르는 걸 포기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을 입에 머금자 깨문 곳이 싸리 빗자루로 긁는 것처럼 쓰라렸다. 간신히 물을 삼킨 뒤 나는 고뇌에 빠졌다. 평소에 고기를 잘 먹지 못해 한이 맺힌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회식이라고 이때다 싶어 먹는 게 아님에도 나는 왜 볼까지 씹은 것인가. 회식을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제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었는데 어쩌자고 깨물어 버린 걸까. 사장님도 다른 테이블에 앉았고, 회사 전체 회식임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운 좋게 같은 테이블에 앉았건만 이 볼을 가지고 어떻게 남은 고기와 술을 먹을 것인가. 게다가 금요일인데. 회식이 끝난 뒤 주말을, 휴식과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는 나의 주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도 불판 위 고기는 빠르게 줄고 있었다.


 내가 깨물어버린 곳은 입안 오른쪽이었기에 왼쪽으로만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술을 마실 때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 마셨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혀로 계속해서 내가 깨문 곳을 건드렸다. 마치 품 안에 숨겨 놓은 금두꺼비를 몰래 계속 살피듯 ‘잘 있지? 그래, 내가 깨문 곳이 여기네. 벌써 아물 일은 없고, 내가 깨문 모습 그대로 잘 있구나. 계속 건드리니까 쓰라리지만 어쨌든 그대로군. 여기 말이야 여기.’하면서 말이다.


 갈빗살에서 살치살로 고기를 바꿨다. 갈빗살보다 기름기가 많아서인지 숯에 불이 확 올라왔다. 나는 고깃집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은색의 기다란 원통형 환풍기를 거침없이 손으로 잡아 불판에 가져다 댔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고깃집들 환풍기가 그렇게 뜨겁지 않았는데 그 집 환풍기는 불판으로만 굽는 게 아니라 환풍기로도 굽는 게 아닐까, 역시 맛집이라 위아래로 굽는 건가 할 정도로 뜨거웠다. 빠르게 손을 떼었으나 왼손 검지 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불판 위로 솟는 불길 덕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나는 물수건으로 검지를 감쌌다. 만져보니 마취한 듯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어릴 적에 봤던 <뚱딴지 명심보감> 책이 떠올랐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남에게 죄를 지으면 그게 돌고 돌아 자신에게 온다.” 나는 내가 누구에게 죄를 지었길래 벌을 받는가 생각했다. 당신이 떠올랐다. 당신도 이런 일을 겪을까. 나처럼 자신이 잘못해서 벌을 받는구나 생각할까. 그러다 떠오르기도 할까.


 엄지로 검지를, 혀로 입안 볼을 계속 만졌다. 다쳤으면 그냥 두지 왜 계속 만지게 되는 걸까. 건드리면 덧나고 쓰라리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기웃거리고 들여다보게 되는 걸까. 마음처럼.


 시작하자마자 깨물어 버렸지만 괜찮다. 봄이 오자마자 떨어지는 꽃잎도 있으니까. 그것도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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