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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May 02. 2019

#21. 그건 삼만 원이었다

 중계동 이모부는 택시를 몰았다. 그래서인지 친척들 모임에서 만나면 여러 재미난 얘기를 풀어놓았다. 말끝마다 살짝 웃음을 보이며 농담을 하면 어른들은 물론 어린 나와 친척 동생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외가에 문제가 생겨 모였을 때도 어른들의 굳은 표정에 눈치를 보던 어린 우리들을 웃겨주고,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얘기해 사람들을 설득했다. 중계동 이모부는 깊게 믿는 종교가 있지는 않았지만, 흔들림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언가 확신을 가진 듯 말이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중계동 이모부는 예전과 달리 나이가 많이 든 모습이었다. 그날은 한 번도 웃지 않았기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화장터로 갈 운구 버스에는 나를 포함하여 몇 명의 사람만이 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스 밖에서 담배를 태우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마실 것들을 사러 가는 등 제각기 흩어져 있었다. 조용한 버스 안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중계동 이모부였다. 이모부는 운전석을 향해 쭈뼛쭈뼛 걸어가더니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운전석에 앉은 사람에게 흰색 봉투를 건넸다. 운전사는 난색을 하며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봉투를 받아 자신의 양복 품에 넣었다. 순간 쿵쿵 소리를 내며 버스에 올라온 이모부의 딸 그러니까 친척 누나가 이모부에게 왜 저 사람에게 돈을 주느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이모부는 당황해하며 이래저래 설명했다. 친척 누나는 이미 돈을 다 지불했는데 왜 저 사람에게 또 돈을 주느냐고 계속해서 따졌다. 자리에 앉아 얘기를 듣고 있던 운전사는 슬며시 버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걸 확인한 친척 누나는 마치 이모가 이모부 때문에 죽은 것처럼 큰 목소리로 화를 냈다.

 묵묵히 친척 누나의 말을 듣던 이모부가 한참 후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네 엄마 가는 길 운전 좀 조심히 잘 부탁한다고 몇 푼 준 게 그렇게 잘못이냐?”


 이모부의 얼굴이 벌게진 건 삼만 원이라는 금액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자식이 원망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뭐라도 하고 싶은데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떠날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오르던 친척들은 상황을 파악한 뒤 친척 누나를 버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달랬다.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이모부가 이모 영정사진이 놓인 자리 옆에 앉았다. 앉는 소리가 들릴법한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어버린 사람이 앉는 것처럼.


 그건 삼만 원이었다. 남아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어떤 인사였고,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쪽은 이미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났음에도 홀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가 한참 후에야 오지 않음을 깨닫고 주섬주섬 상대방이 두고 간 것들을 챙겨 떠나는, 떠나면서 행여나 두고 가는 게 없나 돌아보는 그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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