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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May 16. 2019

#23. 가만히 서 있던 것 외에 아무 잘못이 없었다

 2년 가까이 출근하며 보았던 옆 회사 건물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는 가만히 서 있던 것 외에 아무 잘못이 없었다.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큰 포클레인을 움직여 건물을 무너뜨렸다. 오며 가며 이 단층 건물을 보았을, 근처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다 구경 나온 사람들은 공사의 소음과 날리는 먼지에 표정을 찡그리거나 불만을 내뱉을 뿐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5층짜리 건물을 세운대."

 "5층? 돈 많이 벌었나 보네."

 "5층을 혼자 쓰지는 않겠지. 몇 층만 쓰고 나머지는 세를 주지 않을까?"

 사람들이 말했다. 그들은 무너지고 있는 건물이 아니라 뒤에 세워질 아직 보이지 않는 5층 건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아침 일찍 시작한 공사는 오후 5시가 되어 끝났다. 나는 회사 밖으로 나와 옆 건물 터에 남은 잔해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누군가는 새롭게 지어질 5층짜리 건물이 아니라 흙과 함께 나뒹구는, 이전에는 한 몸이었을 저 조각들을 봐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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