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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Sep 03. 2024

볶은 깨와 깐 마늘의 사랑

볶은 깨와 깐 마늘은 살림하는 입장에서 받아보면 사랑이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 깨 농사가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러면 금깨가 된다. 70대 권사님은 그래도 괜찮다며 깨를 볶아 가져다주셨고 나는 귀한 금깨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딸에게 보내려고 만들고 계셨던 것 같은데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내가 중학생 때쯤이었나. 엄마는 깨를 볶을 때 나를 부르곤 했다. 그러면 나는 서서 30분을 꼼짝없이 깨를 볶아야 했고,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하기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볶은 깨는 시어머니께 받아서 먹었다. 시어머니까지 돌아가신 후엔 볶은 깨의 귀함을 알았다. 마트에 가서 통깨를 사려고 보니 가격이 비쌌다. 생 깨가 있어서 한 번 볶아볼까. 인터넷에서 '깨 볶는 법'을 찾아 깨를 볶기 시작했다. 신혼도 훨씬 지난 우리 집에서 깨 볶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 볶을 때는 깨를 씻으라고 했는데 깨의 영향분이 빠질까 봐 씻지는 않고 물에 담가 물만 버리고 깨를 볶았다. 그랬더니 깨에 같이 있던 불순물들이 제거되지 않았다. 두 번째 깨를 볶을 때는 정성스레 씻어서 하나하나 불순물을 제거하고 깨를 볶았다. 그리고 후에 알아서 저어주는 냄비를 사서 깨를 볶았다. 20~30분 약한불에서 깨를 볶다보면 납작했던 깨가 통통해지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농촌으로 와서 농산물의 원물 그대로를 선물로 받을 때가 많다. 통마늘을 받았는데 나는 버리지 않게 하려고 그 자리에서 마늘을 모두 깐 적이 있다. 손이 얼마나 아리고 허리와 목은 어떤지 '와 이걸 다 어떻게 하나' 싶었다. 어머니들은 그러한 고생을 감내하고 아들에게 딸에게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것이다. 내가 그 마음을 받다니. 엄마들이 없는 서러움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농산물 수확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성도님들이 얼마나 귀한 마음으로 주셨는지 느껴진다. '권사님은 내가 언제까지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해 한해 섬겨주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다 시한부 같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 막내가 60대가 된 교회에서 목회하다 보면 마을에서 엠블런스가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진다. 한해 한해 기운이 다하는 성도들을 본다. 어떻게 섬겨야 하는 건지 새벽에 나아가 하나님께 물어본다. 그러면 격려해 주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너는 언제 부활 신앙으로 살래' 요즘엔 이 질문이 나를 흔든다. 교회와 가정을 위해 죄에 눌려있지 않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구한다.

80대 집사님은 딸이 집 앞에 난 포도와 복숭아를 주말에 와서 다 따갈까 봐 익지도 않은 것을 끌차에 담아 땀을 뻘뻘 흘리며 갖다주셨다. 허리는 더 굽어 땅에 닿을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집사님 더 드시고 우리는 안 먹어도 괜찮은 거지만 생각해 주셨다는 게 큰 위로다. 집사님은 혼자 사시면서 이러한 낙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시는 것 같다. 예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행사나 사역을 열심히 하는 게 목회인 줄 알아서 열심히 행사를 하고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요즘엔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30년 목회하시는 목사님도 갈수록 목회를 더 모르겠다고 하신 것처럼 참 답을 모르겠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신학자도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답을 모르는 삶'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답이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오늘 내게 선물로 주어진 볶은 깨와 깐 마늘로 또 힘을 얻으며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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