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내가 죽었다. 관은 꽃으로 덮여 있었다. 나의 죽음을 보며 언니가 울고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 내가 정말 죽는가? 하는 마음이 일었다. 뭔가 차분해지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났다. 열정이 필요하지만 때로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꿈에서의 죽음은 새로운 인격의 탄생을 암시한다. 죽어야 다시 부활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죽어야 할 인격이 죽고 새로운 인격이 나오면서 인격의 변환이 일어난다. 이것은 꿈 분석 구조에서 보는 해석이다. 이 구조와 같은 구조가 성경에도 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라는 말씀이다. 아버지와 같은 존경하는 목사님께 배운 목회철학이기도 하다. 공부하면서 상담하면서 실제로 이런 과정을 발견해 가는 것은 내게 참 기쁨이다. 내가 듣고 배운 것을 정말 몸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상담을 공부하고 분석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부분에 변화가 있었다. 내가 참 많이 바뀐 것이다. 내가 나를 임상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 증거고, 그래서 실제로 안내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모태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에 알기는 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뭔가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었다. 많이 안다는 것의 함정이었다. 모래놀이치료에서의 목적은 Self(자기)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자기를 치료하는 것이고, 목회상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라고 말하며 이것을 잃어버렸을 때 신경증에 걸린다고 말하고 있다. 상담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과정으로 가서 스스로 치료하는 자가치유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면의 그릇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깨어진 곳은 붙이고 오물이 묻은 곳은 닦아내면서 스스로 잘 담기고, 담아주게 해야 한다. 정신치료는 다른 말로 영혼 만들기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능력을 받아 태어났고, 여러 상처들이 우리를 밖으로 내몰아 투사를 던지며 건강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게 했다. 무의식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 나쁜 점만 먹고사는 것이다. 우울이 좀 먹고,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고통 속에 산다. 그릇이 잘 재 정비되면 성장하고 변환을 맞이한다.
'그래, 나는 많이 변했지. 이걸 인정해야 해. 나의 아팠던 상처들은 잘 가라. 그리고 새롭게 되어 갈 날들을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