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목회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이 자주 마음에 부대꼈다.
'아 그러면 울어야 하는구나. 우는 것은 힘드니까 울지. 그러면 많이 힘들어야 한다면 나는 그만 힘들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 많이 있었다. 아마도 지쳐있을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는 하는데 자꾸 구멍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욕먹는 게 참 두려웠던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에는 누군가 욕받이? 가 필요한데 나의 자리가 그렇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경험하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부모님의 한숨소리가 내게 유독 크게 들렸더랬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부모가 겪는 감정을 그대로 느낀다. 부정적인 감정은 더 그렇다.
어느 날엔가 새벽에 기도하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반성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누는 대화 중에서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흘러갔을 생각에 마음이 참 무거웠다. 안 하려고 해도 힘들 때는 어김없이 삐집고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서로 대화하다가 풀리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집안에서 아이들이 들었을 때는 소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 또한 내가 아이들과 동일시해서 생긴 생각임을 알았다. 아, 아이들은 나와 다르지. 내 어린 시절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게는 울며 씨를 뿌리는 결과가 엄마의 산소였다. 아 이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는데 엄마는 천국에 갔고 나는 엄마 산소에 들를 때마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임종의 날 엄마의 환하게 웃는 미소를 보고 나는 결심했다. 절대 사모는 되지 않겠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고 유학도 가려고 했는데 엄마를 돌보는 3년의 시간 나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도 엄마처럼 천국에 가는 사모가 되겠다고 나의 의지를 드렸다. 그럼에도 엄마의 산소 앞에만 서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가 아팠던 그 시간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하나하나 극복해 가며 엄마와 나의 삶을 분리해가고 있다. 내게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다가 올 까봐 지레 겁먹는 습관이 있었다. 이것은 무의식으로 내려가서 나를 공포에 질리게 한다. 뭔가 할 말을 다 했는데 어떤 일이 터질까 봐 불안함이 올라오는 것이다. 실제가 아닌 것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면 거기서 다시 생각을 한다. 이것을 분화작업이라고 하는데 계속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많고 광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려고 들면 머리가 아프고 그냥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작업을 하다 보면 마음과 정신이 새롭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별 것 아닌 것들이 내 마음을 지배했던 것이다.
울며 씨를 뿌려 거둔 것은 나의 마음에서 자랐다. 기쁨을 마음껏 느끼고 슬픈 날엔 슬픔을 느끼며 산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되어가는 기쁨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게 나를 참 괴롭히며 살았다. 나와 함께 마음 작업을 하는 내담자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확인하고 함께 극복해 가며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어려워도 울며 씨를 뿌리는 삶이 참 복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