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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Apr 12. 2024

다시 열심히 살고 싶다

목사의 딸에서 목사의 아내가 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20대에 죽음, 결혼, 출산을 모두 경험하였다. 신학교에서 남편을 만나 연애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하여 목회자의 아내가 되었다.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만만하게 생각하거나 자신 있었던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먼저는 생활이 보장되지 않았고 수시로 변하는 상황과 육아를 하는 것 등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더 문제는 어릴 적 트라우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삶 전체를 흔들었고, 이유를 알지 못할 때는 내게서만 문제를 찾고 자책에 빠졌다.


몇 가지 사건으로 내 속에 잠자고 있던 트라우마가 솟아났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가지고 오며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낮에는 열심히 살아내고 밤에는 무기력에 휩싸여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 내게 문제가 생겼구나.' 인식하고 나는 다시 살기 위해 일어났다. 일어나서 뒤 돌아보니 내가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었나 반문하기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말이다.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꾸역꾸역 살아내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춤추며 잘 살고 싶어졌다. 성도들이 주는 사랑도 잘 먹고 나도 사랑을 잘 주고 싶어졌다. 부모님이 경험했던 어려움이 내 것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나는 나로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웠다. 이 경험은 상담 현장에서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부모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믿기보다 부모에게 확인받고 행동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줄 도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콤플렉스 반응에서 그 과정을 알게 된다. '그냥 너로 살아 그래도 돼.'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될 것 같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며 살아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싶은 것 아닌가. 그 행복이라는 것이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나도 너도 살아나는 삶이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이다. 자유는 성숙의 전유물이며 성숙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글을 연재를 하면서 내 속에 있던 감정들이 하나하나 치유되고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표현하고 흘려보내며 단단해지는 글쓰기가 진행되고 있다. 언제나 사람들은 표현해야 한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공간에서 말이다. 나는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 졌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잘하는 게 어떤 건지 나의 평가와 기준이 달라져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라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다. 성경 말씀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마음에 평안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어려움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로 나는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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