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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Apr 05. 2024

고구마 인생

부임하고 나서 전도가 고민이었다. 도시에서 목회할 때는 학교 앞이나 교회 앞에서 매주 붕어빵, 떡볶이, 차 전도를 했었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마을회관을 주로 다니기도 하고 전도축제를 하기도 했었지만 매주 하는 전도가 고민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그냥 나가자고 했다. 몇 권사님이 전도대로 헌신하였고 농촌 환경상 밭일과 논일을 하시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대부분 저녁 드시러 집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집집마다 찾아가는 전도가 심장이 쫄렸다. 요즘엔 문을 열어주는 집도 없고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 문을 두드릴 때마다 겁이 난다. 그런데 한주 두 주 찾아갈 때마다 차츰차츰 반가워하며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신다. 왜 그런가 했더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우리 집사님 남편이 처음으로 환영해 주셨다. 남편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 할아버지 목소리 처음 들어봐. "

"나도ㅋㅋ"

전도하면서 고구마 전도가 생각났다. 오래전에 배운 전도 프로그램이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성도들과 배웠던 것이 생각난다. 고구마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찔러보는 것처럼 한 번 두 번 만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 마을에 갈까요?"

"지난번에 갔던 집이니 또 가봐요."

여기는 이게 딱이네. 지금껏 받아왔던 훈련이 다 무슨 소용이냐. 녹여지지 않으면 쓸모없구나. 이날은 두 가정에서 차를 내주시고, 요즘은 금사과라는 사과도 꺼내시려는데 도망쳐 나왔다. '놔두고 드세요!' 권사님들의 어릴 적 동무들을 오랜만에 재회하고 반가워서 좀 늦어지는 날도 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가는 게 아니라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도 한다. 다녀와서 저녁을 먹으면 그렇게 꿀맛이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어떤 분은 다리를 다쳐 집안에서만 생활하신다.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동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신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을 비관하고 불평 속에 사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 없이 찾는 분들이 있다. 봄이 오면 냉이와 쑥을 캐서 팔기도 하고 동네에 쓰레기를 정리하기도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낙엽을 쓸기도 한다. 어떤 분은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홀로 농사지으며 가축 키우며 혼자서 하루하루 살아내신다. 인생의 오후의 삶은 이렇게 사는 거구나 느끼곤 한다.  자연을 벗 삼아서 자신의 저물어가는 여정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6,70대 인생들에서 이런 걸 느낀다. 젊은 사람들이 그립다가도 참 소중한 것을 배운다고 깨달아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 한해 한해 살아지는 게 인생이었어. 뭐 인생이라고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것마저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한건 나도 이제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는 문턱에 서 있는가 보다. 

갑자기 고구마가 땡긴다. 저녁에 한 냄비 구워내야지. 고구마에 담긴 정서가 점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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