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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Mar 22. 2024

왜 이렇게 늦었댜?

마음이 크면 자유롭다.

마을에서 하는 식사모임이 자주 있다. 주로 각 마을에 있는 노인회에서 단체 식사를 한다. 우리 교회는 4개 노인회를 1년에 2번씩 식사대접 한다. 막내라인? 이  60대인데 집에 계시는 분들이 없고 밭일을 하며 직장도 다니기 때문에 음식을 직접 하기가 어렵다. 점심 대접을 해드릴 때 우리 부부가 대표로 가서 인사드리고 같이 식사를 한다. 노인회에서 팔순을 맞이하는 어르신이 계시면 점심을 쏘시는데 우리 권사님이 팔순이셔서 참석했다. 점심시간에 외출을 끊고 12시까지 부리나케 운전해 식당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 식사를 거의 마치고 계셨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축하드려요~"

"이? 왜 이렇게 늦었댜?"

"엥 12시인데요?"

"아까 가신분들 목사님 얼굴 못봤잖유"


우리 집사님이 동네분들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나보다.

어르신들은 새벽밥을 드시니 점심 식사가 11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아 30분 일찍 올걸' 아니다. 맞출 수 없다. 다른 식당으로 가면 12시쯤 드시니까 할 수 없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처음엔 충청도 화법이 적응이 되지 않아 '왜 이렇게 혼나는 것 같지' 했다. 감정 표현이 서툴다 보니까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지만 사투리에서 억양이 묻어 나와 '화나셨나' 싶을때가 있다. 4인씩 앉아야 해서 모르는 어르신들과 같이 식사했다. '이제 뭐든 잘 먹어요' 속으로 나를 칭찬해 줬다. 처음엔 어려워서 밥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잘 컸어 대견해' 내게 말해준다.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이게 우리 삶이야 함께 살아가는 거야'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8년째 적응 중이다.


처음 부임했을 때 면 체육대회가 있었다. 천막을 곳곳에 쳐놓고 국수를 먹는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땐 30대 중반이었으니 어르신들 틈에 있으면 우리를 구경?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이들을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이젠 추첨권도 받고 경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언젠가 결혼식 피로연이 있었다. 차가 길가에 쭉 주차되어 있었고 피로연 장소는 하우스였다. 나는 국수를 받으며 아직도 이런 문화가 남았구나 신기했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잔치국수에 바지락살과 애호박을 넣어줬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나와 참 맛있게 먹었다. 가끔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본다. '허기가 져서 내려왔다'는 주인공의 대사가 마음에 들었다. 정서적으로 허기가 졌었나 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먹는 국수는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는 것 같다. 가끔은 도시의 문화를 누리고 쉽고, 다양한 세계 음식들도 먹으러 다니고 싶다. 특히 또래 엄마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바램을 안고 나의 결핍을 공부하는 데 쏟으면서 그렇게 나를 키워갔다. 마음이 크면 자유롭다. 그렇게 나는 마음이 쭉쭉 자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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