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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May 03. 2024

팥빵의 소통 오류

6~7년 전의 일이었는데 한 청년이 빵을 사 왔다. 이 청년은 새로운 빵이나 음식 브랜드를 접하면 알려주고 싶어 했다. 나는 디저트 천국인 부산에서 갓 와서 청년의 자랑을 들으면 '좋았나 보구나'했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인정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농촌에서 자라 도시로 직장을 가면서 신기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유명한 팥빵 전문점에서 빵을 사 왔는데 우리 가족 수대로 4개를 사 와서 내게는 생크림 빵을 주었다. 나는 청년에게 장난스럽게 '어? 나는 팥빵 좋아하는데?'라고 했다.  그런데 청년은 상처를 받은 듯했다. 내 딴에는 나는 생크림 이미지가 아니라 팥빵처럼 별 신경 안 쓰고 아무거나 잘 먹는다 그런 뜻에서 한 이야기였다. 청년의 이야기는 곧장 엄마에게 알려졌고, 나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아이가 먼데 가서 빵을 사다 줬더니 팥빵 좋아한다고 했다더라' 엎어버린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앞뒤 다 자르고 들으면 나는 아주 배려심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나또한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오해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 당시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냥 그렇게 묻혀갔다. 그때부터 성도님들이 자주 팥빵을 사다 주었다. 아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좋아하는 취미가 뭐냐라고 물어보면 얼버부리며 말하지 않거나 다 좋아한다라고 대답했었다.


어릴 때 아빠에게 듣던 이야기가 있었다. 아빠가 심방 다닐 때는 식당이 많지 않아 각 가정에서 음식을 대접해 주셨다. 아빠는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해산물을 참 좋아한다. 그날 심방 간 가정에서 꽃게가 나와서 꽃게 좋아한다고 했다가 가는 집마다 꽃게가 나오는 걸 보고 그 뒤로 다 잘 먹는다고 했단다. 어떤 가정은 좋아하는 음식을 지정해 주면 준비가 수월할 수도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근심인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자랐기 때문에 나는 뭐 좋아하냐는 질문에 어릴 때부터 다 좋아한다라고 대답했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중에 하나였다. 나는 늘 고민하고,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쓰느라 예민했다.

이번에 청년에게 내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청년 사역을 주로 했기 때문에 청년들과 농담을 자주 주고받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오고 나니 성도들의 연령층으로 가야 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재미있게 말하려고 했다가 말실수가 되어 갈등 상황을 겪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상처받은 성도님이 있으면 그렇게 부침개를 부쳐 내게 부침개 심부름을 시켰다. 그러면 나는 문을 두드릴 때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엄마가 힘든게 싫어서 군말없이 심부름을 다녔다. 성도님이 아직 마음을 풀지 않으면 곧장 내게 표현한다. 문 앞에 세워놓고 자신의 감정을 풀기도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분들이 그랬는데 그게 또 큰 상처로 남겨졌다. 목회자 자녀에게는 그런 상처들이 있다. 부모님이 힘들까 봐 속으로 끙끙대는 그런것들이다. 그런 상처들은 모이면 충동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자신을 표현하다. 그런 마음이 회복이 되지 않은 채 목회를 하니 나도 모르게 두려운 감정에 휩싸여 성도들의 표정과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때가 있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내게 이런 상처가 있어서 관계에 어려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번에 여선교회에서 야유회를 갔다. 보트를 타고 싶다는 집사님의 말에 우리는 보트를 타기로 했다. 약간 겁이 났지만 60대도 타는데 뭘 못 탈까 싶었다.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것은 재밌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였다는 것을 보트를 타면서 알게 되었다. 남편은 타는 내내 눈물을 훔치고 모두 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 상황이 무서우면서 재밌어서 배가 아프게 웃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이야기가 퍼졌다. 우리는 루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렇다며 농담하며 깔깔거렸다. 루머라는 단어에 팥빵이 떠올랐다. 이제 이 상처를 보내도 되겠다 싶었다. 누구나 소통의 오류와 오해가 있는데 내게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감정이 덧붙혀 크게 다가왔던 거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고, 기억하는 사람도 없어. 그리고 좋아하는 걸 말해도 돼. 알아서 하실 거야.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게 따스하게 말해주고 있다. 내 마음이 따스해지면 따스한 사람이 된다는 원리를 이제 아니까 내게 먼저 따스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두 잊고 지나갔을 일을 오래도록 품고 있으면서 '다시는 그러면 안 돼'라고 너무 어렵게 인생을 살았다. 편안해져도 되고, 가끔은 푼수가 되어도 좋고, 사소한 이야기들도 꺼내놓으면서 다시 평범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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