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회 초년생 강단이 씨

by 마흔에 글쓰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이나영 배우가 주인공 역을 맡았다. 2019년에 방영되어서 그때도 봤었는데 지금은 이 드라마가 다르게 읽혀 푹 빠져서 보게 되었다.

주인공 강단이는 결혼 10년 만에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남편은 사업실패와 함께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 생활 중 어려움이 있어 필리핀으로 유학을 보냈다. 남편의 부도로 집이 넘어갔고 갈 곳이 없는 강단이는 전기도 수도도 끊긴 집에 살면서 취업을 하려고 50군데나 넘게 지원했지만 경단녀에 고스펙은 뽑지 않아 좌절한다. 같이 있는 직원들이 불편해한단다. 나이는 많고 스펙도 좋은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일 시키는 게 불편한 이유와 너무 오래 쉬어 감을 잃었다는 이유다.

강단이가 목숨을 구해줬던 친동생 같은 은호 집에 얹혀살면서 은호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것을 알고 몰래 지원한다. 대학 졸업을 빼고 업무지원팀에 하향지원한다. 그런데 강단이는 자신이 잘했던 일을 하고 싶어 끊임없이 도전해 마침내 인정받는다.


"저는 11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았어요.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했었거든요. 그리고 한 달 만에 재취업했어요.

… 근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까 갑자기 겁이 나는 거예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못해내면 어떡하지? 이런 거요.

근데 이런 마음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오니까 없어지더라고요.

일단 시작하고 나니까 두려움도 사라지고 점점 잘 해내고 싶은 마음만 남더라고요. 지금은 일하는 게 재밌어요…"


그러나 끝내 자신이 하향지원한 사실이 회사에 밝혀져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동료들이 자신의 고스펙과 경력을 알게 되어 사소한 일을 시킬 수 없어 불편해하는 것이다. 강단이는 씁쓸하게 퇴사한다.


경력단절 강단이 씨가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되는 과정이 꼭 나의 모습 같았다. 10년간 아이들만 키우다가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상담사가 되었다. 자격증 하나를 마치고 또 하나를 마치고, 그리고 국가 공인이 필요해서 또 공부를 했다. 그래도 모자란 것 같은 마음은 10년의 공백기가 주는 두려움이었다. 강단이 씨 말처럼 두려움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줄어들었다. 10년의 아쉬움도 있지만 계속 나아가고,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그 자리를 지켜낸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다시 시작한다.

빛이 나지 않는 일부터

나한테 주어진 일부터

다시 일을 배운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처음부터 나는 신입사원이니까. “


강단이는 다시 일어났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엄마라서 일어났지만 다시 자신의 자리가 생기고 자신의 이름이 불려졌다는 게 꿈만 같았다.


나는 나를 맘껏 이용하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쓸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방법은 내가 내가 나에게 상처 주는 일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허용했던 것이다. 나를 하찮게 보도록. 어떤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거나 무시하기도 하는데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쓸모. 그게 너무 간절했다. 공부하고, 상담 일을 하면서 사회적인 쓸모가 생긴 거 같아서 그게 좋았던 것 같다.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뒤처진 느낌.


처음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외에 불리는 내 이름 석자가 어색하더니 이제는 너무 좋다. 그래서 이제야 명함을 만들었다. 다시 신입사원 같으면 어떠랴. 내 인생이 8,90까지라고 한다면 이제 반 온 것이니 나머지 반이 기다리고 있다. 사회 초년생 강단이 씨에게 위로를 받았던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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