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헬렌켈러 전기를 재밌게 읽었는데 한 장면이 상담할 때마다 자주 떠올려지곤 한다. 설리번 선생님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던 헬렌켈러에게 단어를 가르쳐주던 장면이다. 설리번은 물이라는 단어를 가르치려고 몇 번이고 헬렌의 손바닥에 써주는데 헬렌은 마음의 상처가 극복이 되지 않아 배우려하지 않고 설리번을 밀치며 마음을 굳게 닫았다. 그럼에도 설리번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아이가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버텨준다. 헬렌켈러에게 끝까지 '물' 단어를 쓰게 하려고 물을 틀어놓고 손바닥에 쓰고 또 쓰며 씨름한다. 마침내 헬렌은 시각, 청각 장애에도 글을 깨우치고 점자를 만드는데 크게 공헌하는 선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설리번은 유년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포기하지 않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갔다. 다음은 설리번의 졸업연설이다.
졸업생 여러분 의무가 우리를 활발한 삶으로 이끕니다. 기쁘고, 희망에 차서, 진지하게 출발하며, 우리만의 특별한 역할을 찾아 나아갑시다. 우리가 그것을 찾았을 때, 기꺼이 그리고 충실하게 수행하라; 우리가 극복하는 모든 장애물과 성취는 인간을 하나님께 더 가깝게 만들고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중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잘 안된다고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설리번 선생님의 태도를 떠올린다. 견디고 버텨주다가 아이의 증상이 멈추기도 하고, 불안에서 해방된 표정을 보기도 한다.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만 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서 배워야 하는 게 많다. 적응이 만만치 않다. 갑자기 들이닥치면 해내야 하는 시험 같다. 그리고 어느 땐 대우가 부당하다고도 느낀다. 나는 이 일을 왜 해야 할까? 물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고비일까. 때가 된 걸까…
어제 안성기 배우님의 추모 다큐를 보게 되었다. 나이가 많은데도 어려운 액션신을 완벽하게 소화하려고 버티는 자세를 보았다. 밤낮 비를 맞으며 배고픔을 안고 숲 속을 달리고 또 달리는 작업이었는데 한참 어린 후배가 지칠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가 이일을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사랑하니까 그래
아, 내가 이 일을 사랑하고 있네. 그래서 나는 또 어려운 길을 선택했네. 이 길을 걷고 나면 더 단단해져 있겠네.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말이야. 나를 위한 일이야. 나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은 이론만으로 절대 되지 않는다. 임상만이 나를 크게 하는 때가 되었고, 잘하지 못하는 행정을 잘 배우면 나는 한층 확장될 것이다. 행정을 대하고 배운다는 것은 사회성이 커지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서 부대낌을 느끼는 것이다. 잘하는 일, 편한 것만 하다 보면 사람들의 아픔을 어떻게 느낄 수 있나. 고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하여 주의 율례를 배운다.
고비가 왔다. 잘 충전하고 또 넘어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