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청소년이었다.

by 마흔에 글쓰다

현재 나는 아동, 청소년, 성인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 비중은 청소년이 제일 많다. 청소년 상담의 특징은 일단 시간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상담받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년들의 특징은 과대적 자기와 상상 속 청중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쳐다볼 것 같은데 머리카락 한 올, 모공 하나까지 볼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져 산다. 지나치게 민감하게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게 된다. 혹여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까 많이 고민하고 걱정하며 상담실에 찾아온 게 된다. 또한 현실의 자신과 상상 속의 자신의 모습이 현실적 괴리감이 매우 크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의 한계를 잘 받아들이기 어렵다. 입시를 앞에 두고는 더한 모습이 보인다. 중학생 때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전부처럼 여겨졌다면 고등학생 때는 입시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성적이 떨어지면 내 인생이 끝나는 것만 같다. 이런 청소년 아이들의 문제가 보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청소년이 좋았다. 모래상자에서 펼쳐지는 청소년들의 무의식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청소년시절이 치료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집안에서 였다.


집에 있는 우리 집 청소년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언가 조언을 하려고 하면 엄마는 상담사라 그렇다며 거부하고, 뭔가 잘해주려고 노력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이다. 좋아하던 음식을 해놓아도 어느 날은 먹겠다 어느 날은 안 먹겠다. 뭔가 비위를 맞추고 있는 느낌이 나도 슬슬 지쳐가는 듯하다. 이해는 한다지만! 너무하네? 우리 집엔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있다. 이 청소년들과 있다보면 가끔씩 내 마음에 멍이 드는 것만 같다.


이것저것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물어보다가 매일 거부당하니 점점 나도 화가 자주 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아이들에게 한편으로 엄마도 노력하고 있다고 알아주고 이해받기를 바라고 있었다니.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다르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니. 정말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다 문득 아! 나도 청소년이었지 나도 그랬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 비해 나는 청소년기에 자기 표출을 잘하지 못하고 조용하게 보냈다. 통기타를 배워서 학교 갈 때마다 메고 다니고, 수첩에 나의 감정일기를 쓰며 깊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봉사활동도 많이 다녔던 것 같다. 교회에서 발표회나 행사를 하면 모두 참여하곤 했다. 공부 말고 무언가 몰두할게 필요했는데 막상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막막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조용히 지내야 부모님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언니와 자주 갈등이 있어서 나만은 절대 티내지 말자 했던 기억이 난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알 수 없는 막막~~~~~한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런 청소년이었지. 나때보다 아이들의 형편이 낫다면 그거면 되었지. 나는 뭘 걱정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이 크는게 두려운걸까. 나를 떠날까 봐? 그건 아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더 끈끈한 사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힘든게 힘든걸까. 아이들의 통과의례다. 꼭 스스로 통과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이 당연한 거다. 내가 어머니들과 나누는 말인 '기다림의 기적' 을 믿어보자.


나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른다. 그래 나보다 나으면 그거면 되었다. 아이들도 나도 믿어보자. 다 잘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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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