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by 마흔에 글쓰다


언제였더라? 내 기억 속에는 화양연화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것은 나의 결혼식이다. 원래 결혼식을 떠올리면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지 않나. 이제 교정하고 싶어졌다.


엄마는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던 4월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는 3년을 만나 결혼했는데 그 3년 내내 엄마가 아팠다. 병원에서 엄마와 남편은 첫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알았지만 학교 행사를 할 때 어깨너머로 보고 첫눈에 사위 삼고 싶었다고 한다. 우린 CC였고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엄마를 처음 만나러 가는 날. 남편은 나름대로 양복을 차려입었다. 함께 병원 가는 길. 화분 하나를 사서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뭐가 즐거웠는지 세상에 둘 밖에 없었다. 아픈 엄마만 빼면 모든 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언제일지 모를 이별을 준비해야만 했다. 엄마는 내 결혼식에 가겠다고 문지방에 한복을 걸어놓는 의지를 보였다.


엄마의 병새는 나날이 깊어졌다. 나는 결혼식 준비로 분주했다. 그러나 엄마 곁을 지킬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20대 중반의 나로서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슬펐다. 엄마가 까만 물을 다 토해낸 날. 엄마는 알았던 것 같다.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종이에 뭔가를 자꾸 쓰고 싶어 했다. 정신을 잃다가 일어나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엄마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혼식 꼭 해야 해. 행복해야 해" 아니었을까.


엄마가 떠나는 순간. 나는 엄마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는 고통 속에 환하게 웃으며 떠났다. 엎드려 엄마의 눈과 코를 쓰다듬었다. 잊어버리면 어쩌지! 어떻게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져! 한참을 엄마 품에 엎드려 있다가 번뜩 일어났다. 아, 엄마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지. 귀가 제일 늦게 다친다고 했다.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 연신 속삭였다.


나는 결혼식에서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친구들과 손님들이 와주셨다. 엄마자리에는 네 번째 이모가 앉기로 했다. 엄마 없는 결혼식. 이런 결혼식을 해도 되는 건가. 죄책감마저 들었다. 결혼식 가족사진을 잘 보지 않는다. 정말 엄마가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행복한 것이 엄마가 행복한 거네. 그 3년의 시간. 하나같이 선물 같았다. 병원에서 매생이 국이 먹고 싶다는 해서 알지도 못하는 서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구하던 때. 엄마와 걷던 순간들. 둘이서 병원 생활을 하면서 오롯이 엄마를 가졌던 시간. 이렇게 엄마를 위했던 적이 있었나. 이렇게 엄마에게 관심받았던 적이 있었나. 이렇게 나열해 보니 나의 결혼식은 슬픈 결혼식이 아니었다. 결과야 엄마 없이 치른 결혼식이었지만 그 과정 모두에 엄마가 함께 있었기에.


이문세 노래 중에 '슬픔도 지나고 나면' 노래가 있다. '어디쯤 와있는 걸까/가던 길 뒤돌아본다/저 멀리 두고 온 기억들이/나의 가슴에 말을 걸어온다/그토록 아파하고도/마음이 서성이는 건/슬픔도 지나고 나면 봄볕/꽃망울 같은 추억이 되기에.


'알겠지? 이제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해야 해.' 엄마가 하는 말인 것 같다. 나의 결혼식은 화양연화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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