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일생

불이 났다.

by 마흔에 글쓰다

봄이 움트는 4월의 어느 날. "불났슈!" 하는 소리에 밖에 나가보니 맞은편 산에 불이 붙고 있었다. 여기 충청도 농촌으로 이사 와서 불이 나는 것을 종종 봐왔다. 추수 때는 밭에 마른 작물을 태우기도 했다. 그런 불 중에 하나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큰 불로 보여 산 밑에 사는 지인이 생각나 소화기를 챙겨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겁도 없이 소화기로 산불을 끄겠다고 올라갔다. 불은 점점 화마가 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일단 내려가자!.' 그리곤 산 아랫집에 누워 계시던 90이 넘은 할머니가 생각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일어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연기가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자며 모시고 나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바람이 한번 휙 불더니 할머니가 누워계셨던 집이 홀라당 다 타버렸다. 나는 모시고 나오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집 앞에 주차해 놓았던 차를 빼려고 하는데 머리 위에 불똥이 날아다녔다. 손이 덜덜 떨려 시동조차 걸 수 없었다.


그날따라 전국에서 산불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소방차가 왔지만 너무 크게 번져나가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은 이어달리기처럼 산마다 번져갔다. 소방헬기가 출동하면서 불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소방헬기가 떠나면서부터 불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꺼져갔던 불씨들은 다시 타올라 인가 주변으로 오고 있었다. '이게 꿈 속인가!'


다음 날 소방차와 소방헬기가 전국에서 모였다. 하루 종일 불은 꺼도 꺼도 꺼지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불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아이들 중학교는 이미 휴교령이 내렸는데 학교 주변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학교에 들어가려는 선생님께 전화해서 빨리 나오시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학교 주변만 타고 건물은 무사했다. 불이 금방 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불이 난 지 24시간이 지나고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방을 싸라고 하고 이모네로 피신시켰다. 짐을 싸는데 막막했다. 챙길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휴대폰 충전기, 통장, 갈아입을 옷 한 벌 말고는 네 식구가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이라곤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충격적이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산불의 이동경로를 살폈다. 다른 마을에 사는 지인이 반찬을 가져다주어서 요긴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남편과 불 냄새가 베인 옷을 벗지 못하고 지인들의 집 주변을 다니면서 함께 있었다. 늦은 밤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지인의 전화에 잠을 깼다. 불이 뒷 마을 산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지인이 생각나서 집에 찾아갔다. 불길을 따라다니며 상황을 살폈다. 젊은 소방관이 소방차를 타고 신고지점을 찾고 있었다. 경남 사천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을린 얼굴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웠다. 할머니들이 커피와 박카스를 들고 소방관들에게 주려고 서성거렸다. 나는 늦은 밤에 산불 현황을 방송국에 제보하며 기자 정신을 발휘했다. 연합뉴스에서 내가 제보한 사진을 실시간으로 띄워줬다. 새벽 2시, 모두 짐을 싸서 밖으로 나오라는 이장님의 방송 소리를 듣고 차를 타고 마을을 살펴보러 다녔다. 꼭 전쟁 상황 같았다.


동이 트자마자 소방헬기가 오기 시작하고, 큰 불들이 잡혀갔다. 그래도 불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오늘 밤은 또 어떻게 버티나 걱정이 앞섰다. 밤늦게 비가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발 비를 보내주세요. 제발..' 간절하게 기도했다. 오후 늦게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마침내! 불이 끝났다. 2박 3일 동안 불은 마을에 있는 산을 삼켜버렸다. 며칠간 문만 열면 탄 냄새가 진동하고 작은 연기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산불 이후 동네에서 어르신들은 만나면 뭔지 모를 동지애가 느껴졌다. 같이 불을 꺼줘서 고맙다며 인사해 주시고, 농산물도 챙겨 주셨다. 불이 난 집은 손을 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마음이 아팠다. 전국에서 달려와준 소방인력과 여러 도움의 손길들에 감사했다. 나는 도시에서 시골로 오면서 적응 안 되는 것이 많았다. 외부 사람에게 생각보다 마음을 열지 않고 정은 옛말이 되었다고 느꼈다. 나이가 많다고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살아온 시간이 길기에 더 상처받았을 뿐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불이 난 이후 먼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 낸 인생의 선배들에게 존경심이라는 게 생겨났다. 그대들의 경험담을 '또 시작이네'로 듣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2박 3일 산불 경험담은 해도 해도 모자라!


어찌 인생을 예측하랴. 그저 살아내는 거라고, 살려주시니 살아있다고. 순응하는 태도에서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구. 사. 일. 생! 우리는 함께 살아있다. 우리는 그렇게 동지가 되었다.



[홍성 산불은 2022년 강릉과 동해에 발생한 산불 다음으로 최대 규모로 발생한 산불이 되었다. 이 기록은 산불 피해 면적 역대 10위권 규모에 해당한다.

산불로 인해 소실된 면적은 서부면 전체 면적 5,582㏊의 26%인 1,454ha에 달하고, 서부면 산 면적 70%가 소실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홍성 산불 피해 지역인 홍성군에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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