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말고 책이요.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빠른 사람>이 모인 클럽하우스에서 모처럼 많이 웃었다.
이명박 자서전부터 아프니까 청춘까지 모두 소장해두신 분 이야기에 폭소했는데 책을 버릴까 고민 중이시길래 그 나름대로 추억이 묻어있으니 컬렉션으로 보관해도 멋질 것 같아서 버리지 마시라고 부탁했다.
아는 사이라면 집에 놀러 가서 그 컬렉션을 살펴보며 엄청 웃었을 거 같은데.
문자 중독에 가까워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그곳에 쌓여있던 책들을 꺼내 칸막이가 쳐진 레슨 방구석에서 다른 아이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 속에 숨어서 읽곤 했는데
요즘은 폰을 들고 뭔가를 읽긴 읽는데 (주로 시시콜콜한 이상한 것들, 그리고 간간히 중요한 정보들도) 영상을 하다 보니 오히려 책은 정말 안 읽게 됐다.
습관은 남아있어서 서점이나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들은 방구석에 쌓여가는데 정리는 서툴러서 읽지 않은 책들과 읽은 책들이 뒤섞여서 이젠 뭐가 읽은 책이고 뭐가 안 읽은 책인지조차 기억해내려면 한참을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해내야 하는데
올해 친구에게 빌려놓고 안 읽은 책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읽기 시작했더니 금방 몇 권을 완독 했다.
오랜만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진지하거나 실없는 이야기들을
한참을 나눴더니 손끝에 와 닿는 종이의 물성이,
약간 비가 내리고 나면 잠긴 낙엽 같던 책의 향이,
그 시절 그토록 사랑했던 시시하고 대단했던 나의 책들의 기억이 떠올라서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몇 번이고 웃었다. 좀처럼 기억해내기 힘들었던 어딘지 따뜻한 마음으로.
명서는 아니지만 내가 아주 좋아했던
러브 앤 프리를 소개하면서
아마도 20대 여행가였던 일본인 다카하시의 중2병 같은 글귀들을 이제는 그보다 더 어른이 돼버린 내가 다시 읽었을 때 느꼈던 몽글몽글한 감정들을 이야기하면서 책이 잘 안 읽힐 때는 예전에 읽던 책을 인생의 다른 시기에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다고 추천했다.
시간을 넘어 변화한 나 자신의 모습과 예전에 내가,
그러니까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이 다시 한번 추천을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게 또 굉장히 sf적으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어서.
다음은 클하에서 얻거나 내가 나눴던 책 읽기에 관한 팁들 몇 가지
1. 그 책을 산 날과 장소, 날씨 같은 것들을 앞 장에 적어 둔다. 다시 들여다볼 때 의외로 기억하기 좋다.
2. 어떤 책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3. 시간의 격차를 두고 다시 읽기
4. 예뻐서 사는 것은 무죄다.
5. 사놓고 안 읽었다는 죄책감은 버려(우린 이미 망했어)
6. 타인의 책을 빌려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 책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사람이 밑줄 그어 둔 부분이나 낙서한 흔적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 아 맞아 너 다워. 너라면 좋아하겠네. 이런 부분 좋아하지 같은 그 친구의 일면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라.
7. 빌려준 책은 돌려받을 수 없으니 애초에 선물하는 걸로 생각하라.
책 쌓아두고 안 읽은 사람들이 모인 방인데 오히려 사놓고 안 읽은 서로의 책들에 흥미를 보여서 다시 미친 검색과 장바구니 넣기 행렬이 시작됐다.
서재에 책을 두고 ‘이걸 다 읽었어요?’라고 묻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던 움베르토 에코님이 보시면 한심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표지가 예뻐서 사고 웃겨서 사고 누가 읽으래서 사고 유행이라 사는 우리들은
아마도 내일도 다른 책을 사고 있을 테지.
같은 방에 계시던 출판사 관련자 분들의 환한 미소를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