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의 틈
비정규직이 도입되기 시작했던 시점을 기억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개념이 낯설었던 시대에 일자리란 대체로 정규직을 의미하는 거였다.
금융 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일자리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성실히 축적한 재산과 무리한 투기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나자빠졌다. 집을 잃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동안 누군가는
그들이 비운 자리를 주워 담으며 이득을 봤다.
친했던 동료
남은 자와 내몰린 자의 간극은 그 시점만이 아니라 이후의 삶의 형태도 완벽히 다르게 빚어냈다.
내몰린 자들의 자녀들은
또 그들의 자녀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라디오에서 디제이의 리드멘트가 흘러나온다.
우리 국민들이 잘 극복한 겁니다.
IMF는 극복된 적이 없다. 누군가의 삶을 대가로 치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갔을 뿐이다. 그 격랑 속에서 공기업과 국가기관만이 무사했다.
그 세상을 보고 자란 세대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공무원 아니면 고 김재순 씨의 세상, 두 가지 세상만 있는 거예요.
구의역의 김 군에서 김용균으로 그리고 다시 김재순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안정성을 얻어내지 못하면 위험이 상주하는 일터로 내몰리는 청년들은 타인과 연대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한다.
그 아파트
아이들이랑 놀지마.
어차피 공부 잘하는 애들 몇 명만
올려 보내면 됩니다.
경진대회 수상 못하면
지원도 끝이야.
아파트의 가격으로 우정을 가르는 부모들.
형편없는 주거 시설로 학생들에게 임대를 놓고 자신의 자녀들의 해외유학자금을 마련하는 집주인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만을 위한 교육과 실적을 위해 인턴과 고등학생들을 갈아 넣는 사업체들.
매일 7명이 죽습니다.
코로나 19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매일 브리핑을 해요. 오늘은 이렇게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죠. 간단한 거잖아요. 이렇게 사람이 죽었습니다.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산재사망률로 악명이 높은 한국.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정규직 막차를 타지 못한 청년들이 이제 막 진입하기 시작한 일자리는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위험한 업무 시에는 2인 1조로.
이 간단한 지침은 비용 앞에 공허하다.
2인을 투입하는 비용보다 노동자의 목숨 값이 더 싸게 먹힌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주는 산업 구조는 책임소재조차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업은 노동자의 생명을 싼 비용으로 치르고 도망갈 수 있다. 이러한 기업의 면피를 방지하기 위해 설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직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례를 보여줘야 한다.
안전한 트랙을 벗어나면 지옥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얼마나 가혹한 취급을 받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자라난 세대에게 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일까?
보고 자라난 것들이 발신하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 그 이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틈이 필요하다. 견고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사이에서 그 이면 너머를 엿볼 틈새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이 아니라
동시에 위험하지 않은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에서 밀려나더라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할 줄 아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경쟁에서 유리하지 않은 사람들과 밀려난 사람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비인간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삶을 계획할 수 있는 틈이 생겨난다.
저 아파트의 아이들과 이 아파트의 아이들이 함께 자라나고 인턴은 적성을 찾을 수 있는 든든한 기회가 되고 경진대회는 자신의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학교는 학생을 버리지 않고 국가는 노동자를 버리지 않는 공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런 선례를 보여줘야지만 청년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게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이분법의 구조를 깨고 정답은 아니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작은 샛길이라도 열어두는 것.
그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청년들은 사회를 신뢰하지 않는 거다. 그 어떤 질책이나 설득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다.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던 시점을 기억한다. 낯설고 생소한 어감에 여러 번 그 단어를 되뇌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