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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un 01. 2020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좋아한다. 타인이 창조한 세상 속에서 가상의 인물들이 그들의 의지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광경은 언제나 경이롭고 순수하게 즐겁다.


모파상의 재기 발랄하고도 신랄한 감각을,

농담 한 번 하지 않을 것 같은 조지 오웰의 심각함을,

더글러스 애덤스의 반짝이는 상상력을 좋아한다.


간혹 작가들이 별도로 기고한 글 모음도 찾아서 읽긴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쩍 자주 에세이집을 집어 든다. 돌이켜보니 소설을 읽은 지가 오래됐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요즘은 소설 대신 늦은 시간, 새벽의 영화관에서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간다. 아무도 없는 새벽녘, 세상이 멸망해버린 듯한 어둠이 내린 도시의 빈 거리를 지나 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잠시나마 타인의 세상을 거닐다 보면 다시 같은 아침이 찾아온다. 영화가 소설의 자리를 대신하는 셈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새는 밤이 많아지면서 일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사적으로는 전보다 더 사람을 만나지 않기 시작했다. 흥미도, 재미도, 감동도 심지어 어떠한 편안함도 없는 관계들이 지겨웠다.

소수의 사람들로만 곁을 채워두고 아주 힘이 들 때, 병원을 찾듯이 그들을 찾았다. 그마저도 어려울 때는 글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세이를.

소설이 영화 같다면 에세이는 사람 같다.
그가 써 내려간 활자를 따라 걷다 보면 결국 그 길의 끝에서 그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그 일들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그 감정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들려준다. 차분히 곁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용한 카페에 들어왔다. 엊그제 도착한 권석천 기자의 에세이집을 읽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에세이를 읽는 사람은 어쩌면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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