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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May 29. 2020

덕분에

언제나 그 뒤에 노동이 있다.

SNS 챌린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작점을 알 수 없고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흐름 안에 묻혀버린다. 민주적인 참여로 보여지지만 사실 침묵의 나선이 가장 극명하게 내재해 있을거라고,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보다 주관이 더 중요했던 질풍노도의 시기라면 신경쓰지 않았을 사소한 것들을 언제부터인지 쉽게 넘기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꼭 해줘야해"라며 멋쩍어하는 언니의 목소리에 "응"이라고 선뜻 대답했다.                     


덕분에.                                 




엄지 손가락을 올리고 다른 손바닥 위에 얹는다.

수화로 '덕분에'란 뜻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서 최전선에서, 그러니까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한 손을 들고 읊었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의료진들을 향한 시민들의 자부심과 격려가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다고. 그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


페이스북에서는 순식간에 수십개의 이슈가 타임라인을 타고 올랐다 스쳐 사라진다. 울음을 터뜨리는 간호사의 영상. 잠시 멈춰서 다시보기 버튼을 누른다.


'사실은 너무 힘들어요.'

자부심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날 새는 일에 익숙하다. 편집 손이 느리고 생각이 많은 탓에 수십번 편집을 갈아엎는다. 그러다보면 새벽이 온다. 편집실이 스산하면 편집실 문을 잠궈둔다. 낡은 건물이라 음울한데 일이 밀리다보면 귀신이라도 나타나서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편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혼자 웃은 적이 있다. 아마 편집하다보면 차라리 성불을 할 걸.


의욕이 넘치고 심각하게 자괴감을 자주 느끼던 시절, 한 주에 며칠을 날을 새다가 이러다 이대로 잠들고나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좀처럼 눈을 감지 못했던 날이 있다. 유독 그날 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숨막히게 조용한 새벽의 어둠 속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누워있던 내 귓가에는 미친듯이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보면 사람이 둔감해진다.

누군가 야근이 많다며 하소연이라도 하면 '그게 뭐가 어때서?'란 생각이 들고 만다.

나의 노동만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에도 무감해진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순수하고 악의없이  

날새는 게 뭐가 어때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몸이 회복될 때 즈음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망가졌었는지

내 일상이 얼마나 황폐해졌었는지

무리하게 끌어다 썼던 시간들에 대해 내가 치룬 대가의 의미를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캠페인 촬영을 위해 택배기사노조 지부장을 만났다. 언택트가 뉴노멀이 된 이 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배송문화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특징이었다. 어디서든 배달이 가능한 음식들, 하루만에 도착하는 생필품들. 크지 않은 국토와 인구밀도를 생각해보면 정말 한국적인 현상이다. 빠르고 편리하고 기술적이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이 당연해진 시대. 각기 다른 색의 조끼를 입은 기사들이 교차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오르내린다.

                 

택배기사들은 개인 사업자다. 업체와 계약을 통해 구역을 부여받는다. 말하자면 김사장, 박사장, 다들 사장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업체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당일 배송을 하지 못할 경우 패널티가 부과된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배송 사고가 나도 마찬가지다. 패널티는 재계약에 문제가 된다. 배송한만큼 돈을 받기때문에 휴가도 가기 어렵다. 며칠이라도 날을 비울 경우 대체 인력을 스스로 마련해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잦은 자리비움은 배정 받은 구역을 뺏길 위험도를 높인다. 고용형태도 제각기 다르고 고용조건도 회사마다 다르다. 한 노조 깃발 아래 모이기 힘든 구조다. 그럼에도 어렵게 모아 노조를 조직했다. 설립한지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교섭테이블에 앉지조차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용직들의 상황은 더 어렵다. 이곳에서도 익숙한 광경이다.


택배를 배송하기까지 기사들은 몇가지 단계의 업무를 거쳐야한다. 그 중 물류센터에서 택배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계약서 어디에도 없는 업무다. 수백가지의 상자들을 분류하고나서야 배송은 시작된다. 틈틈히 물건을 보내겠다는 사람들의 물품도 받아챙기고 반품을 하거나 교환하는 고객들도 따로 관리한다. 거래업체도 별도로 챙겨야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퇴근 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미처 식사할 틈이 도저히 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싸준 그대로 돌아온 도시락을 버리는 것은 아내에게 무척 속상한 일이 될테니 차라리 먹은 것처럼 버리고 귀가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당일배송이 당연한 게 돼버렸어요. 예전에는 48시간 안에만 배송하면 됐었거든요."


업체마다 빠른 배송을 무기로 삼았다. 디자인이 세련된 앱에 접속하고 쉽게 가닿기 어려웠던 세계 각지의 물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만 하면 다음날 아침 현관문 앞에는 상자가 도착해있다. 정오나 오후에 이루어지는 배송과는 다르게 새벽배송에는 택배기사의 흔적조차 없다. 마치 상자가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문을 열면 상자만이 홀로 남아있다.

 

얼마전 숨진 동료기사의 부고를 보며 그는 새벽 아무도 없는 아파트 계단을 떠올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이 들어있을 시간. 아침마저 채 가닿지 않은 그 적막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오르는 계단. 그곳에서 무슨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죽음. 그게 두렵다고 했다.

                             

덕분에.


덕분에 우리가 산다. 누군가의 노동력을 갈아넣으며 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생필품을 공급받는다.

자부심 이면에 사라진 노동의 흔적을 찾아내야한다. 울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목소리가 어쩌면 더 건강할지도 모른다. 편리한 세상, 그 이면에 언제나 노동이 존재한다. 상자를 나르는 손과 계단을 오르는 다리를. 피로한 몸을 쉬게 하고 소중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려하는 인간이 그곳에 있다.


덕분에.

덕분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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