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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May 13. 2020

타인의 이력

선배의 이력을 대필하며

타인의 이력을 찾아 적어 내려 가다가 타이핑을 멈췄다. 텅 빈 사무실 안은 적막 했고 유독 쌀쌀한 밤이었다. 모니터 안을 채운 글자들 위로 커서가 깜빡인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대신 써 내려가는 이력이라 듬성듬성 빈 공간들이 많다. 건조한 눈을 커서처럼 깜빡이며 활자들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한 때 내 나이였을, 한 촬영감독의 이력.                     


오랜 시간을 같은 자세로 있어 불편해진 어깨를 뒤로 젖혔다.                     

추리 소설을 쓰듯이 한 해 한 해 다른 동료들로부터 전해 들은 그의 행적을 정리한다. 불분명한 연도와 프로그램 이름은 뉴스 기사를 검색하면서 빈칸을 채워 넣는다. 어떤 것들은 기록으로 남아있고 어떤 것들은 좀처럼 나타나질 않는다. 지금 찾아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영원히 찾지 못하겠지.                     


그의 이력에는 나 역시 한 줄 포함되어 있다. 신입 시절에 엉겁결에 맡게 된 작은 프로그램.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선배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끝없이 늘어지는 일정 때문에 서둘러 밥을 도시락으로 대충 때우거나 비효율적으로 긴 이동시간을 보내면서도 돌아보면 항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일정을 상의했었다.                     


이미 몇십 년 현장을 먼저 겪은 이 베테랑 선배들이 사실은 우왕좌왕하는 나를 차분히 기다려줬던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반짝이는 재능과 감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다. 열악한 상황과 그보다 더 부족한 재능을 탓하며 언제나 조급했고 그래서 항상 스스로를 답답해했다. 잘하고 싶었고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날카로웠고 쉽게 초조해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먼저 이 과정을 겪었던 선배들이 저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봐. 그렇게 하는 거야. 여기까지 와봐. 기다려줄게.                    


누구도 이 시간들을 대신 겪어줄 수 없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충분히 겪고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딛기를 기다리는 거다. 지금은 터덕거리더라도 조금씩 보조를 맞출 수 있게.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운이 좋으면 두어 번, 그러나 적어도 단 한 번은 보조가 맞는 순간이 찾아온다.                     

10년 정도 일을 하면 4개에서 5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정규 프로그램보다는 호흡이 길고 제작자들의 색을 낼 수 있어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르다. 전담 팀으로 마주하면 그때는 달릴 수가 있다. 그 순간을 만날 때까지 길고 긴 인내심으로 연출자는 촬영 감독을, 촬영 감독은 연출자를 키워낸다. 지역사처럼 선배와 후배의 터울이 큰 방송사에서는 이런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기 어렵다. 15년 차의 촬영감독과 5년 차 연출이 함께할 확률은 대체로 두세 번이 끝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작도 생에서의 인연처럼 적확한 타이밍으로 서로를 만날 확률이 소중하다. 그래서 기다린다. 다그칠 수도 없고 끌어올릴 수도 없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문제들을 겪어내면서 따라붙기를.                     


그의 이력 한편에 적힌 함께 만든 프로그램의 제목. 부족하고 부끄러워서 함께한 선배에게 정말 미안했던. 커서가 깜빡깜빡. 한참을 그 자리에서 깜빡깜빡. 더 잘할 걸.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부질없다는 걸 잘 아는 하나마나한 후회의 감정들.                     


오월 특집으로 태국에 들어갔던 선배가 변경에서 군인들에게 녹화된 테이프를 뺏길 뻔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작은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힌츠페터를 떠올리며 마저 이력을 채워 넣는다. 오월의 광주가 그랬듯이 태국의 그들에게는 선배가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는 선배의 카메라에 담겼고 광주에 알려졌다.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는 태국을 빠져나와 이제 기록으로 이곳에 남아있다. 그 사실이 무척 중요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나보다 어렸을 선배는 그곳에서 무엇을 봤을까, 카메라에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2019년 좋은 사람들과 이별을 했다. 좋다는 기준은 대체로 주관적이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는 다정한 인사와 안부의 문자들을 오랫동안 잊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무척 드물고 귀하다.                      


여기서 일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없이 몰아쳐오는 공허함과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 그런 감정들이 엄습해올 때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후배를 키우려 했던 선배들의 인내를 기억한다. 순간 반짝이는 감각과 재능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전혀 다른 미덕이 거기에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사실 헌신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변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초조해하거나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 과소평가되기 쉬운 그들의 성실함은 뜨내기들은 상상할 수 없는 굵고 넓은 직조를 하며 탄탄한 바닥을 쌓아 올린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 딛고 선 바닥의 안정감은 그 선배들 덕분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선배는 불시에 회사에서 쓰러졌다.      


몇 개의 이력을 더 추가하고 저장 키를 누른다.      

사람에게 이력이란 어떤 의미일까.      

한 줄 한 줄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들이, 그들의 노력들이 압축돼있는 제목들.      

화려하진 않아도 이들이 함께한 순간들이 모두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 그 자신에게든 세상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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