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도시

어떤 투사들

by soulblue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 투사가 되는 걸까 궁금했었다. 역사를 배울 때마다. 기록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모멘텀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이들이 학생이었고 노동자들이었다. 때로는 정치인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유명한 도시에 살면서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실존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거리로, 또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게 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훈련받은 군인도, 경찰도, 소방관도 아닌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이 결정이 자신의 삶에 큰 위협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거리로 나섰다. 사람을 구했다. 도시를 방어하고 정치와 협상을 하고 외신에 알리고 최종적으로는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하는 거대한 마지막 보루가 됐다. 도시 곳곳에 실존하는 그 흔적들을 매일 마주하면서도 나는 그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있던 직장인을 위한 어느 교육시간에 명철한 글을 쓰던 한 기자가 강사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투사가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세상을 이미 떠난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별처럼 빛나던 그들을 잃었기에 시리도록 슬프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오가던 대화들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투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없다. 다만 그렇게 되어버린 것뿐이지'란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는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마도 수많은 상념들이, 복잡한 감정들이, 결국은 인간에 대한 경외와 연민이 뒤섞여서 종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그런 경험들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투사는 만들어진다. 그리고 투사로 살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다.


상실의 아픔과 사랑하는 이가 남기고 간 유지가 뒤섞여 애통함과 비통함에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상상이 되지도 가늠할 방법도 없다. 불시에 약탈당한 애정 하는 존재의 빈자리를 쓰다듬고 쓰다듬어 마음의 바닥이 뚫려버린 사람들의 상흔은 너무 짙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진다. 한 숨에, 한 단어에, 한 방울의 눈물에, 한 문장에, 한 장의 사진에, 한 번의 손 짓에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까지도 모두 거짓임을 나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의 비통함이다.


그중에 세상을 사랑했던 이를 사랑하다 못해 그를 빼앗아간 세상조차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사람을 모으고 법을 공부하고 보도자료를 만들면서. 먼저 떠난 이의 의지를 이어 그의 파편을 세상에 뿌린다. 작게 틔운다. 애정으로 돌보고 키워낸다. 더 큰 세상을 사랑하기로, 더 많은 이들을 안아주기로, 같은 상처와 다른 상처마저 한데 품어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이로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투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그 깊이를 다 이해하기 어렵다.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 마음을.

그 비통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랑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대의 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