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어떻게 억압 구조를 전복시키는 가
1. K-pop의 흥미로운 지점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억압구조를 전복시키는가를 생생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 앞에서는 성별도 계층도 인종도 성적 지향도 중요하지 않다. 소비할 돈은 쥐고 있는 쪽이라면 자본은 그들의 이익에 복무한다.
2. 성적 대상화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여성층이 경제권을 틀어잡기 시작했다. 지난한 페미니즘의 역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경제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가도 사회도 경제권이 있는 시민을 우대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가장 큰 힘은 경제력이다.
3.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임금차는 어마 무시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코 묻은 돈도, 푼돈도 똑같이 중요하다. 더욱이 적은 돈들이 모여서 거대한 규모의 자본을 이룰 수 있는 시장이라면 그곳은 엄청나게 중요해진다.
4. 여성은 문화에 돈을 쓴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시청하고 음반을 구매하고 상영회에 참석한다. 개개로 보면 푼돈들이지만 한데 모이면 산업이 된다. K 콘텐츠의 상당 부분은 이들에 의존해 돌아가고 있다.
5. 그리하여 억압 구조는 역전된다. 적어도 이 영역에서만큼은. 여전히 여성 팬덤을 빠순이라고 하대하고 콘서트 현장이니 사인회니 하는 행사에서 무례한 대접을 받더라도 산업 자체에서는 이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여성 아이돌들이 대상화되듯이 남성 아이돌들도 대상화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Female gaze에 대한 낭만화된 해석이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남들이 비아냥거리는 지점도 이 부분일 테고.
6. 그 무엇보다 인간을 대상화하는 자본이 어느 억압은 완화시키거나 해소한다는 이 아이러니함. 소비자라는 정체성 외에 다른 모든 정체성 운동이 무력화되는 상황 속에서는 이건 어쩌면 불가하게 유일하고 확실한 정답지일지도 모른다.
7. 어느 시점부터 자본주의는 절대적 고정값이 되어서 더 이상 유의미한 비판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 담론에 대한 비판은 시스템은 건드리지 않고 내부의 징후만을 건드리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제시되고 있긴 한 ‘소비자주의’에 대한 우려만이 자본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사조의 마지막 남은 희미한 흔적인 듯하고.
8. 그럼에도 K-pop 내에는 대안적 시선이라는 게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허락하는 한.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5/20/UJ5DDSKH2RABNGFJQIWYFMFOCM/?fbclid=IwAR0cgs48uZi7ZsNe1yKgygOCxBaBuEOBtajx9N3bzkpbj6twpc8NwkMQC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