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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an 08. 2023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 중요한 것

지역 방송에도 좋은 콘텐츠가 존재한다. 여러 이유로 보이지 않거나 보지 않을 뿐. 심지어 드라마도 있다.


사실 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의외로 허술한 성격 탓에 지역사의 상황을 정확히 모른 채 일을 시작했고 지역에서는 거의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었다.


벌써 몇 년 전이었던가.

어느 지역사에서 어떤 PD가 드라마 비슷한 걸 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같은 지역사라도 서로의 콘텐츠를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라 자세히 그 프로그램을 볼 수는 없었다.


어영부영 잊고 지내다가 어떤 매체에 제작 후기 같은 게 실린 걸 찾았다. 으레 실리는 미디어 인터뷰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작 과정은 별로 담겨있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는데 쭉 읽어보다 마지막 대목에서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건 분명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는 말이었다.


너무 힘들었고 조직의 한계를 느꼈다.

이러한 경험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그 후로 머지않아 그가 회사를 관뒀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다. 어쩌면 더 잘할 수 있었을 사람이 그렇게 또 지쳐 나가떨어졌구나. 또 하나의 문이 닫혔구나. 같은 회사도 아닌데 뭔가 쓸쓸한 마음에 몇 번이나 그 페이지를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손 끝으로 그 지친 단어들을 쓸어내렸다.


지역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본이겠지만 조금 더 직접적인 요인은 사람을 극도로 빠르게 소모시킨다는 데 있다. 자본이 아닌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번 아웃을 특유의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조직운영으로 가속화시킨다.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안 그래도 인재난에 허덕이는 지역에 어떤 희망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교육 없이 그대로 지위만 올라가는 간부들은 조직원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현장에서 닥치는 대로 진행하던 일의 방식을 그대로 사람에게 사용한다. 한 발자국 더 멀리 바라보고 사람을 키우는 법을 모른 채로 막내일 때나 간부일 때나 비슷하게 일을 하다 보면 언제나 갈려나가는 건 사람이다. 본인도 후배들도. 남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방법을 모르긴 마찬가지니까.


아직도 일하는 틈틈 문득 그가 생각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소식이 잘못 전해져 여전히 그 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는 그 단호한 말이 정말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데

마음이 어떻게 꺾여가는 지를 들여다봐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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