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강하다는 것은
작년 한 장의 사진을 고르라면 이 사진을 고르겠다.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한 해였다. 수명을 깎아먹는 줄도 모르고 일하던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체불금을 받으러 왔다.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병가를 내줄 수 있네 없네 의사의 소견이 약하네 마네 아픈 건 얼굴이니 회사는 나올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전언들 따위에 질린 채 머리를 비우고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꽤 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고 으레 그렇듯이 남겨야 할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의식의 수면 위와 아래로 분류됐다. 가라앉은 것들을 주워 담고 둥둥 뜨는 것들을 걷어내는 시간들이었다.
치열하게 일해왔기에 회사에 미안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나 때문에 일정이 밀리는 스태프들과 우리를 믿고 출연을 결정해주신 출연자들이었다.
회복을 하는 과정 틈틈 수많은 셈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9월에 다시 촬영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계절은? 식자재 철은 어떻게 되지? 무엇보다 내 몸이 버텨줄까?
간간이 소식을 모른 채 일정을 확인하는 분들의 연락을 받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시간들. 병가가 끝나갈수록, 크게 차도가 없는 상황에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할 수 있을까? 만일 정말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더 당혹스럽고 앞 날을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회사에 복귀한 당일부터 어깨에 얹힌 일의 무게가 물에 빠진 짐처럼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무겁게 느껴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공교롭게 조연출로 합류했던 후배도, 그 위 후배도 모두 거의 일시에 회사를 관뒀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할 사람도 없다.
일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런데 현실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두세 개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낮에는 생방을 하고 밤에는 편집을 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아프기 전보다 더한 업무 강도였다.
밀린 본 촬영을 준비하면서 예민함이 하늘로 치솟았다. 일할 때 언제나 긴장하는 편이고 불안감도 높아서 텐션이 꽤 강하다. 불안해하는 모습을 스태프들이나 출연자가 보게 되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어울리지 않는 농담이나 삐그덕 거리는 여유를 장착한 척해보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가려지면 고민도 안 했을 거다.
병상에서 일어나서 오랜만에 서보는 현장에서 머리와 마음이 모두 복잡했다. 어쩌면 좋지. 이걸.
남아있는 일들과 불가능해 보이는 일정들. 모두를 무리하게 만든 당사자로서 느끼는 미안함.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칠 때 셰프님이 역에 도착했다. 그녀가 촬영장소에 들어서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강한 두 여성의 에너지가 현장을 뒤덮었다. 수십 년 동안 영양의 거대한 살림을 돌보며 다져진 종부님의 우아함과 사잇길 없이 직선으로 걸으며 자신의 주방을 책임져온 셰프님의 단단함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한데 어우러졌다.
근사한 춤을 보는 것 같았다. 정교하게 합이 맞춰지고 미끄러지듯이 상황이 흘러갔다. 두 분 다 서로를 만나 즐거워 보였고 진심으로 상대의 세계를 친애했다. 그런 광경은 정말이지 드물고 대책 없이 아름다워서 한번 보면 좀처럼 잊을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 올린 두 여성이 한 공간에서 마주해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또다시 각자의 세계를 확장한다는 것은.
연출을 해야 하는데 아이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편안한 바이브가, 그 물흐르듯한 자연스러움이, 어느 누구의 영역도 침범하지 않고 휘감고 어우러지는 그 온화함에 번잡스럽던 마음이 서서히 고요해졌다.
셰프님과 몇몇 남은 장면들을 더 촬영하면서 도토리나무가 서 있던 언덕을 걸었다. 생각보다 낯을 가리는 나는 사실 연출 외에는 별 다른 이야기를 잘 못한다. 더군다나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거의 cctv급으로 말수가 없어진다. 꾸역꾸역 무슨 말인가를 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조용히 함께 걸었다.
도토리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비 갠 뒤 젖은 풀을 밟는 소리. 매끈한 기념비를 등에 얹은 거북이가 든든하게 버티고 선 언덕.
왜 이렇게 편한 걸까.
그동안 그렇게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던 요란스러운 마음이 촬영하는 동안 잔잔하게 사그라지는 건.
기념비를 살펴보는 셰프님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셰프님의 단단함이, 그녀가 쌓아 올린 그 견고한 세계가 나에게도 영향을 주는 거였다. 바위처럼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바람에 팔랑거리는 종이 위에 문진을 올린 것처럼 미친 듯이 파닥거리던 박동이 점점 잔잔해졌다.
소음이 사라진 곳에서 생각이 명료해졌다.
할 수 있어. 천천히. 어떻게든.
지금도 이 날을 기억한다. 잘 정비된 존재가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의 크기를 실감했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등 떠미는 응원이 되어주는 멘토의 힘을. 언제나 바라왔지만 요원했던 선배의 존재를 처음으로 느꼈던 날로.
나도 저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존재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는. 일이든 사적인 영역에서든.
내일이면 준비했던 프로그램 1, 2부가 모두 마무리된다. 내가 발견했던 출연자의 이 모든 근사한 매력들이 영상에 제대로 담겼을지는 잘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지만 최고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고 아쉽다. 다만 누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