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다 못해 시린데 뜨겁다. 송태섭
슬램덩크에서 가장 용감한 캐릭터는 송태섭이다.
그는 단 한 번도 무리를 지어다닌 적이 없다.
송태섭과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이 (한나를 제외하고) 어린 시절에 마주친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다시 연결됐던 정대만이라면 송태섭과 가장 유사성이 많은 캐릭터는 강백호다.
강백호가 아버지를 잃었던 것처럼 송태섭 역시 아버지와 형을 연달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자리, 그 공허한 외로움을 핸들링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지만.
강백호가 외로움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연결되는 방식으로(쌈박질) 해소해 왔던 반면에 송태섭은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소속된 적이 없다. 몰려다니면서 사고를 치던 강백호와는 달리 그는 항상 혼자 다닌다. 농구부에 가입한 이후에도 필요한 연습은 충실히 임하지만 방과 후에 몰려다니거나 다른 시간을 같이 보내는 모습이 거의 나온 적이 없다. 사실 저 나이대의 남자아이가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는 송태섭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그는 상처를 타인을 통해 회복하는 타입이 아니다.
가장 감성적으로 유약할 나이. 연달은 비극으로 폐허가 된 집을 정리하며 송태섭의 어머니는 그들과 관련된 것들을 잠시 지우려 한다. 어떤 상실은 흔적만으로도 고통이 되기 마련이다. 함께했던 기억이 담긴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태섭.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엄마와는 달리 그의 빈자리는 고통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고 일부러 남겨두는 여백과도 같다.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느니 그대로 두겠다.
이 공간이야말로 태섭의 건방진 소위 '애티튜드'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전학 간 첫날 무리 짓는 아이들은 그 공간의 힘을 귀신같이 눈치챈다.
꽤 자주 궁금해진다. 정대만이 유독 송태섭에게 발작버튼이 눌리던 이유가 뭘까? 채치수의 어깨에 얹어진 채 서서히 몰락해 가던 농구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들이던 서태웅이나 강백호가 아니라. 왜 송태섭인가?
두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들어다 볼수록 절묘하다는 생각을 한다. 슬램덩크에서 뜨거움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정대만이라면 쿨함을 담당하는 캐릭터는 송태섭이다. 줄곧 재능을 인정받아온 중학교 리그 MVP 정대만. 반면 줄곧 정대만처럼 유망주였던 형의 뒤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고 농구를 계속해온 송태섭. 어린 시절 연습코트에서 마주한 이후로 전혀 다른 성향에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겪은 두 사람은 다시 최악의 인연으로 재회한다.
사실 정대만은 싸움으로는 북산의 최약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싸움을 건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예전 기량이 나오지 않자 농구를 포기한 정대만은 예전의 강백호처럼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며 낭비한다. 그런 그의 눈에 채치수가 간신히 유지하던 북산 농구부에 가입한 송태섭은 그야말로 거슬리는 존재다. 그리고 송태섭에게는 유난히 정대만을 자극하는, 강백호나 서태웅에게는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가벼워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송태섭에게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중심이 있다. 그것은 내면의 외로움을 사람이나 농구로 대체하려 했던 강백호나 농구 자체가 좋아서 미쳐있는 서태웅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해석처럼 송태섭에게 농구가 고통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형이 좋아했던 농구를 자신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 그때 죽은 게 형이 아니었다면 더 나았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의로 농구를 그만둬 본 적이 없다. 형의 죽음 이후로 잠시, 정대만 패거리와의 난투 이후 부상으로 잠시. 그 이외에 시간들을 그는 어디에 썼을까?
바다가 보이는 코트가 근사한 오키나와와는 달리 인심도 야박한 도시에서도 그는 공을 들고 연습코트를 찾아 나선다. 예전처럼 100% 즐길 순 없어도 그는 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얻어터지고 가정에서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는 드리블을 하고 상대의 수비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지막 형과의 1on1에서 겨우 찾아낸 단서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의 연습은 매번 형과의 마지막 연습으로 돌아가 정확히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매 위기의 순간마다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해 내면서. 어머니가 농구를 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형을 기억해 내고 또다시 상처받는다 해도 그는 농구를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단지 형 때문일까? 형과의 기억 때문에?
오히려 나는 송태섭이 농구가 괴롭지 않아서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형의 그림자를 발견해 내며 또다시 고통받더라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농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형 대신 농구를 해서 그의 소원을 풀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순수하게 농구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혼란스럽다. 정대만 패거리의 괴롭힘이나 형의 죽음이 아니라 형이 아닌 자신의 농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를 속박하는 족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형을 통해 배웠던 것이 거대하고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도 물러서지 않고, 두려울수록 오히려 더 가까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돌파해야한다는 감각, 용기이기때문이다.
와스레 나이.
형이 잊지말라던 그 감각은 이후 송태섭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됐다.
수많은 노이즈를 뚫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정 자체는 특별히 겁이 없는 편은 아닌데 (정대만 패거리 앞에서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서 그는 자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편이다.) 그의 용기는 언제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쪽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극복해 내는 쪽으로 기능한다. 그리하여 그는 결과적으로 한 번도 무엇인가를 피하거나 외면한 적이 없다. 아마도 그는 두 번의 큰 상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수용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방식으로.
산왕전을 앞두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는 아들을 두고 송태섭의 어머니는 예전 비디오들을 꺼내 본다. 그 비디오에는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큰 아들 뒤로 끊임없이 자신만의 농구를 해왔던 작은 아들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그제야 그녀는 송태섭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에게는 고통이었을 농구가 아들에게는 충만함이었음을 어렴풋이 그녀는 깨닫기 시작한다. 한 때 자기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이 사랑했던 것. 그리하여 그가 떠난 빈자리에 남겨져 있는 것. 그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고 소중히 끌어안는다. 송태섭에게 농구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사실상 그의 상실을 충만하게 메우고 있는 코어 그 자체인 셈이다. 그게 송태섭의 농구다.
단단한 내면을 지녀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아이는 그 시기 불안정한 다른 자아를 자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쉽게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기도 하는 법이다. 송태섭의 흔들림 없는 농구에 대한 열정이 바로 가장 불안정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던 정대만이 유독 송태섭에게 예민했던 이유다.
인물의 외면과 내면의 반전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지점에서 송태섭에게 미치게 된다. 경박하고 한 길을 가기보다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 같은 모습과는 반대로 송태섭은 항상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간다. 좀처럼 이탈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답을 스스로 찾아낸다. 좋은 어른과 동료들을 통해 성장하는 강백호나 서태웅, 채치수와는 다르게 송태섭은 언제나 위기 앞에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이를 돌파해 낼 원동력을 찾아낸다.
단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 도내 최강의 포인트 가드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는 정신적으로 코너로 밀려본 적 이 없다. 정대만 패거리와 열세의 싸움을 하면서도 세계관 최강자들과 맞붙으면서도 그는 떨리는 손을 숨기며 여유를 부린다. 그것은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전술을 만들어내는 명민한 두뇌와 (어차피 질 싸움 정대만만 팬다.)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수많은 훈련으로 다져놓은 스피드라는 두둑한 실력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잘 구축해 놓은 탄탄한 내면의 안정감으로부터 비롯되는 일종의 자신감덕분이다. 그는 스스로 허세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실체가 존재하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명장면을 고르라면 역시 2인의 압박수비를 뚫어내는 송태섭의 드리블을 꼽을 수밖에 없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고 가드 벽을 부수며 골을 쫓아 달려 나가는 그 모습에서 나는 다시 한번 속수무책으로 반하고 만다. 산왕전이 모두 끝난 이후 송태섭은 형의 아대를 넘겨준다. 살아있다면 그의 나이에 형이 꿈꿨던 산왕 타도를 이루고 난 후,비로소 온전히 송태섭의 농구가 시작될 순간일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단 한번도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을 오키나와의 바다처럼 품에 안고 앞으로 나갈 뿐. 나는 이렇게 강하고 용감한 사람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