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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an 25. 2023

슬램덩크에서 가장 비운의 남자

전국제패보다 더 큰 목표를 얻다. 채치수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꼭 같지만은 않다. 모든 비극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감독 조재중 트라우마의 가장 큰 피해자가 채치수라고 생각한다. 채치수는 안감독의 부재로 인해 나이에 비해 과중한 짐을 짊어져야 했다. 휴직으로 감독이 자리를 비워 감독이자 선수를 겸해 이름조차 김수겸이 된 상양의 주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북산의 감독 부재는 슬램덩크를 통틀어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 격투 농구의 명가 풍전조차도 노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김영중 감독이 그 뒤를 이어 공백이 크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노감독의 영향을 받은 풍전 선수들이 김감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심지어 재단에서도 이리저리 농구부를 흔드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김감독은 풍전 선수들의 곁을 지켰다. 반면 북산은 농구부가 유명하지도 않은 데다 선수층도 두텁지 않은데 감독마저 수시로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인다. 채치수의 발목을 잡던 선배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실질적으로 북산의 농구부를 이끌어왔던 것은 채치수와 권준호 그리고 한나 이 세 사람이었다.


농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좋아하는 것을 제일 잘하고 싶다.

이 단순한 바람이 채치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렵다.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타이밍이 엉망진창이다. 강백호나 송태섭이 각자의 사정으로 농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의 충족이 지연된다면 채치수의 문제는 자신이 아닌 온전히 팀과 타이밍에 있었다.


북산 입학 초반 이미 완성형 천재였던 정대만에 비해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뒤지지 않지만 실력은 다소 어설픈 상태로 등장한 채치수. 스크린이 뭔지도 몰라 정대만에게 농구 초짜라는 평을 듣던 채치수가 불과 1년도 안 돼서 중학 MVP 정대만을 거의 봉쇄하고 투닥거릴 정도로 성장했던 걸 보면 이는 그동안 그가 적절한 코치나 감독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북산 입학 이후 안 감독의 (방임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과거 맹장답게 기초 훈련이나 연습은 체계적으로 진행시켰을 거라는 정도는 믿어보겠다 이 영감탱..) 관리와 시합 출전 경험의 축적이 그를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일찍 채치수의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고교 리그 데뷔가 얼마나 화려해질 수 있었을지를 아쉽게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됐든 채치수는 체계적인 농구 교육 없이 북산에 입학했고 안 감독이 강백호와 서태웅을 만나기 전에는 거의 의욕상실 상태였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그를 2년 동안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역시 다름 아닌 수많은 실전 경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산의 경기력을 감안해 봤을 때 어떤 팀을 매치업하더라도 하나같이 상대적으로 강자였을 확률이 높다. 아마도 채치수는 자팀 내의 연습과 경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열망을 타교와의 실전 경기를 통해 쏟아냈을 것이고 자체의 기본 멘탈과 자기 확신이 꽤 강고한 편이라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경기력도 함께 비약적으로 향상됐을 확률이 높다. 경기를 치를 수록 그는 성장한다. 그것도 쾌속으로. 바로 그 정대만이 초조함을 느낄 만큼.  


월등한 피지컬과 자신의 장점을 빠르게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두뇌 그리고 성실함. 채치수를 볼 때면 스스로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인재가 단지 함께 뛰어 줄 동료가 없어 성장이 지체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재능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북산이 약체로 빌빌거릴 때조차 다른 학교 감독들에게 북산은 채치수가 멱살 잡고 끌어가는 원맨팀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뛰어난 재능. 그러나 정작 그가 속한 팀 사정은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은 상황 앞에서는 채치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패스조차 어려운 팀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리가 좋은 채치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북산의 문제점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나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


미숙한 리더

북산 하면 많은 사람들이 채치수를 리더로 떠올리겠지만 사실 채치수는 그의 훌륭한 농구 재능과는 별개로 좋은 리더의 재목은 아니었다. 모든 리더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진 않겠지만 좋은 리더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몇 가지 공통의 덕목들은 있기 마련이다. 채치수는 주장보다는 개인의 선수로 뛸 때 더 좋은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선수다. 그가 주장이 된 것은 그가 주장감이기때문이 아니라 대안이 없었기때문이다. 북산에 김수겸이나 이정환같은 리더가 있었다면 채치수는 코트 위에서 더 마음껏 날뛸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북산은 선수풀이 얕았고 그 안에서 리더감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일부 농구를 포기한 그의 선배들이나 동기, 후배들이 근성이 많이 모자라기는 했지만 농구부에 입부한 모든 학생들이 자신과 같은 목표를 향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북산에 자신만큼이나 농구에 미친놈들이 들어와서 다행이었지만 애초에 모두가 채치수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꿀 리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훈련량을 따라오지 못하는 부원들은 그에게 존중을 받을 수 없었다. 목표를 위해서는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고 심지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채치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거다. 언제나 진심인 사람은 적당히 거짓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언제나 잘 지켜왔지만 채치수에게 존중은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예의는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지만 존중은 다르다. 채치수에게 존중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획득해내야 하는 자격에 가까운 개념이다.


꿈이 있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그는 능력이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강백호가 결정적인 순간에 패스를 잘못했을 때도 자책골을 넣었을 때도 그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말만 많은 사람들의 못남은 그를 화나게 한다. 타인이 소중히 여기는 꿈을 가볍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이를 바보 취급할 때, 그는 결국 폭발한다.


돌이켜보면 그는 언제나 우월한 쪽에만 서있던 사람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약자의 위치에 서본 적이 없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환경,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월등한 두뇌와 체력, 심지어 농구에서조차 그는 자신보다 더 큰 변덕규가 가지지 못한 단단한 코어와 밀리지 않는 힘을 보유한 재목이었다.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은, 심지어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성실한 우직함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성정을 지닌 사람은 종종 약한 사람이 받는 고통과 못남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농구 명가였던 해남이나 능남, 산왕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훈련량,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공립고등학교였던 북산 농구부에 들어온 사람들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확률이 높다. 키가 크고 싶어서랄지 즐겁게 농구를 하기 위해서랄지 평범한 이유로 모인 농구부를 채치수는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전혀 몰랐다. 자신의 꿈과는 너무 다른 타인들의 꿈.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의 치명적인 틈. 채치수는 그 차이를 어떻게 줄여야 했을까?


많은 사람이 결국 농구부를 떠난다. 즐겁기 위해서 시작한 농구가 괴로움이 되는 순간, 이를 감내할 정도로 농구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채치수를 견딜 수가 없다. 존중받을 자격을 따내지 못한 사람들은 위축된다. 어딘지 나를 깔보고 있는 거 같아. 내가 뭘 하든 성에 차겠어? 채치수의 재능이 빛날수록 부원들의 자괴감은 더 커져간다. 엘리트 중 엘리트. 그런 그가 실은 다정한 성격의 따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어떤 사람의 빛나는 꿈에 자신이 방해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도 사람은 죄책감이나 압박을 느끼기도 하는 법이다. 그것도 그 대상이 순수하고 깨끗할수록 더더욱. 아마 채치수의 평범한 팀원들도 단순히 채치수가 폭압적이고 독불장군이어서 농구부를 관둔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재능 있는 사람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원 없이 달리지 못하고 사슬에 묶인 짐승처럼 제자리를 빙빙 도는 모습을 보는 게 유쾌했을 리가 없다. 다른 고교가 살인적인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비율이 북산에 비해 높아 보였던 것도 어쩌면 북산 내에서 채치수와 일반 학생들 사이에 재능의 간극이 너무도 엄청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채치수의 리더십에는 융통성이 없다. 그가 조금 더 유능한 리더였다면 애초에 부원들이 이런 극심한 자괴감을 느끼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손을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능남의 윤대협처럼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타인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김수겸처럼 모든 팀원의 상태를 세밀히 살피며 적재적소에 활용해 전반적인 팀 능력치를 상향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치수는 채치수고 그는 그런 일에 서툰 편이다. 그는 농구를 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농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감수성이 둔하다.


그러나 사실 채치수가 바랐던 것은 능남의 윤대협도 산왕의 정우성도 아니었다. 자신을 실력적으로 뒷받침해줄 동료가 아니라 함께 같은 꿈에 공명하며 코트 위를 후회 없이 뛰어줄 동료가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단 한 번도 선배든 후배든 부원들이 자신을 백업해주지 못했다고 불만을 내뱉은 적이 없다. 단지 그가 아쉬웠던 것은 더 잘할 수 있는데 적당함에서 만족하는 안이한 정신이었고 그것은 꼭 자신의 꿈인 전국제패에 걸림돌이 되어서라기보다는 그런 안이함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죽이고 있던 타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화도 내지 않는다.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채치수는 매번 기대하고 화를 낸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실망을 한다. 그는 단지 함께 더 나아지고 싶었던 거다. 역설적으로 채치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타인들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거다. 실은 자신의 가능성만큼이나 타인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북산의 전국제패도 허언이 아닌 진심이었다.  


'농구가 좋아졌어. 치수야'

사실상 권준호가 없었다면 채치수는 아주 오래전에 망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열악한 환경,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전국제패를 외치는 채치수를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허황되거나 미쳤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무엇하나 증명해내지 못해 물려받은 것 없는 북산의 빈털터리 레거시, 우연히 얼빠진 이유로 (감독님이 너무 멋있어요) 입부한 천재 정대만의 비극적인 부상과 대형 사고를 몰고 다니는 문제아 송태섭의 입원. 아끼던 제자를 황망하게 잃은 트라우마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과거의 명감독.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모두 일어난 북산의 농구부. 이런 상황에서 전국제패를 하겠다고? 한 사람의 광적인 열정은 그 사람을 광인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더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까스로 꿈의 자격을 얻는다. 다행히도 채치수에게는 권준호가 남아있었다.


수많은 팀원이 결국 농구를 포기하고 나가떨어질 때 채치수는 모두가 떠난 농구부에 여전히 남아 책상을 (오열) 세워두고 연습 하던 권준호를 발견한다. 별다른 특기도 없고 심지어 체력도 모자라서 언제나 헉헉거리면서 기초 연습도 버겁게 따라오던 안경. 단지 조금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 농구부에 들어온 권준호가 여전히 남아있다. 채치수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이유였지만 (그래도 채소연 때문에 농구부에 들어온 강백호보다는 낫다) 권준호도 농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사랑을 시작한다. 첫 시작이 전국제패가 아니라 할지라도 농구를 사랑할 수 있다. 첫 시작의 방향성은 달랐지만 함께하면서 점차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그 사실은 채치수는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농구를 사랑하는 타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권준호는 권준호의 농구가 있다는 사실을. 농구가 좋아졌다는 권준호의 말은 채치수에게 그 어떤 것보다 큰 위로가 됐음이 분명하다. 이 단순한 문장이야말로 어쩌면 채치수가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전국제패가 아니라 그저 그는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고 좋아해서 즐거웠던 경험을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그의 오랜 친구인 유창수가 채치수에게 끊임없이 유도를 권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가장 급진적인 꿈을 꾸는 몽상가와 이에 공감하는 동조자, 그리고 그들의 꿈이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고 증명해 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단지 이 세 사람을 모으지 못해서 많은 변혁이 실패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나 역시 세상의 모든 혁명은 세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꿈을 꾸고 동조하고 함께한다. 세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된다고 실현불가능하다고 지금껏 해보지 않았다고, 수많은 변명과 비난 속에서 동력을 잃고 길을 잃은 꿈들이 얼마나 될까. 단지 세 사람이 모이지 못해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진 꿈들이. 다행히도 채치수에게는 권준호가 있었다. 달재가 있었다. 남은 북산의 동료들이 있었다.


채치수의 둔함이 그의 약점이라면 그의 가장 강력한 강점은 우직함이다. 외모와 다른 명민함과 농구 센스를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재능이. 안감독이 리쿠르팅조차 게을리했던 (이것은 공립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을 떠올려보면 사실상 이후에 송태섭과 서태웅 그리고 강백호가 북산에 들어온 것은 거의 천운에 가깝다. 채치수가 권준호와 달재 등과 함께 했다 하더라도 당시 북산의 상태는 전국제패는 커녕 예선 통과도 불확실할 만큼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치수는 버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채치수는 정말로 전국제패를 믿었던 걸까? 초반에는 진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 나라면 할 수 있다. 북산에 입학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저 마인드로 시작한다. 정대만도 서태웅도 채치수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채치수의 전국제패는 확신에서 자기 암시로 넘어간다. 전국제패를 믿는 채치수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겠지만 나는 그도 어느 순간에는 일정정도 다음 북산 세대에 그 과업을 넘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정대만은 언제 복귀할지도 모르겠고 실질적으로 그가 가진 카드는 송태섭이 전부였다. 슈팅이 아쉬운 포인트 가드와 센터 플레이. 공격방법은 단조로운데 파기법은 다양한 단순한 조합. 슈팅력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북산은 여전히 예선 통과도 어려울 상황.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채치수는 변함이 없다. 사고나 치고 다니는 동기인 정대만도, 재능은 있지만 사건을 몰고 다니는 송태섭도, 이 모든 이들이 농구부를 들고 날 때 채치수는 매일 매일 묵묵히 체육관 문을 연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 영광의 순간이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렵다면 우리 이후의 북산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믿음 아래 전력을 다 한다. 그리고 천만 다행히도 이들이 미련하게 버티며 쌓아 올린 북산에 기적 같은 신입들이 들어온다. 강백호와 서태웅이.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이 약체 북산에. 그리고 정대만과 송태섭이 복귀한다. 그렇게 채치수는 스스로가 이들의 돌아올 장소, 북산이 되어 있었다.



전국제패의 진짜 의미

꿈에 그리던 산왕 전을 치르며 채치수는 이제 전국제패를 할 수 있는 거냐고 묻는 강백호의 질문에 멍해진다. 수백 번 스스로 외쳐왔던 전국제패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확신보다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주술처럼 되뇌었던 말이 어느새 자신으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가있음을 처음으로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악마의 장난 같은 미스 타이밍, 들쭉날쭉한 기량의 선수들로 인한 불안정함, 중요한 순간마다 공백이었던 지도자의 자리, 수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후려쳐짐 당하던 자신의 꿈. 너무도 소중했던.

강백호의 질문은 실로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도 잠시 잊고 있던 채치수의 오랜 꿈을 다시 현실로 소환하는 신호였다.


사슬에 묶인 짐승은 어느덧 그 사실에 익숙해진다. 아무리 맹렬한 기세의 맹수라 할지라도 그렇게 갇혀 지낸 짐승은 사슬을 풀어도 익숙해진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건 아주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채치수가 강백호의 질문에 어리둥절해있던 그 찰나의 순간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소중하게 품어왔던 꿈을 정작 자신이 망각하고 있는 그 모습이 마치  작은 공간에 익숙해져서 누구도 구속하지 않는데 스스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 자리를 빙빙 도는 새를(이라고 쓰고 고릴라라고..) 보는 것 같아서. 채치수 역시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공간 안에 갇혀있었던 거다. 작은 곳에서 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그의 꿈은 습관 같은 구호만 남고 스스로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전국제패. 산왕을 상대로 선전을 하면서 북산 모든 멤버들이 서서히 채치수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잔뜩 상기돼서(그들은 채치수가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저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보다 채치수를 위해 신나고 흥분했던 것 같다. 본인들 자체가 미친 승부욕의 화신들이이긴 하지만 전국제패는 이들의 꿈이라기보다는 채치수 고유의 꿈이었다. 정대만이나 송태섭은 매우 현실적인 편이고 강백호는 이제 막 농구가 좋아진 풋내기, 거기에 서태웅의 꿈은 전국제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일본 최강의 농구선수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써놓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각자도생 오합지졸이다) 믿기 시작했을 때, 정작 채치수는 이 상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바람이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팀원 중 가장 늦게 깨닫는다.


만일 그에게 북산의 제약이 없었더라면, 그는 어떤 선수가 됐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몸에 잘 안맞는 주장자리도 던져버리고 발목을 잡는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버려버리고 오로지 농구 하나만을 위해 원없이 코트 위를 달리고 날뛰었을 엄청난 기량의 선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묶여있던 짐승이 풀려나는 걸 목격하는 것처럼 지켜보는 사람에게조차 해방감을 주는 근사한 광경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아는 채치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현철이나 이정환이었지 분명 채치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채치수와 권준호가 만들어낸 레거시, 북산

산왕전에서 안감독은 평소보다 위축된 북산 팀을 벤치로 불러 각 선수들의 강점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강백호는 리바운드와 끈기를, 서태웅은 폭발력과 승리를 향한 의지를, 송태섭은 스피드와 감성을, 정대만은 지성과 3점 슛을 북산에 더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재능들은 채치수와 권준호가 쌓아 올린 토대 위에서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언급한다. 도내 모든 감독들이 눈여겨보던 채치수의 수많은 재능을 뒤로하고 안감독은 토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실상 권준호와 채치수가 만들어낸 것이 어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북산 그 자체라는 말과 다름없다.


토대가 된다는 것은 지루하고 지겨운 일이다. 빛나는 역할도 아니고 자칫 잘못하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마는, 언제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이 노력이 언젠가는 보답을 받을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우직함과 성실함이 없다면 해낼 수 없는 인내의 작업이다. 스스로가 빛나는 재능이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사람인 이상 자신이 빛나고 싶다는 욕망이 없을 리 없다. 승률이 높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어쩌면 보답받지 못할 노력과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치수는 한다. 바보 같을 정도의 우직함으로. 여전히 나는 그게 어떤 마음이었을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그 마음은 체념이었을까 아니면 정녕 지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었을까?  


나의 의구심과는 별개로 분명한 것은 조직의 성장이 소속원들이 자신의 몫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의 몫을 위해서 노력할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면 운이 좋으면 자신의 성공은 지켜볼 수 있다. 그 역시 값지고 귀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를 준비할 때, 비록 그 자신은 처참히 실패하더라도 후대에 물려줄 레거시가 만들어진다.


레거시는 성공보다 더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승패와 성공을 넘어서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자신의 대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그 중요성을 망각하기 쉽지만 승패나 성공이 개개인의 성장을 촉발시킨다면 레거시는 개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성장을 촉발시킨다. 그리고 레거시는 궁극적으로 토대를 바꾼다. 아무리 황폐하고 초라한 곳에서 시작한 씨앗이었다 할지라도 레거시는 그것을 크고 단단한 뿌리를 지닌 거대한 나무로 성장시킨다. 그것은 개인만의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쉬어갈 수 있는 비옥한 옥토가 된다. 개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모든 제약들 속에서 자신이 아닌 후대를 위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내놓은 등을 밟으며 누군가는 비약한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선배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는 실로 오랫동안 염원해 온 꿈이 현실로 다가오자 겁을 먹는다. 꿈이 가까워지자 조급해진다. 어떻게든 신현철을 꺾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일본 최강의 센터다. 압도적인 실력차에 채치수는 당황한다. 위축된 그에게 변덕규가 무를 썰며 가자미가 되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그제야 비로소 채치수는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많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면목은 바로 우직하게 버티고 서서 모두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내는 헌신에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채치수를 이기기 위해 노력해 왔던 라이벌을 통해 비로소 자각한다. 그가 가장 강렬히 바라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작 자기 자신의 지엽적인 승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어떤 의미에서 채치수는 그토록 고집스럽게 손아귀에 쥐고 있던 자신의 전국제패라는 구호를 버리고 나서야 팀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하여 자신의 전국제패를 팀의 전국제패로 더 나아가 미래 북산의 전국제패라는 더 큰 꿈으로 확장시킨다. 이 순간에 이미 산왕전의 기세는 판가름 났다고 생각한다. 채치수의 헌신이야말로 신현철이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신현철도 이정환도 변덕규도 김수겸도 아닌, 오로지 채치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그만의 재능이었으므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독불장군 같던 채치수 역시 성장한다. 방황하는 동기가 돌아올 곳을 부지런히 정비하면서, 리더로서 미흡한 자신의 자질을 채워 넣을 수 있는 후배에게 기꺼이 주장 역할을 넘겨주면서, 천둥벌거숭이 같은 신입의 가능성을 믿고 그리고 무엇보다 뒤늦게라도 자신을 찾아와 준 마지막 타이밍에 감사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농구를 사랑하면서도 같은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렇게 그의 꿈은 전국제패보다 더 큰 것을 획득한다. 그 어떤 도내 넘버 원 선수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헌신하는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값진 레거시를. 가장 미흡한 리더였으나 가장 훌륭한 선배로 채치수는 그렇게 농구를 졸업한다.


더 좋은 팀에서 뛰었다면 더 일찍, 더 멀리 빛이 났을 그의 재능은 가장 험난하고 외로운 곳에서 다른 선수들의 기반이 되는데 아낌없이 사용됐다. 한 사람의 선수로서는 무척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타이밍과 기회가 그에게 더 적절히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굉장했을까. 그러나 때로는 미숙하고 투박했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쌓아올린 그 단단한 바닥에서 그는 그 어느 곳보다 멋진 팀을 만들어냈다. 감독이 아닌 선수가. 그리하여 나는 언제나 기억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북산은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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