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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Jan 30. 2023

슬램덩크에서 가장 농구를 즐기는 남자

6번째 주전, 북산의 중심 권준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과 스스로 거기까지밖에 못한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온다.



기 세기로 유명한 슬램덩크 세계관에서도 가장 기가 센 캐릭터를 뽑으라면 그건 권준호다.

그는 한 번도 정신적으로 패배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정대만이 다 부숴버리겠다며 미쳐 날뛰며 전 농구부원들을 쥐어패고 공포로 몰아갈 때조차 그는 기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물론 싸움모드로 돌입하기 전인 극초반에는 안절부절못하며 채치수를 찾긴 했다). 멘탈 강하기로만 따지면 그는 송태섭보다 한수 위다. 기복도 없고 주로 본인이 불안정할 때 저 나이대 남자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불필요한 공격성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천재가 우글거리는 북산에서, 특히 사건 사고가 유달리 많은 북산에서 3년을 버틴 남자다. 그것도 채치수와 함께.


열등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는지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뛰어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은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자존감은 생존과 직결돼 있다. 그것이 기량의 우월함을 겨루는 스포츠계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슬램덩크가 프로 농구가 아니라 고교 농구라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프로의 무대였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근사한 순간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인의 월등함을 목격한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의욕이 꺾여 승부를 포기하거나 역으로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위치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게 되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비참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선택지라는 함정 속에 갇혀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열등감.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강렬한 상념을 열정과 혼동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열등감은 열정이 아니고 단 두 가지 선택지만이 이 강렬한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정답도 아니다.


적절한 자극은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채치수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변덕규나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미친놈처럼 자극을 받고 성장하는 서태웅, 정우성, 윤대협 같은 존재들은 이런 강렬한 감정을 능숙하게 핸들링할 줄 안다. 의욕이 꺾여 승부를 포기하기에는 승부욕이 너무 강하고 상대를 낮은 위치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기에는 자존감과 프라이드가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대상을 극복한다. 그것도 같은 재능으로. 단적으로 서태웅은 정우성과 정확히 같은 플레이를 해내 보임으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변덕규 역시 계속해서 채치수의 영역인 골 밑에서 피지컬로 승부를 건다. 물러남이 없고 상대의 강점을 흡수하고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상대가 강한 만큼 나도 강해진다. 그래서 이들은 뛰어난 상대를 만나길 오히려 강렬히 열망한다.


권준호는 조금 다른 유형이다. 권준호에게는 이들과 같은 강렬한 승부욕이나 강고한 프라이드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못남도 존재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중학시절부터 함께 해온 채치수의 엄청난 성장과 도내 모든 농구부의 주목을 받던 정대만의 재능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하면서도 그는 이들에게 눌리지 않고 자신의 농구를 찾아간다.


단지 체력을 더 키우고 싶어서 입부한 농구부에서.  

기초체력도 턱없이 모자라서 따라가기도 버거웠던 중학 농구부의 연습량. 이렇게 농구가 힘든 건 줄 몰랐다며 채치수에서 물으면서도 권준호는 농구를 관두지 않는다. 그에게는 천재적인 슈팅 감각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강력한 피지컬도,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스피드도 없었지만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권준호식 투지라고 생각한다. 강백호처럼 순식간에 뜨겁게 발화하거나 서태웅처럼 차갑게 급속 예열되어 불을 뿜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것은 은은하게 가장 오랫동안 타오르는, 쉽게 꺼지지 않는 종류의 불꽃이다.


그는 가장 오래 농구를 멈춘 적 없이 계속해 온 사람 중 하나다. 수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들어온 농구부의 예상외의 훈련량에 질리고 채치수의 엄청난 야욕과 폭압적인 부운영 스타일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 어째서인지 권준호만은 끝까지 농구부에 남는다. 이는 채치수와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우정의 결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권준호 본인의 끈질긴 성정이 집요하게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권준호는 정말이지 좀처럼 포기를 모른다.


모두가 떠난 농구부에 남은 권준호는 심지어 채치수마저 낙담하는 순간에도 연습을 계속한다. 채치수의 재능을 알아보면서도, 그래서 그를 받쳐줄 수 없는 자신의 기량에 미안해하면서도 그는 정작 자신을 동정하거나 채치수를 연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에너지를 사용한다.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는 것과 스스로 거기까지밖에 못한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권준호는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이를 자신이 더 나아갈 수 있는 범위를 정하기 위한 기준점으로 사용한다. 현재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정확히 인지한 후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채치수에게는 좋은 동료가 부족하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옵션은 자신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더 좋은 동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기초 체력도 없었던 그는 결국 격렬한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한다. 그것도 북산이 취약한 외곽을 담당하는. 그리고 그의 투지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상대들을 만날 때에도 좀처럼 꺾이질 않는다. 피지컬로는 밀리지만 정신만으로는 절대로.


기억해 보자. 권준호에게 괴롭고 힘들었던 농구가 좋아진 순간은 언제일까?

놀랍게도 권준호에게는 개별 승리의 경험의 거의 없다. 채치수 원맨팀으로 불리던 북산 초기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도 채치수, 권준호 이 두 사람은 전국제패는 커녕 매번 시합에서 패배하고 분한 얼굴로 돌아오길 반복해 왔다. 심지어 이들의 팀이 선전하는 경우조차 대개 권준호는 벤치에 있고 채치수가 홀로 독주할 때 정도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전국제패를 꿈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 채치수도 신기하지만 적어도 채치수에게는 남들보다 월등한 피지컬이라도 있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해 아직 채 꽃 피우지 못한 잠재력을 아마 채치수 본인도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라면 이해가 간다. 좋은 사람과 좋은 타이밍만 만나면 해볼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이 채치수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준호의 상황은 다르다.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는 평균적인 체격(특히나 중학교 시절에는 더 작았었다), 선수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운동신경, 플레이 감각. 능남 감독은 심지어 권준호를 노마크 해도 좋다고 지시한다. 서태웅이나 정대만에 비해서 오프 가드로 둬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위협적이지 않은, 평범한 선수.


그러나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권준호야말로 바로 이 패배의 경험으로부터 농구의 재미를 찾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가 농구가 계속하고 싶어진 순간은 바로 채치수와 함께 중학 농구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지는 경험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다. 그것은 대개 굴욕과 모욕의 순간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넘을 수 없는 벽에 맞닥뜨리는 기분. 때로는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그 불공평함을 처절하게 느끼게 되는 순간, 오히려 권준호는 농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정대만이나 윤대협이 이기기 때문에 즐겁다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권준호는 패배하지만 더 해보고 싶다고 느낀다.  이 엄청난 강함을 나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패배로부터 성장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결국은 자신을 포기하거나 타인을 괴롭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권준호는 산뜻하게 이 모든 것들로부터 비껴 나있다. 그에게는 못남이 없다.


그는 북산의 식스맨이다. 다섯 명의 주전 중 문제가 생기면 교체로 들어가는 예비 선수. 강백호가 파울로 아웃될 때나 정대만이 체력고갈로 벤치로 돌아올 때 아무런 자격지심 없이 훌렁훌렁 트레이닝 복을 벗으며 코트 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놀랍도록 농구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농구는 팀 스포츠다. 그것도 5명의 스타팅 멤버로만 운용되는 게 아니라 벤치 위의 선수들까지도 함께 전술에 고려되는. 그런 맥락에서 그는 팀을 통해 자신의 꿈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그의 농구에는 소외되는 사람이 없다. 주전도 예비선수들도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경기의 플레이어다. 팀의 의미와 중요성을 그는 잘 알고 있기에 권준호는 스스로 채치수와 함께 바람 잘날 없이 농구부를 들락날락 거리는 망나니들이 돌아올 장소가 된다. 기꺼이.

 

채치수의 진심을 지켜보며 또 자신이 발견한 농구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로 권준호의 꿈도 전국제패가 된다. 당시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인 정대만이 가세하면서 그의 꿈은 한층 더 현실과 가까워진다. 기대가 컸던 한 해였다. 그러나 그 꿈은 정대만의 부상으로 무참히 사라진다. 정대만은 사라지고 부원들은 연달아 농구를 관둔다. 그럼에도 농구부를 포기하진 않았던 권준호에게 두 번째 위기가 닥친다. 바로 그 정대만이, 한때 그의 꿈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이었던 정대만이 이번에는 농구부를 박살 내겠다며 돌아왔다. 폭력사건에 휘말려 정말로 모든 게 끝이날지도 모르는 순간, 송태섭마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언제나 은은하게 (돌아있던) 불이 붙어있던 권준호의 투기가 폭발한다.


'철 좀 들어라 정대만'

개인적으로는 정대만이 농구부를 떠났을 때, 이미 난 권준호가 마음의 정리를 끝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권준호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특출 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타인에게 기대 꿈을 쫓는 사람은 아니다. 채치수의 꿈을 함께 꾼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의존한다는 말은 아닌 것처럼. 권준호는 자신이 가능한 모든 범위 내에서 전력을 다한다. 비록 정대만에게 큰 기대를 했었지만 그가 없다고 해서 멈출 꿈은 아니었다. 정대만이 농구부를 떠났을 때 타격은 컸지만 그는 정대만이 없는 팀을 재구성한다. 꿈을 향한 연습은 멈춘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정대만에게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없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도 농구를 관둔 그에게. 북산 1학년 시절 정대만이 곧잘 이야기하던 전국제패의 무게는 권준호의 그것과 같을 리가 없다. 평범한 선수였던 권준호에게 전국제패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과 같은 사건이다. 정대만에게는 부상이라는 특수한 사건이 꿈을 향해 가는 길을 막는 방해물이었다면 권준호에게는 자신의 실력 자체가 가장 크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갭을 채우기 위해 권준호가 인내해야 했을 연습량과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을 정신력을 당시 정대만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테고.


더욱이 권준호는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과 동시에 팀을 돌봐야 했다. 훌륭한 매니저인 한나가 함께했지만 다혈질인 데다 의외로 타인을 이해하는 데 서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는 더 서툰 주장 채치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도 부주장인 권준호의 몫이었다. 자신만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그는 사실상 주장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낸다. 더 나아가 심지어 안감독의 빈자리조차 어느 정도 커버한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로 가득한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러나 권준호는 상대적으로 재능이 모자라다고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는 열등감에 먹히지 않고 자신을 바로 세우고 더 나아가 팀원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슬퍼하거나 낙담하는 대신 다음을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타인도 섣불리 동정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한다. 비운의 천재가 될 뻔한 정대만이 무릎 부상으로 흑역사를 생성할 때조차, 권준호는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철 좀 들라고.


그리고 권준호의 냉철한 현실 파악은 매번 북산이 핀치에 몰리는 최악의 순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기능한다. 이는 수많은 패배를 하고도 다시 일어서길 반복해 온 강인한 멘탈의 훈련결과다. 자신의 능력을 분명히 인지하고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끈기다.


'저 녀석도 3년 동안 열심히 해온 녀석이다.'

그리고 어쩌면 고교 생활 마지막 은퇴 경기가 될 수도 있는 능남전에서 마침내 그의 영광의 순간이 온다. 6년 동안 성실하게 쌓아온 시간들에 대한 응답이 드디어 그를 찾아온다. 수비하지 않아도 좋을 평범한 선수의 골이 경기의 기류를 바꾸어 버린다. 권준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슛이었다.


능남의 감독은 경기의 패배 요인으로 자신의 오판을 꼽는다. 그러나 그 오판은 단지 한 선수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뿐만이 아니라 정작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팀이 실은 권준호가 만들어온 북산이었다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데 있다. 북산은 실로 채치수와 권준호의 레거시다. 그들의 집념과 끈기야말로 북산의 색이기도 하다. 권준호는 단지 3년간 열심히 해온 선수만이 아니라 북산 정신의 중심이다. 능남의 감독에게 권준호는 체크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선수였으니 그가 이러한 사정을 알리가 없다. 능남은 경기 내내 직접적으로는 강백호의 미친 집념과 서태웅의 승부욕, 정대만의 기술과 송태섭의 스피드, 그리고 채치수의 피지컬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권준호가 쌓아 올린 북산의 끈기를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권준호는 김수겸처럼 선수 그 이상의 선수다.


즐거움, 권준호의 농구

팀원들의 재능과 무엇보다 강백호의 투혼에 힘입었지만 권준호는 능남전에서 직접 득점에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은퇴 시점을 스스로의 손으로 늦춘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누구보다 관중 속 채소연이 강하게 반응한다. 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극명히 인지하고 농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채소연은 권준호를 이해한다. 괴물 같은 재능의 오빠와 천재인 친구들을 지켜보며 느꼈던 자괴감과 열등감을, 권준호도 알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그녀는 안다. 그의 평범한 슛이, 게다가 노마크 상태에서 쏜 그 한 번의 슛이 의미하는 바를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온다.


수많은 패배 속에서 권준호가 찾은 농구의 즐거움이 단순히 승리의 기쁨일리가 없다.

어쩌면 권준호야말로 농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산왕전에서 맑은 눈으로 지친 북산을 응원하던 그의 모습을 보며 웃은 적이 있다. 채소연 역시 농구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이제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농구를 사랑하고 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껴 선수로 뛰는 것을 포기한 그녀와는 다르게 권준호는 스스로 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농구를 사랑한다는 것이 직접 경기를 뛰는 순간을 사랑하는 선수들과 또 그들이 보여주는 플레이에 열광하는 관객들 모두의 경험을 아우른다고 했을 때, 권준호만큼 농구의 모든 측면을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권준호에게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자신이 참여하는 것, 그 경험 자체에 있다. 이기고 지는 것도, 주전으로 코트 위를 함께 뛰는 것도, 심지어 벤치에서 선발 멤버들을 응원하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농구의 즐거움이다. 경기를 뛰는 순간만이 아니라 그날을 위해 팀원을 모으고 훈련하고 팀을 유지하는 것까지도. 다시 말해 농구의 모든 과정이 그는 즐겁다. 그 즐거움을 위해서 그는 채치수와 같은 시간을 버텨낸다. 평범한 선수가 도내 가장 놀라운 선수들과 매 순간을 함께한다. 가장 뛰어난 천재들이 좌절하고 낙심하며 농구부를 떠날 때에도 변함없이. 가장 기쁜 순간도, 가장 어려웠던 순간도 북산의 농구에는 권준호가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그렇게 슬램덩크는 재능의 크기와 상관없이 개인은 각자의 방식대로 빛난 다는 것을 팀을 통해 이야기한다. 어떤 레거시를 남긴다는 것은 결코 눈부신 재능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것은 프로 농구가 아니라서 가능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역시 슬램덩크를 통해 농구를 보는 것이 무척 즐겁다. 권준호의 즐거움을 이해할 것만 같아서. 몇 가지 형태로 정형화되지 않는, 각자의 모양대로 다채롭게 의미 있는 진짜 생의 즐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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