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품은 윤대협
우리는 때로는 가장 강렬히 원하는 것에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 심연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역시 오직 자신뿐이다.
슬램덩크 세계관에서 좋은 선수가 있는 팀은 마지막 휘슬이 부는 순간까지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강백호가 있는 북산이 그랬고 이명헌이 있는 산왕이, 또 윤대협이 있는 능남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남을, 북산 투혼의 역전 이후 완벽한 무음으로 전개된 산왕의 공격 시퀀스에서 이명헌은 시시각각 패배로 향해가는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쪼개며 마지막 골을 성공시킨다. 미동도 없이 이명헌의 마지막 수신호만을 기다리던 산왕의 네 선수들의 눈에는 패색의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땀방울이 슬로우로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산왕의 선수들은 다시 역전슛을 성공시킨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 산왕 선수들의 감각은 살인적인 연습량과 수많은 승전의 경험을 통해 다져진 것이겠지만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산왕의 정신, 선수 이명헌에 대한 팀의 강력한 신뢰 덕분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지주가 있는 팀의 모습은 그래서 비교적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강백호가 합류한 후 첫 시합이었던 능남과의 연습 전에서 풋내기의 예상외 활약에 힘입어 실질전력인 정대만과 송태섭이 아직 투입되기 전 조합인 이달재, 권준호, 채치수, 강백호, 서태웅 이 다섯 명만으로도 능남과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칠 때 가까스로 북산 마지막 슛을 성공시킨 강백호가 승리를 확신하고 돌아선 순간, 백정태가 바로 윤대협에게 골을 돌리며 치고 나간다. 산왕전에서 강백호가 산왕 측 마지막 골 성공 이후 바로 치고 나가는 것과 대구 되는 장면이다.
능남전에서 유명호 감독은 선수들에게 '골을 마지막까지 쫓으라'는 주문을 한다. 골에 대한 집념은 곧 승리에 대한 집념이기도 하다. 이는 안한수 감독이 수없이 많은 인재를 낚아댔던 픽업라인인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종료예요.'란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슬램덩크에서는 공을 마지막까지 쫓는 선수, 그리하여 시합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선수의 유무야말로 경기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더욱이 이러한 선수는 같은 팀원들을 정신적으로 자극하고 경기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어서 팀의 가장 강력한 정신이 된다.
마지막 산왕전에서 풋내기 강백호는 북산에서 다양한 동료들의 장점들을 흡수하면서, 또 타 팀의 좋은 선수들과의 대결을 통해 스스로가 바로 그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기능하는 선수로 성장한다. 등 부상을 입고도 몇 번이고 골을 살려내는 강백호를 통해 서태웅은 팀 플레이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포기한 순간, 반대쪽 골대를 향해 달려 나가는 강백호의 뒤를 따르며 꺼졌던 북산의 투지에 다시 불이 붙는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강백호는 팀의 승패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성장했다. 풋내기인 만큼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가장 먼저 팀원들의 상태를 알아채고 경기의 흐름을 바꾸며 결정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팀 전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훌륭한 리더의 재목이다.
북산에 강백호가 그러하듯이 능남에는 윤대협이 있다. 다소 평균적인 기량을 보여주는 백정태가 상대팀의 결정골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다음 골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윤대협이라고 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지노선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유명호 감독 체제 아래 윤대협이라는 에이스와 함께 한 수많은 연습경기를 통해서 안한수 감독이 그렇게 강조하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체화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윤대협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강백호와 다르게 이 믿음은 이미 확실한 검증을 통해 쌓여온 단단한 철근과도 같다. 능남의 모든 움직임은 바로 이 윤대협에 대한 신뢰로부터 시작된다.
변덕규를 중심으로 한 재능 있는 선수들의 조합이라는 스카우팅 전략을 철저히 실패한 유명호 감독에게 남은 유일한 역전패가 바로 이 윤대협이다. 평균치 기량을 보여주는 백정태, 스파이시한 전투력이 있지만 수많은 천재들 사이에서는 다소 밀리는 안영수, 채치수의 그늘에 가려진 변덕규와 같은 핸디캡이 존재하는 조합 속에서 능남이 타 팀에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윤대협 때문이다.
중학시절 정우성에게 패한 적이 있지만 아직 서태웅은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 서있는 가늠할 수 없는 기량의 선수. 작가인 이노우에조차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미지의, 언제나 웃는 낯에 이글거리는 열혈 선수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 윤대협에게 보내는 능남의 절대적인 신뢰는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열세인 경기마다 아직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팀원 전체가 믿게 만드는 저력은 단순히 빛나는 한순간의 재능이 아니라 두터운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쌓인다. 발군의 실력이 있는 선수들은 차고 넘친다. 놀라운 점프력의 전호장, 완벽한 3점 슈터 신준섭, 공격력 만렙 황태산, 블로킹의 제왕 채치수, 심지어 이노우에의 총애를 받는 노력형 천재 에이스 서태웅까지도. 그러나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팀의 정신으로 기능할 수 없다. 함께 플레이하는 팀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뛰어난 플레이만이 아니라 경기의 흐름 자체를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시야와 실력, 그리고 팀원들의 멘탈을 장악하는 지배력이 더해져야 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이를 성과로 연결해 내는 승리의 경험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뛰어난 리더의 자질을 지녔지만 상대적으로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는 시야가 부족하고 아직 승리의 경험으로 팀원들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기회가 적었던 강백호도,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팀원들의 멘탈을 장악하지는 못한 서태웅도 미처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다. 북산에서는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리더로서는 다소 미숙한 자신의 한계를 성장시켜 나갔던 채치수나 서서히 팀원들의 정신을 장악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리더로 부상한 송태섭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다.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일 때마다 모든 팀원이, 더 나아가 감독마저도 '윤대협이 한다!'라고 외치는 이 절대적인 신뢰는 아마도 수없이 팀을 위기로부터 구해내고 그리하여 결국은 승리를 안겨다 주던 수많은 경험들의 총합이 윤대협의 가치를 증명해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반복되는 결과는 일종의 좋은 징크스가 된다. 루틴화된 신뢰. 바꿔 말하자면 믿음이라고 하는 거고.
중학시절 이미 정우성에게 패배한 경험이 있고 인재 영입에 진심인 유명호 감독이 눈독 들인 선수였다면 윤대협의 농구 역사 역시 꽤 오래전에 시작됐을 것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윤대협에게는 그게 패배든 승리든 경험의 폭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재능 있는 선수가 가장 크게 성장하는 타이밍은 승리의 경험보다는 역시 패배의 경험으로부터다. 발군의 실력을 보였을 것이 틀림없는 윤대협에게 정우성과 같은 선수와의 매치업은 상당히 큰 자극제였을 수밖에 없다.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성격 덕분에 외면적으로는 강렬한 감정의 형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압도적으로 뛰어난 선수 앞에 섰을 때의 중압감은 윤대협 역시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송태섭이 송준섭으로부터 그 벽을 뛰어넘는 법을 배웠듯이 윤대협 역시 언젠가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거대한 벽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극복해 내야 하는 시간들을 통과했어야만 했다. 그게 어떤 방식이었을지는 이노우에 옹이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점은 윤대협에게는 (아마도 정우성과 마주친 적이 없었던) 무패 행진의 정대만은 경험해보지 못했을 실패들을 핸들링해 본 경험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윤대협은 비록 패배했던 상대이긴 하지만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또 다른 애송이 정우성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밖에 없다.
능남은 강팀을 만났을 때 수월하게 압승을 거둔 적이 많지 않은 팀이다. 윤대협, 변덕규, 강력한 수비수라고 보정된 허태환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선수라인 덕분에 윤대협은 항상 핀치에 몰린다. 더욱이 열세 속에 감독마저 부탁한다!!! 를 외치는 압박스러운 상황 속에서 윤대협은 흔들린 적이 없다. 오히려 예열이 늦지만 한번 달궈지면 오래 뜨거운 바위처럼 투기를 낭비 없이 서서히 불태워 올린다. 급가속을 밟는 강백호나 (강백호는 나루토처럼 자체 보유한 차크라 발전기가..아니 체력이 워낙 월등한 덕분에 급발진을 해도 그 상태 그대로 경기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괴물이라는 점을 유념하자) 지 승질 못 이겨서 초반에 다 발산해 버리던 서태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경기 초반부터 자신의 한계를 체크하고 스스로 사용할 에너지 양을 계산해서 움직이는 데다 시야도 넓어서 팀원들의 체력도 안배한다. 서두르거나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리는 팀원들의 상태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미리 관리함으로써 팀의 전체 리스크를 줄이는 리더로 기능하는 거다. 이는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나 성정만으로 체득한 노하우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겉으로 티는 잘 안 났을 것 같다. 강백호처럼 모든 게 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스타일은 아니라) 겪으면서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플레이다. 윤대협은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호흡을 잊지 않는다. 마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적절한 호흡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물고기처럼.
물의 흐름은 예측 불허다. 작고 부드러운 빗방울도, 대지를 뒤흔드는 태풍도 모두 물이다. 잔잔하다가도 해일이 일고 폭풍이 지나가다가도 고요해진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유영을 한다. 한시도 멈추면 안 되는 것처럼, 물결이 거세든 고요하든 자신의 리듬을 지켜나가는 것이 곧 생존을 좌우한다. 그래서 윤대협이 낚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고요하고 정적인 활동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본질은 겉보기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윤대협이야말로 슬램덩크 속 인물들 중에 가장 강렬한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기대 속에 자신의 농구 의미를 찾아가는 강백호나 팀원들과 함께 전국제패를 하고 싶어 하는,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전국제패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과 코트 위를 뛰는 것이 진짜 소망이었던 채치수(실제로 채치수는 전국제패에는 실패하지만 이미 자신의 꿈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정대만, 형을 기억해 내는 애정의 토대 위에 쌓아 올려진 송태섭의 농구와는 다르게, 또 더 나아가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철부지 정우성과, 완벽한 팀원들과 함께하며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는 이명헌과는 달리 윤대협은 열세인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상승하려고 하는 투기가 꺾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해사하게 웃는 얼굴에 속기 쉽지만 윤대협의 고요함은 오히려 들끓는 태풍을 감추기 좋은 위장에 가깝다.
욕망이 강하지 않는 다면 상처도 적다. 그것을 얻지 못했을 때도 역시 쿨하게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전부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본 작에서의 정보가 적어 단언하기 어렵지만 윤대협의 승부욕은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렬한 어떤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작중 분명히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47점 차로 채치수의 북산을 압살 해버린 플레이는 이후 묘사된 대로 적당히 상대 기량에 맞춰 플레이하는 방식으로는 나오기 어려운 결과다. 사냥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헌터의 본능이지. 능남이 윤대협을 보며 '지지 않는다.'라고 되뇌는 이유도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뢰받는 사람이 단순히 좋은 플레이, 멋진 경기가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에 목숨을 걸 때 저런 믿음이 나온다. 뭐 어떻게든 해주겠지가 아니라 능남의 지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그렇게 말랑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수많은 승리와 패배의 경험들 속에 윤대협은 스스로의 강렬한 욕망을 다루는 방식을 어떻게든 찾아낸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순식간에 발화하는 강백호와 초반에 체력을 전소해 버리는 서태웅의 미숙함을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을 것이다. 무패 기록의 정대만이나 정우성의 한계였던 오만함마저도. 풍부한 경험과 타고난 성정이 더해져 그는 자신만의 농구를 쌓아 올려갔다.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차분히 보완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윤대협의 분석력은 안한수 감독 수준에 다다를 정돈데 누구보다 먼저 강백호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서태웅의 한계를 지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 분석력이 가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
승리에 대한 열망과 들끓는 승부욕에 잡아먹히게 되면 농구라는 본질이 사라진다. 풍전이 그 예다. 개인적으로는 풍전이야말로 아마추어 농구의 풋풋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랑스러운 팀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됐든 흑화 된 풍전은 승리를 너무도 강렬히 원한 나머지 결국 그 열망에 잡아먹힌다. 좋은 선수는 승부욕을 화력으로 삼지만 결코 그 불길에 사로잡히진 않는다. 중요한 것을 그 불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지 불꽃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훌륭한 선수들은 자기 안의 불길을 다스릴 줄 안다. 그리고 윤대협은 해남의 이정환이 인정했듯이 투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경기를 운영하는 시각의 명료함을 잃지 않는 발라스 좋은 선수로 성장한다.
과한 추측이지만 나는 언젠가 윤대협은 내면의 불길에 크게 데인 적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고는 한다. 10대에 바다를 보며 내면의 폭풍을 잠재우는 취미라니. 그러나 결국은 고요한 사냥의 한 형태인. 낚시는 끈기의 사냥이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다의 결을 파악하고 어종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대상에 맞는 낚싯대를 선택하고 물 안에 드리우면 그야말로 기다림의 시간이 사냥꾼을 엄습한다. 때로는 몇 분, 때로는 몇 시간, 노련한 낚시꾼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 며칠을, 몇 달을, 심지어 인생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냥꾼의 내면이다. 바다나 사냥감이 아니라 낚싯대를 드리우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기다리는 자의 심리가 낚시의 성패를 가린다. 물고기를 낚지 않더라도 낚시의 모든 조건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자아를 집중하게 만들고 또 더 나아가 낚는 대상조차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윤대협은 낚시를 통해 자신의 가장 거친 면인, 승부욕을 잠재우는 방식을 배워나가는 건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잡아먹히기 쉬운 열망을.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움직일 확률이 아주 높다. 어느 팀에나(산왕제외) 실력이 모자란 선수들은 존재한다. 거추장스럽고 승리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 버리고 갈 수 있다면 오히려 홀가분하게 날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농구는 팀 플레이다. 인생처럼 혼자서는 해나갈 수 없다. 농구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 많은 못 미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생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많이 모자란 것들을 함께 안아내야 한다는 역설. 그것까지도 농구니까.
유리멘탈 주장 변덕규와 쉽게 흥분하는 안영수, 공격력을 제외하고는 장점을 내세우기 어려운 황태산과 함께 뛰면서 윤대협은 자신의 강렬한 욕망이 팀을 해치지 않도록 절제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강점을 팀을 위해 사용한다. 풍전의 강동준처럼 팀원들을 다그치지도 않고 해남의 이정환처럼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지도 않으면서 팀원들을 섬세히 조율하고 투지를 북돋으며 스스로의 승부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윤대협의 의미를 이해한 안한수 감독이 서태웅과 강백호를 더블팁으로 그에게 붙일 때다. 그제야 비로소 윤대협의 승부욕은 해방된다. 자신에게 북산의 에이스(실제 에이스 하나와 잠재에이스 하나) 둘이 붙으면 상대적으로 능남 다른 선수들의 부담은 가벼워진다. 팀의 운용이 자유로워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열망을 마음껏 풀어내도 되는 유일한 순간, 윤대협은 거침없이 두 사람을 도발한다. "자아 덤벼라. 일 학년 샌님들." 나는 이 순간을 아주 좋아한다.
"처음 봤다. 저렇게 신나게 플레이하는 대협이를."
유명호 감독의 발언은 그동안 윤대협이 얼마나 스스로의 충동을 억제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산왕의 정우성은 상대팀들의 실력이 너무 떨어진 나머지 시합 중에서도 무료함을 느낀다. 전국 최강이라는 같은 팀 내 선배들과 붙을 때야 겨우 승부욕이 튀어나올 만큼. 재능이 있는데도 팀을 이끌며 이를 억눌러야 하는 선수만큼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있을까? 능남에서의 윤대협만큼이나? 그럼에도 윤대협은 농구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낸다. 정우성과 서태웅은 알지 못하는 팀의 리더로서의 매력을.
비슷한 상황의 채치수는 리더로서의 자질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팀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지도 못하고 무뚝뚝한 탓에 표현도 서투르다. 스스로가 전국제패를 외치면서도 팀원들을 함께 끌고 가는데 실패한(북산은 본인들 말대로 스스로를 위해서 뛰는 팀이다. 팀원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있지만서도) 채치수와는 달리 윤대협은 팀을 이끄는데 뛰어난 자질을 보인다. 이 뛰어남이야말로 윤대협을 절제시키는 구속구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정환의 해남을 상대로 능남은 팀의 사령탑인 포인트 가드에 윤대협을 위치시킨다. 마음껏 날뛰는 대신 전체를 조율해야 하는. 그리고 비록 분패했지만 윤대협은 다시 한번 증명한다. 도내 최강인 이정환을 넘어선 실력을 개인 플레이어로서나 리더로서나.
대부분의 인물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는 슬램덩크의 세계관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캐릭터가 바로 조재중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농구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결국 농구에 먹혀버렸다. 그의 미성숙함을 인지하고 있던 안감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력과 열정을 과신한 나머지 조재중은 미국행을 감행하고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채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농구가 결국은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경험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코트 안에서만이 아니라 코트 밖의 시간들도 매 순간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농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빠른 드리블, 뛰어난 슛감각, 엄청난 점프력과 골에 대한 집중도만이 아니라 함께 뛰는 사람을 이해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홀로 고립된 그의 생은 결국 그 자체로 농구의 제물이 된다.
통제되지 않는 열망을 다스리고 자신을 절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노련함이 있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초반의 서태웅처럼 강렬하게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전력질주하느라 오히려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조재중처럼 강렬한 애정의 불꽃이 삽시간에 주인을 불태우는 재앙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 삶 자체를 희생하지 않는 지혜를 알고 있다.
그의 호흡은 물고기처럼 아주 길다. 하나의 경기에 일희 일비하는 풋내기 강백호와는 달리 풍부한 패배의 경험을 보유한 윤대협은 이것은 단지 한 번의 게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경기가 즐거운 것은 결국 자신이 승리하기 때문이라고 되새길 만큼 강렬한 승부욕을 지니고 있지만 윤대협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은 자신의 삶이 균형 있게 유지되는 것 그리하여 즐거운 농구를 더 오래, 더 근사하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그는 라이벌들의 등장을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이 아니라 오히려 가늠하기 어려운 심연을 지닌 스스로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경기에 모든 것을 불태워 올리는 순수한 강백호와는 또 다른 불꽃이 윤대협에게는 있다. 잘못하면 조재중처럼 생을 삼켜버릴 수 있는 크기의. 그래서 가장 기쁜 일이든 가장 나쁜 일이든 윤대협은 그 모든 감정들을 힘껏 끌어안고 내면으로 밀어 넣는다. 비록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뒤로 감정의 동요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 강렬하고 뜨거운 태풍을 고요한 찻잔 안에 담아내는 것처럼 거대하기에 자칫하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신과 타인들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현명함을 끊임없이 단련한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생이 농구를 위한 제물이 되지 않도록 예비한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심연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역시 오직 자신뿐이기에.
ps. 그래서 나는 변덕규의 은퇴식에 윤대협이 낚시나 하러 간 희대의 사건을 그만의 슬픔과 복잡한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이었을 거라고 해석한다. 뇌내망상이므로 그냥 이렇게 생각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