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사이의 그늘, 양호열
우리는 생의 주요한 사건들 이면에 어떤 큰 의도나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야말로 통제불가한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질서가 있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겪는 모든 불행과 행운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생을 통해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우연적이고 혼란스럽다. 고난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말들을 자주 하지만 누군가는 고통 없이 성장하기도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성공하기도 하고 어떠한 계기 없이 추락하기도 한다. 많은 것들이 무작위이다. 마치 주사위 놀이처럼. 이 허무를 우리는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신이라 불리는 절대적 존재의 의지든, 아니면 특정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생 자체의 불가항력이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외부의 힘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특정한 형태로 빚어내게 하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로부터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모든 불행과 행운들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생의 방향은 생각보다 더 자주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장소에서 태어나는 가, 어떤 시간들을 보내는 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사람과 마주치는 가와 같은 정해지지 않는 요소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나 청소년기의 성장이란 챕터는 이 광포한 우연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내달린다.
어떤 아이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태어난다. 따뜻한 애정도 기대도, 좋은 어른도 없는 세상이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주어지기도 한다. 인과가 없다는 것은 결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실은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 거대한 농담과도 같은 생의 허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빛을 향해 달려 나가기도 하고 결국은 어둠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소년은 빛도 어둠도 아닌 그늘에 서서 양쪽을 응시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그 경계에 서있는 양호열의 이야기다.
자주 말하지만 이노우에가 만들어낸 슬램덩크의 세계관은 아주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든 소년들은 농구를 사랑하는 한 누구든 코트 위에 오를 수 있다. 더군다나 이노우에의 세계에서는 부족하게나마 다정한 어른들이 존재한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각자의 단점과 한계가 분명하지만 적어도 근본적으로는 선량한 어른들이 각 학교 학생들 곁에 있다. 북산에는 안선생이, 능남에는 유명호가 다소 어두운 에피소드였던 풍전 편에서조차 아이들에게 즐거운 농구를 알려주고 싶었던 어른 노선생이 있다. 이 어른들은 지속적으로 소년들이 부딪히는 문제의 원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이를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서태웅의 유학에 대해 애정을 담아 조언하고 강백호의 빠른 성장을 위해 특훈을 준비하는 안선생은 비록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미처 다 극복해내지는 못했을지언정 적어도 학생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곁을 지킨다. 정대만이 농구부로 돌아왔을 때도, 산왕전을 앞에 두고 모두가 긴장하며 위축될 때도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조용히 건넬 줄 아는 어른이라는 것은, 아무리 정대만과 채치수, 권준호를 방치한 전력이 있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좋은 스승의 전형이다.
제자들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고 그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유명호는 변덕규가 가장 나약해졌을 때 적절한 멘토링으로 그의 자존감을 재건하고 스코어러로 써먹어도 좋았을 윤대협의 다양한 다른 강점을 개발하기 위해 포지션을 스위칭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더군다나 그는 황태산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미스를 인정하고 섬세한 제자가 위축되지 않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태도를 빠르게 수정한다.
시스템이라는 괴물에 아이들의 즐거움이 희생되지 않길 원했던 노선생이 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예전 제자들의 경기를 보러 온 이유는, 그것도 풍전이 (명성이 아니라) 에이스 킬러로 악명이 드높을 때에, 자신이 구축한 런앤 건에 대한 애착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역시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슬램덩크의 세계에서 코트 위의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어른들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는다. 문제아든 모범생이든 경기에 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학교는 아이들의 성적을 관리하고 이들을 팀으로 묶어 농구라는 하나의 질서 아래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서로에 기대어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보조한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독불장군 같더라도, 방황을 하고 미숙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서로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어른들이 있다. 적어도 농구를 하고 있는 한 아이들은 안전하다.
슬램덩크 세계관 속에서 소년들은 농구를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이분화된다. 전술한 것처럼 농구를 하는 아이들의 세계에는 질서가 존재한다. 노력하면 보상받는다. 더 많은 경기를 치를수록 더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는다. 동네 농구화 가게 오너도 상점 주인도, 팬클럽도 경기를 보러 온 같은 학교 학생들도 아이들의 경기를 응원하며 자연스럽게 소년들의 성장을 지원한다. 언제나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이러한 기대들이다.
하지만 코트 밖의 세상은 다르다.
물론 이노우에가 그려내는 학교 밖 세상은 당대 유행하던 학원 폭력물들에 비하면 무척 말랑한 편이다. 툭하면 체인이나 잭나이프가 등장하던 학폭물에 비해 슬램덩크 속 스트릿에는 나이브한 낭만이 있다. 가장 질이 나쁜 것으로 묘사되는 철이마저 담배를 피우거나 바이크를 모는 정도에 그친다. 심지어 그가 가장 큰 악역으로 등장하는 농구부 최후의 날 에피소드에서조차 그가 사용한 무기는 대걸레 수준에 불과하다(물론 파괴력은 엄청났다. 더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노우에의 코트 밖 세상은 어딘지 서늘하다. 거대한 폭력이나 광폭한 악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은 학교 안과는 달리 완벽한 무관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기대도 존재하지 않는.
선수들과는 달리 농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홀로 자라난다. 특유의 유쾌함때문에 종종 잊기 쉽지만 백호 군단은 실은 방치된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코호트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이들의 주변에는 좋은 어른이 없다. 애정과 기대로 아이들을 성장시켜 줄 그런 어른이.
별다른 재능도 학업 성취도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교사들은 냉담하다. 수업 중 졸거나 싸움을 하느라 학교에 나오질 않아도 백호의 집을 찾아가는 선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맨발로 다니는 이유를, 머리가 빨간 이유를, 왜 자꾸 싸움에 휩쓸리는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묻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 농구를 시작하기 전 백호는 필요한 관심과 관리를 제공받지 못한 채 쉽게 싸움을 벌이고 자신의 시간을 거리에서 의미 없이 소모한다. 아마도 싸움을 통해 만났음이 분명한 백호 군단 아이들은 서로의 마음에 비어있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이 받지 못한 것들을 자력으로 만들어내고 서로를 향해 발산한다. 미숙하고 투박하지만 그것은 분명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애정의 형태와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는 언제나 양호열이 있다.
양호열은 백호 군단 중 가장 성숙한 아이다. 어쩌면 슬램덩크 세계관 속에서 가장 성숙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아들내미로 추정되는 정대만과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것 같은 채치수와 권준호가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 나이브한 면이 양호열에게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안선생의 잦은 공백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자신의 감독을 의심하지 않는다. 상대의 의도를 선해하는 것은 이전 관계들을 통해 신뢰의 토대를 단단히 쌓아 올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깊고 어두운 슬럼프를 극복해 낸 정대만의 강력한 자존감이나 불가능한 꿈에 지치지도 않고 도전하던 채치수의 집념, 그리고 실패로부터 즐거움을 찾아내는 권준호의 낙천성은 이를 받쳐줄 애정의 토대가 풍요로울 때 비로소 꽃피는 재능에 가깝다. 이들은 타인을 신뢰해 본 경험이 있으며 자신이 보낸 애정을 비슷한 크기로, 혹은 더 큰 크기로 되돌려 받아본 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일들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통해 획득한 정보로 다시 자신의 세상을 재구성한다. 다소 유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가업을 잇길 원하는 아버지와 자신에게 올인한 감독 유명호로부터 충분한 신뢰와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음이 느껴지는 변덕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받으며 열렬한 지원을 받아온 정우성도 타인을 신뢰하며 성장한다. 라이벌인 채치수를 미워하기보다 그의 성장을 응원하고, 산왕전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변덕규의 마음 씀씀이도,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며 (기본적으로 울보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를 마주하면서도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정우성의 여유도 근본을 살펴보면 단단히 쌓여 올려진 애정으로부터 기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건 없이 주고받는 사랑과 지속적인 관심, 적절한 멘토링. 이들의 세상은 애정은 보답받고 기대는 충족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뢰할만하고 다정하다.
그러나 백호군단의 세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학생들이 빠칭코에 들락거려도, 골목 뒤에서 싸움을 해대도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기만하거나 착취하려 드는 나쁜 어른도 보이질 않지만 아이들의 상황에 철저히 무관심한 어른들은 어떤 면에서 더 차갑고 비정하다.
양호열은 이 무관심한 세계의 작동원리를 너무도 잘 이해한다. 세상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아이들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굳이 세상에 관심을 구걸하지 않는다.
양호열은 무리를 짓지 않은 채 이지메와 가족의 상실이라는 내면의 상처를 홀로 감당해내는 송태섭과는 다르게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한다. 늑대가 무리를 짓는 방식으로. 그러나 백호군단에 시비를 걸어대는 대부분의 양아치들과는 다르게 양호열의 무리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가 만들어낸 코호트는 누군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속한 구성원들을 돌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백호군단은 자신들에게 완벽히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서로에 기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들에게 의미있는 일상을 만들어간다.
그는 외부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에 동시에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스스로 구축한 세계에 균열을 내고 들어오려는 어른들을 서늘하게 밀어낼 뿐이다. 서글서글한 외모 덕분에 자주 잊게 되지만 양호열이 자신의 코호트 밖 사람들, 특히 어른들을 상대하는 태도는 무척 반항적이다. 기본적으로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선생에게도 고압적인 말투를 사용하기도 한다. 소연이나 다른 여학생들처럼 같은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편이지만 상대가 자신의 세계를 위협할만한 물리력을 지닌 존재일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양호열은 온화한 색채로 칠해진 슬램덩크의 세계관 속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쉽게 찾아낸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송태섭과 처음 조우했을 때나 외부인이었던 철이가 교내로 진입하는 순간, 아직 어떠한 행위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는 폭력의 전조를 기민하게 읽어낸다. 폭력에 익숙한 사람만이 발달한 감각이다.
애초에 슬램덩크가 학원 폭력물로 전개될 예정이었을 때 양호열과 강백호는 아마도 상남 2인조 같은 당대 히트 조짐이 있던 콤비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던 듯하다. 대부분의 일본 학원 폭력물이 브레인과 피지컬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두 명의 주인공에게 배분했던 방식을 유념해 본다면 피지컬은 강백호가 브레인은 양호열로 나뉘었을 확률이 높다. 대체로 브레인은 근본적으로 폭력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비교적 단순한 피지컬 캐릭터에게는 없는 어두운 과거사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극적인 과거는 캐릭터를 뒤흔들게 되는데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는 빌런이, 초월하는 경우는 주인공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상처가 많은 주인공은 주변인들을 과잉보호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 그 고통을 알기 때문에 타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거다. 따라서 양호열이 상대의 폭력성을 예민하게 읽어내고 종종 방어적으로 구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는 폭력의 고통을 알고 그렇기에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려 든다. 스스로도 아직 보호받아야 할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노우에는 농구부 최후의 날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학원 폭력물로부터 완벽한 결별을 결심한다. 순수한 농구 만화를 그리겠다는 작가의 의지와 예상외로 깊은 서사가 가능한 정대만 캐릭터의 등장으로 학원 폭력물의 두 주인공으로 중 하나로 태어났던 양호열은 농구 밖의 세계로 밀려나게 된다. 작 중 구체적인 서사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메타적으로는 양호열이란 캐릭터에는 여전히 학폭물로 예정됐던 초기 슬램덩크의 폭력성이 어느정도 내재되어 있는 상태로.
학원폭력물과 스포츠물.
그는 강백호가 두 세계 사이를 고민하며 오가는 동안 그 경계에 서서 그를 지켜본다. 강백호가 현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사려 깊게 상황을 통제하면서. 그는 농구가 강백호의 구원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무식하고 크기만 한 덩치. 툭하면 시비가 붙는 특이한 머리. 백호가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뒷골목의 1인자? 그리고 그다음에는?
공부는 잘하고 다니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고 있는 건지, 밥은 제때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를 확인해 줄 어른 하나 없는 세상에서 그 어떤 기대도 받지 못한 채 자신들과 함께 방치된 강백호가 처음으로 타인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기 시작하자 양호열을 누구보다 먼저 그 상황을 이해한다. 아마도 이건 백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덩치 큰 다혈질의 붉은 머리. 그는 채소연이 농구선수로 강백호를 찾아내기 한참 이전부터, 그 어떤 사람도 알아채지 못한 원석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도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꽃피게 해 줄 수 있을지를 알지 못했을 뿐.
많은 학폭물에서는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수많은 상대를 이기고 나서는, 이들은 무엇이 되는가? 이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대답은 상남 2인조의 후속 편이었던 GTO정도다. 지치지도 않고 싸움질을 하던 두 아이 중 하나는 결국 선생이 되어 자신처럼 방황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학폭물들의 후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길 위의 1인자. 싸우고 다치고 뒹굴며 얻은 명성은 대체로 더 큰 싸움판으로 번져간다. 학생들의 다툼은 양아치들과의 싸움으로, 양아치들과의 싸움은 조폭과의 싸움으로. 양호열도 강백호와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학폭물이었다면 끊어내지 못할 폭력의 연쇄고리를.
그래서 양호열은 강백호를 전력을 다해 다른 세상 쪽으로 밀어낸다. 이곳으로 넘어오지 마. 코트 위에 있어. 그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는 스스로가 자신과 강백호가 아마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다정한 어른이 된다.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고 훈련을 돕고 매 경기를 참관한다. 정우성이 가진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미숙하게나마 강백호와 같은 나이의 양호열이 수행한다. 그는 농구 코트가 있는 집을 마련할 수도, 함께 연습상대가 되어주지도 못하지만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간을 쪼개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강백호에게 부재한 공간을 메워간다. 이 열렬한 헌신은 단순히 그가 친구로서 강백호를 정말 아끼기 때문이라고 정리하기에는 여백이 많이 남는다. 어쩌면 양호열은 자신이 백호에게 그러하듯이 그 역시 다정한 관심과 돌봄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성숙해 보여도 양호열도 청소년이다. 타인의 애정과 기대 속에 성장해 가는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를 지켜보면서 마음 한편에는 그 역시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성장해 가길 원했던 것은 아닐까.
백호가 발견해 낸 농구라는 작은 세상이 무질서했던 그의 삶에 방향을 부여하고 무서운 힘으로 생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자신 역시 어떠한 기대나 희망 없이 헤매던 방황을 이만 끝내고 싶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채소연이 강백호를 두고 그를 질투한다고 했을 때 양호열은 그 말의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흥미롭게도 양호열은 슬램덩크 내 주요 캐릭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농구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소연과는 달리 농구에 재능 있는 백호가 부러운 게 아니다. 양호열이 부러운 것은 자신의 삶에 집중할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낸 백호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순식간에 연소해 버려도 상관없을 만큼의 충족감을 느끼는, 비로소 '단호한 결의'라는 것을 이해하는 백호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어떠한 기대도 관심도 없어 보였던 양호열의 내면에는 실은 그 누구보다 간절히 세상과 연결되길 바라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느껴진다. 이노우에가 애초에 양호열과 강백호를 페어로 그려내려 예정했기에, 비록 이후 작품의 방향과 틀이 크게 수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안에는 강백호의 페어로서 분리된 정체성이 남아있다. 선량하고 강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다. 그래서 그는 어떤 의미에서 강백호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농구를 선택하지 않은 강백호의 또 다른 모습. 그래서 양호열에게도 강백호의 농구는 그 자신의 구원이자 희망이었던 셈이다.
결핍 속에 사람은 자신이 가장 강렬하게 바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보호받고 싶다는 욕망이 좌절될 때 인간은 오히려 타인을 지키는 존재로 성장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슬픈 사람이 타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유쾌한 존재로 성장하기도 하는 것처럼. 양호열 역시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는 보호받고 싶었기에 보호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응원받고 싶었기에 응원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연결되고 싶었기에 연결하는 존재가 된다.
강백호가 북산의 선수들, 한나와 소연, 또 다른 팀의 선수들과 안선생의 기대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양호열과 백호 군단이라는 굳건한 애정의 토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단단히 쌓아 올렸는지 한 사람의 선수를 넘어 팀의 분위기와 색채마저 만들어내는 존재감을 지닌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에너지가 있는 토대.
양호열의 헌신에는 다시 말해 강백호의 보호자로서의 정체성과 동시에 그와 함께 성장해가고 있는 또 한 명의 청소년으로서의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 보호하고 보호받고 지키고 지켜내는 복잡한 관계의 소용돌이 속에 그는 자신이 정말로 바라 마지않았을 연결된 세상의 한가운데로 향하는 백호의 등 뒤를 지킨다.
그는 백호가 더 많은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자신이 속한 현실로 돌아오는 모든 다리를 끊어버린다. 정대만과 철이 패거리가 농구부를 습격하러 온 날 그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싸움을 한다. 지나쳐도 그만이었을, 그의 입장에서는 고작해야 동아리 활동이었을 뿐인데도. 양호열은 슬램덩크 내에서 농구가 상징하는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고 그 안전한 세상에 친구가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자신에게는 아무도 기대하는 이가 없기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면서. 며칠간의 근신은 별 문제도 안 되는 자신과는 달리 출전 금지가 강백호에게 미칠 영향을 너무도 잘 이해하기에 그는 친구의 영역을 소중히 지켜낸다.
기본기만 시키는 채치수에게 반항하다 쉽게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뛰쳐나온 백호가 변함없이 자신들과 어울려다니다 또다시 의미 없는 싸움에 휘말린 상황 속에서 우물쭈물하며 볼일이 생겼다며 가봐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할 때, 양호열은 그 선택의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백호는 이제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가는 게 좋겠어. 양호열은 코트 위와 밖으로 분명히 구분된 슬램덩크의 세계관 속에서 더 좋은 쪽으로, 더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세상으로 그의 친구를 밀어 보낸다. "준비 운동감도 못됐어. 그치?"
그는 백호가 농구를 하지 않는다면 철이처럼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불행과 행운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상황 속에 자라나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주사위를 던지듯이 무작위로 던져진 세상 속에서 불리한 조건들을 달고 그럼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러모아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주요 인물로 태어났으나 우연히 농구 밖 세상에 남은 양호열처럼.
그는 운 좋게 농구에 재능이 있지도 않고 좋은 어른들을 만나지도 못했으며 우연히 어떤 소녀에게 발견되지도 못했다. 언제나 방치되고 지워지는 세상에 남겨져서 선수들을 대신해서 싸우고 구르고 오명을 뒤집어쓰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리고 경기석에서 어쩌면 그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호열은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 그는 세상의 우연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가 우연히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폭력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줄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없다는 것도 모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또 다른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란 말처럼 무책임한 문장이 또 있을까?
다시말해 양호열은 세상의 가장 차가운 얼굴을 알고 있다. 그것은 자주 무관심과 방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정과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코트 위에서 벗어난 아이들. 수없이 많은 평범한 아이들이 폭력과 착취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성장하지 못한 채로 부러진다. 양호열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경계 위에 서있는 독특한 존재로 남겨져서. 코트 밖과 안 그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 자로서 빛나는 한 세계가 다른 세계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지켜보며 이 모든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는 오히려 슬램덩크가 애써 가리고 있는, 무관심 속에 방치된 평범한 아이들이 있는, 폭력 속에 노출되어 돌봐지지 않는 아이들 역시 자라나고 있는 지워진 현실 속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서, 편집부도 지워내지 못한 존재감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지켜나간다.
변덕규와 권준호에게 농구가 사라져도 빼앗기지 않는 다른 삶이 존재하는 것처럼, 유일하게 슬램덩크에서 농구에 관심이 없는 인물로서 양호열에게도 분명 의미 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수많은 그의 팬들이 상상하듯이, 유능한 바이크 전문 수리공이나 건실한 채소가게 사장과 같은 양호열의 다양한 미래가 개연성 있게 그려지는 이유는, 그리고 그 미래가 결코 보잘것없거나 비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다시 말해 양호열이 행복하게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나갈 거라는 믿음은 그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생을 바른 쪽으로 끌고 나갔던 강인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침착하고 느긋해 보이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간절히, 자신에게도 백호처럼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단호한 결의'의 순간이 다가오길 바라고 있는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연결하고 애정으로 돌보며 분명한 영역을 구축해 나가던 저력으로, 백호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생을 걸고 지켜낼 자신만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아가며 그 역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우연성의 광포한 힘에 휘둘려 질서에 투항하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거나 세상의 비정함에 좌절하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중한 것들을 귀하게 여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이 주인공이든 그렇지 않든.
마지막까지 농구 코트 위로 들어가지 않고 그 밖에 남은 자로서, 가장 차갑고 비정한 현실의 민낯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까지나 백호가 발견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쪽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로서.
주사위 게임 같은 생의 허무를 기꺼이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워 넣을 것이다. 그라면, 분명. 양호열이라면.
来な.
p.s. 상펭귄님 감사해요! 사진 바꿨어요:)
개인적으로 양호열과 의외로 닮은 인물이 권준호라고 생각해요. 채치수에게 동료가 없다. 그럼 내가 하면 되지와 같은 방식으로 양호열도 움직입니다.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면 내가 하지 뭐. 그래서 아마 정대만이 공통적으로 이 두 사람에게는 다소 약한 것 같아요. 지킬 것이 있는 사람에게 무릅니다 정대만은. 어딘지. 송태섭에게도 그렇고. 그건 아마 정대만 자신에게도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기때문인 것 같아요. 네. 과몰입니다.